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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7700388
· 쪽수 : 362쪽
· 출판일 : 2020-10-3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인연, 세 가지 기억
1. ‘전두환과 평생 동지’였던 아버지, 사랑합니다.
2. 장인어른이 남긴 유산, 50만 원
3. 1991년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
4. 인권운동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5. ‘시외버스 검표원’ 출신 인권운동가의 초심
6. ‘월남 파병 군인’ 명진 스님과 두 베트콩 할아버지
7. 장준하의 동지?법정 스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증언
8. 내가 만난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이 되다
9. ‘사후 후보매수죄’라는 오욕, 낭만파 곽노현 전 교육감의 진심
10. 북한 사람 홍강철 씨에게 들은 진짜 북한 이야기
11. 그 사채업소 여직원은 정말 누가 죽였나
12. 영화 〈7번방의 선물〉?무기수 정원섭 이야기
13. 군 인권에 기적을 일으킨 연극 〈이등병의 엄마〉와 그 어머니들
14. 먼저 떠난 세 분 그리고 남은 사람들의 인연
저자소개
책속에서
세상에는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이른바 ‘숙명’이라는 단어가 그것입니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는 가난하게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재벌 집 자식으로 태어나면 대한민국 국적 대신 미국 국적을 가지고 태어나 군대도 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건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이런 경우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라는 의미의 숙명으로 치부하고 말까요? 저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낳아준 생물학적 부모보다 국가가 최종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가난한 집의 아이든 넉넉한 집의 아이든 동등하고 공정한 기회를 보장해주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런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제 소원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것은 ‘진심’입니다. 그때까지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행사라고 여기며 옆에 서 있던 베트콩 출신 참전군인 응우엔 즈엉 께 할아버지의 눈빛도 달라졌습니다. 공연 내내 짓고 있던 미소를 걷어내고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무릎 꿇고 참회 중인 명진 스님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공연 진행자에게 마이크를 달라고 했습니다.
“전쟁 당시 서로 총구를 겨눴던 한국 참전군인이 베트남을 방문했습니다. 오늘 저는 베트콩 참전군인으로서, 또 베트남의 한 시민으로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악연으로 시작했지만 오늘 명진 스님의 진심을 알고 감격으로 (스님을) 안았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이제 새로운 미래로 한국과 베트남이 다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응우엔 할아버지의 말씀에 명진 스님이 마이크를 이어받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심한 욕이 하나 있는데 ‘짐승만도 못한 놈’입니다. 저는 비록 국가의 명령으로 베트남을 왔지만 베트남에서 벌어진 우리 군대의 민간인 학살행위를 잘 몰랐습니다. 이제야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베트남 분들은 우리를 용서하시겠다고 하고, 또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저는 저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용서를 해주신다니 더 부끄러울 뿐입니다.”
명진 스님의 말씀에 응우엔 할아버지가 다시 명진 스님을 안아줬습니다. 아주 작은 화해, 극히 미미한 앙금의 해소였지만 적어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처음으로 이뤄진 사죄와 용서를 통한 화해의 순간이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이내 모두가 박수치며 명진 스님의 용기 있는 사과를 응원했습니다.
드디어 2003년 12월 18일, 눈이 내리는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면담이 이뤄졌습니다. 우리는 이날 조사를 통해 장준하 선생이 준비하던 거사의 실체에 한층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면담 전에 있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두말씀은 민주주의를 위해 일생을 걸어온 분답게 무게감과 감동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그 말씀의 전문입니다.
“과거 독재정권하에서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고, 또 목숨도 바쳤습니다. 그런 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 민주 유공자로서 명예를 회복하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희생자들 중에 가장 억울한 분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확인되지 못하고 진상이 밝혀지지 못해 ‘의문사’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실은 돌아가신 당사자 영혼도 그렇고, 가족과 친구들 국민 전부가 참 통탄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