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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 달이 잠길 때

눈 속에 달이 잠길 때

엄계옥 (지은이)
문화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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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 달이 잠길 때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눈 속에 달이 잠길 때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7429531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19-11-09

목차

서정의 고요한 깃발 | 신달자
작가의 말

1부
막잠
금관의 예수
바우어새의 구애
인편
나를 독서로 이끈 자유교양대회
무의식의 잠행
마른 꽃
여우와 사자
제문
모란이 오기까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2부
분홍주의보
도처에 널린 게 죄
도장 세 개
옛살놀이
허물벗기
건달불이 어둠을 살라먹고
판도라
금동화 피는 시절
엄마의 거둥길
문학의 뿌리

3부
매서원
그날 밤 신이 한 일
죽란시사첩
세 번의 눈물
소리와의 화해
미래 예측
마지막 외출
내면의 키 외면의 키
감, 아리다
바짓바람
인생후르츠

4부
비상
신계축일기
당숙어른
반려나무
좁은 세상
책이 밥이다
복 받다
달이 사는 궁전
흙속의 진주를 찾아서
그 속에서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

저자소개

엄계옥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북 울진군 온정에서 태어난 작가 엄계옥은 만해 한용운 선생님이 창간한 문학지 《유심》 복간에 2011년 시 「허기를 현상하다」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내가 잠깐 한눈 판 사이』 『시리우스에서 온 손님』 『눈 속에 달이 잠길 때』를 발간했다. 시와 수필 동화, 장르를 넘나드는 문단활동으로 장편동화 『시리우스에서 온 손님』과 수필집 『눈 속에 달이 잠길 때』는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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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막잠

누에섶 격자무늬 같은 이불을 덮고 아버지께서 누워 계신다. 세월의 격랑을 허물 삼아 잠(蠶)*을 돌돌 말고 있다. 아주 느리게 당신이 들 집을 이제 짓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젊었을 때 애를 먹였던 사람은 죽을 때도 애를 먹인다 카더라.”
아픈 사람에게 가장 예민한 게 귀다. 아버지는 쓰러진 순간 말문은 닫았지만, 귀만은 활짝 열어 두고 계신다. 문병 온 이들이 아버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닌데도 그 말은 아버지의 덮개 없는 귀를 타고 폐부 깊숙이 가서 박힌다.
열 달 전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죽음과의 사투 끝에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순식간에 링거 줄이 전신을 결박했다. 누군가 뒤척여 주지 않으면 그 자세로 온종일을 버텨야 한다. 형벌이 따로 없다. 미움과 연민이 착잡하게 교차하고 있던 나는 그 절박한 순간에도 아버지와의 좁혀지지 않는 마음 거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은 재물 벼슬 학력 삼박자를 갖추면 상팔자라고 했다. 아버지는 부잣집 외동아들로 태어나 재물 벼슬 학력을 고루 갖추었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백 살까지 살라는 염원에서 집집마다 다니며 천을 백 조각 얻어다 옷을 만들어 입혔다. 옷만으로 안심이 되지 않았던지 이름까지 백수(白壽)라고 지었다. 그 때문인지 아버지는 일생을 백수(白手)로 사셨다. 학문은 동네 제문과 군 단위의 예술제에 쓰였고, 재물은 유처취처(有妻娶妻)하는 데 바쳤다. 그 바람에 벼슬은 자연 내려놓아야 했다.
아버지는 침대에 결박당한 채 파락호로 산 지난날을 보고 있는 듯하다. 욕창이 등짝 가운데를 움푹 파먹고, 목에선 가래가 수시로 숨통을 조여도 아프다는 인상 한 번 쓰는 일 없이 고요하게 견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할 수는 없는가!”라며 칠십 년 해로(偕老) 앞에 애통해했다. 집으로 돌아오자 울적한 기분 전환으로 소리를 해보라고 어머니를 졸랐다. 어머니는 숨고르기를 몇 번 하더니 기막힌 소리를 토하기 시작한다.

해도여 지고야 저문 날에/ 옷 갈아입고서 어데로 가요/ 첩의 집으로 놀러 가네/ 무슨 첩이 유정도 해서/ 해발랑 깨발랑/ 해 넘어가는데/ 낮에도 가고 밤에도 가요

그 소리는 곡비(哭婢)였다. 어머니 애간장에 올올이 새겨 두었던 소리 채였다. 소리에 두들겨 맞는다는 심정이 그런 것이었을까. 어머니의 목소리는 마치 상두꾼이 만가(輓歌)를 부르는 것처럼 애달팠다. 내가 글썽이는 음성으로 반색을 하자 어머니는 정작 소리의 고수는 아버지라고 했다. 백발가 우미인가 명실가 사천가 권독가… 한양가는 꽤 긴 구절인데도 완창한다고 했다. 초성(初聲) 또한 더없이 좋다고 했다. 심지어 쓰러지기 며칠 전, 서울에서 국문과 교수라는 분이 집에까지 찾아와서 아버지 소리를 녹음해 갔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가족이 밖에서 하는 일을 잘 모른 채 살아간다. 내가 우리 소리에 눈을 뜬 건 늦은 나이에 국문학과를 다니면서였다. 구비문학을 접하면서 발품을 팔아서라도 우리 소리를 소장(所藏)하고 싶었다. 내게 있어 아버지는 서성(書聖)이었기에 내가 찾는 우리 소리의 주인공이 아버지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버지는 내 쪽에서 소리를 통해 먼저 화해를 청할까 봐 쓰러진 순간 말문부터 닫았던 것일까. “무슨 놈의 소리를 딸 앞에서 하란 말이더냐.” 분명 노발대발하셨을 것이다. 팔순을 넘겨서도 당당하던 아버지였다. 타인에겐 관대해도 가족에겐 독재자나 다름이 없던 분이셨다.
이불 밖으로 삐죽이 나온 아버지의 커다란 발이 그간의 행보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아버지는 그 고통의 순간에도 힘겹게 뜬 실눈으로 나를 훑곤 한다. 물기라곤 돋지 않을 것 같던 눈에 눈물이 얼비치자 마침내 머리가 반백으로 변한 내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콧등을 타고 하염없이 흘렀다.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노인은 임종 전 아홉 달 동안을 자기를 감싸는 심리적 고치가 필요하다. 죽음의 초읽기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생애 마지막을 생후 아홉 달 과정으로 되밟는다”고 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아홉 달은 생애를 역으로 되밟는 과정도 있었지만 내 미움과의 결별을 위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 실하던 몸을 고통으로 깡그리 채우면서까지 당신에 대한 나의 미움을 사랑의 최상위 단계라는 연민으로 바꾸어 놓고 계셨다.


누에섶 격자무늬 같은 이불을 덮고 아버지께서 누워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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