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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여행 > 세계일주여행 > 세계일주여행 에세이
· ISBN : 9791187504443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18-04-09
책 소개
목차
Prologue
PROVENCE
남쪽에서 부는 바람
01 어둠의 쓸모
02 파리공항에서
03 초라하지 않은 저녁
04 아주 보통의 가족
05 진짜의 소식
06 붉은 새의 이름
07 거울의 사내
08 아무것도 아닌 어른
09 죽음의 동산
10 남겨진 사람들
11 누나
12 모녀로부터
13 엄마가 울면
14 오직, 고요
SANTORINI
척추 세기 놀이
01 마지막 마을로 가서
02 그럼에도 불구하고
03 누나와 소년
04 웬만하면
05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06 겨우 등 하나 끄고
07 비가 오고 있잖아요
08 척추 세기 놀이
THE NORTH
별의 지붕에서
01 첫 눈
02 마침표와 첫 말 사이
03 얀테의 법칙
04 백야
05 아직 잠들지 못하고
06 웃는 연습
07 북극권의 여행자들
ASIA
무엇이고 무엇도 아닌 골목
01 상여
02 혼자 저녁을 먹는다
03 그 말의 의미
04 소원을 씻는 일
05 술 받아마시는 청년
06 너는 이미
07 열심 사회
08 오래된 사람들
09 여기와 거기
10 두 개
11 전도
12 신에게
13 온몸으로 교차했다
14 실패
15 홍콩의 표지들
16 기차에서
17 무엇이고 무엇도 아닌 골목
18 다른 이름
LONDON
꼴찌에서 네 번째 마라토너
01 무용(無用)
02 꼴찌에서 네 번째 마라토너
03 퀘스천마크
04 PRIDE
05 공원의 연인
06 열쇠 하나를 받아들고 당신 집에 들었다
07 벽
08 서커스매직
09 방울방울
10 약한 자들의 소란
11 오후 청년
SYDNEY
천 개의 방
01 경계에서
02 서핑 좋아하세요?
03 싸움구경
04 비늘 아래 숨어있다가
05 시드니 소녀
06 새벽마다 이름만 데리고 잤다
07 부재중
08 그녀와 나와 아이스크림
WESTERN CANADA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여행
01 진짜 이유
02 몇 가지 고백
03 형은 달아나고 있었다
04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다
05 누구나 잃어버린단다
06 분수
07 너는 맞다
08 잉글리시 베이에서
09 노을 뒷자리
10 캠핑의 날들
11 희망이란
12 시간여행자들
13 그를 용서하기 위해서
14 도망치는 사람들
15 스무 살
16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여행
Epillogue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비 오는 월요일 아비뇽의 시청 앞 광장은 한없이 조용했다. 바람에 우산이 날아갈까 봐 두 손으로 우산을 꼭 쥔 채 총총 걷는 사람들만 드물게 있었다. 그러다가 저 멀리 빙글빙글 돌아가는 화려한 구조물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몇 걸음 더 가서 보니 크리스마스 때문에 임시로 설치된 회전목마였다. 대목을 맞아야 하는 시기인데, 이상하게 쉬지 않고 내리는 비 때문에 손님이 들지 않는지 표를 파는 청년은 혼자 울상이었다. 손님은 고작 소녀 하나뿐이다. 요란하게 치장한 수십 마리의 회전목마를 저 혼자 전세를 내고 실컷 즐기고 있다. 그런 그녀를 딱 몇 발자국 곁에서 엄마와 아빠가 조용히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구경하다가 뭔가 조금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엄마, 아빠의 피부색과 소녀의 피부색이 너무 다른 거다. 소녀를 사진 찍을 생각으로 가만히 다가가 물었다.
(중략)
가족이란 말을 그렇게 자주 쓰고 있으면서도 가족을 어떻게 특정해야 하는지 나는 아직 모호하다. 다만, 이들이 모두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아주 보통의 가족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세상이 어떤 별난 이름을 붙였든지 아무런 상관없이. 함께 밥을 먹고, 한 지붕 아래 서로의 적막을 밝혀주며 함께 삶의 뿌리를 심는 이들은 모두 보통의 가족이라야 마땅하다.
- PROVENCE/ 04/ ‘아주 보통의 가족’ 중에서
둥글게 몸을 말고 잠든 당신 뒤에서 물끄러미
땀에 젖은 등을 만지다가
하나, 둘
척추를 센다.
당신이 살아낸
산과
골짜기와
절벽과
나로 결코 채워지지 않는 여기.
사람의 등뼈를 세는 일은
왜 이렇게 외로울까.
- SANTORINI/ 08/ ‘척추 세기 놀이’ 중에서
금요일 밤이다. 한 주의 근무를 마친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시장으로 모여들었다. 8시를 넘어가며 시장은 북새통이 됐다.
남자들은 대부분 검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있고, 여자들도 단정하게 정장을 입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무엇 하나 나무랄 곳 없이, 또 튈 곳도 없이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목소리를 높인다. 정해진 선을 중요하게 여기는 일본사람들 사이에 가장 반듯한 규칙과 그 규칙의 균열이 함께 사는 여기. 금요일의 사람들로 가득 찬 시장은 온통 피곤한 이들이 만들어 내는 분주함으로 묘한 생기가 돈다. 아메요코 시장의 풍경이다.
(중략)
한참이 지나 화장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밖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데 안쪽 칸에서 웩 웩 속을 겨워 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따고 나오는 사내의 얼굴을 힐끗 보니 아까 그였다. 내 뒤를 따라 나온 사내는 일행에게 돌아와 다시 어색하게 웃으며 술을 자꾸 받아마신다. 그를 격려하려는 듯 옆에 앉은, 그보다 나이가 좀 더 많아 보이는 다른 남자가 그의 등을 툭툭 만져주었다. 그만 마셔도 된다는 뜻이었는지, 더 받아마시라는 의미였는지, 그 마음 그 처지 나도
다 겪어봤다는 말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억지 잔을 마다치 않고 잘 받아마시는 청년은 그 뒤로도 한두 번 더 화장실을 오갔다. 나는 그 모습을 더 참지 못하고 있는 술을 조금 남기고 가게를 나오고 말았다.
어쩜 저리 열심의 삶인가.
어째 저리 있는 힘껏 최선의 날인가.
왜 그렇게 온 힘으로 살아내야 살 수 있는가.
아메요코 시장의 골목마다 열심히 사는 금요일의 부대가 가득했다. 앳된 얼굴의 막내가 최선을 다해 술을 받아먹고 있었다.
- ASIA / 05/ ‘술 받아마시는 청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