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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87756859
· 쪽수 : 135쪽
· 출판일 : 2020-12-05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마포대교 – 11
온산공단 – 12
승강장 9-4 – 14
극야 – 16
우화(羽化) - 18
세상 밖의 가족 – 19
줄타기 따방 – 20
절개지 – 22
목발 – 24
타워크레인 – 26
무한궤도 – 28
울음을 미장하다 – 30
틈 – 32
거푸집 – 34
기어 박스 – 36
제2부
구속 – 39
내성천 – 40
그해 가뭄 – 42
장생포 – 44
간고등어 – 46
난전 – 48
하회탈 – 50
홀로 – 52
겉을 적신다는 건 – 54
장터 – 56
파 – 58
들돌 – 60
목욕탕 – 62
제3부
노숙 비둘기 – 65
모기 – 66
투잡 대리기사 – 68
골목 – 70
옷 – 72
닭장 – 74
목련 – 75
견고한 낙화 – 76
흥부를 기안하다 – 78
긍정적인 학교 – 80
세검정 – 82
자하문 – 84
동양방앗간 – 86
수박 고르기 – 88
3-Ⅱ-72#220 – 90
제4부
시큰거린 이유 – 95
상실의 굴뚝 – 96
채널을 돌리는 저녁 – 98
우울증 – 100
윤동주 시인의 언덕 – 102
질주 – 104
자문밖 – 106
숟가락 – 108
자판 – 110
가벼운 이별 – 112
저편 – 113
희방사역 – 114
입술 – 116
발 – 118
해설 김영범 존재하는 부재(不在) - 119
저자소개
책속에서
승강장 9-4
역사 밖
핏발 선 비둘기 발가락에 꽉 쥐어져 있는
검푸른 새벽의 입술
느린 어둠의 부스러기를 쪼아 대며
스크린 도어 안쪽을 들여다본다
희망이 버거울 때
느슨해지지 않게
절망을 조이고 있었다
공구의 금속 면에 삐뚤어지는 햇살
바로 세우려 잠깐 고개 돌릴 때
당도한 마지막 눈부심
지독한 슬픔은 예고 없던 열차 같아
눈물을 데리고 오지 못한다
그런 슬픔은 눈물이 금방 오지도 않아서
동공에 망치질을 한다
스크린 도어 깨지도록
문틈에 끼어 퍼덕이는 바람의 죽지
열리지 않는 세계
열차 소리를 타고 오래된 눈물이 도착하고 있다
내릴 곳은 추락의 방향
깜박여야 한다
철로에 달라붙어
날아가려 애쓰는 꽃잎 한 장
파르르
쪼그려 앉아 있다
네 잘못이 아냐
훨훨 날아가렴
*승강장 9-4: 2016년 계약직 청년의 목숨을 앗아 간 구의역 사고의 스크린 도어 번호. ***
줄타기 따방
매달린 세상의 등산법
내려가는 등산이 있다
바람의 이파리 털어 운세 점치며
발목 묶인 새처럼 스스로 묶인다
내려다보면 자궁 밖 같아서
탯줄처럼 놓지 못하고
종일 휘파람새 흉내 내며 부르는
군데군데 울음 매듭진 트로트풍 노래
밧줄에 꼬인다
허공 딛고 빌딩 안 들여다보며
층층이 스치는 밟지 못한 유년의 계단들
초침처럼 발 뛸 때
어디선가 만났던 사람
닦다가 가볍게 노크하면 창 열어 줄 것만 같아서
장력의 만만찮음 견디며 유리 벽에 스스로를 그리는 동안
어느새 노을 뒤따라와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덧칠한다
지상은 잠시 시간을 놓는 산장
꽁꽁 묶인 하루 풀어놓고
다시 내려가야 닿을 수 있는 정상
닦아도 닦이지 않는 얼룩으로 눕는다
밤새 노래해도 메아리 없는 반지하방에서
날아오를 내일의 높이 가늠하며
태엽 감는다
산정 팽팽하게 압축되고 있다
*따방: 고층 빌딩 유리창 청소 일을 연고 없이 혼자서 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