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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음표 위 경제사](/img_thumb2/9791188296828.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세계사 일반
· ISBN : 9791188296828
· 쪽수 : 604쪽
· 출판일 : 2024-07-25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들어가는 말
1장 산업자본주의, 부르주아와 ‘베토벤들’을 낳다
-영국, 제국에서 ‘세계의 공장’으로
-모차르트는 실패하고 베토벤은 성공한 까닭
-산업혁명의 양 날개 ‘나는 북’과 ‘증기기관’
-미네르바의 부엉이 베토벤, 날개를 펴다
2장 세계를 통합한 부르주아, 낭만을 노래하다
-미국, 19세기의 기린아로 우뚝 서다
-비더마이어시대를 위로한 낭만주의
-교통과 통신으로 하나되는 세계
-‘낭만의 시대’ 꽃피운 음악가들
3장 자본주의에 드리운 유령, 불황
-파국의 전조 드리운 자본주의
-민족주의 음악의 발흥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한다!”
-고전음악사의 라이벌 바그너와 브람스
-웰컴 투 모던타임즈
-세기말의 이방인, 구스타프 말러
4장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려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본격화된 미국의 시대 그리고 대공황
-과학기술과 함께 진화하는 대중음악 그리고 재즈의 탄생
-뉴딜과 케인즈주의, 어떻게 세계 자본주의를 구원했나
-조성과 형식, 리듬의 혁신 이끈 현대음악
-‘신 공화국’ 독일과 소련의 성공과 좌절
-20세기의 베토벤, 쇼스타코비치
5장 호황에 들뜬 세계, 로큰롤에 홀리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중산층, 황금시대를 열다
-청춘의 음악 로큰롤의 탄생
-패전 딛고 일어서는 독일과 일본
-세상을 바꾼 ‘딱정벌레들’
6장 장기침체의 시대, 펑크와 디스코를 소환하다
-석유파동으로 멈춰 선 세계경제
-“You can check out any time you like, but you can never leave.”
-세계화의 물결, 전 세계를 덮치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나가는 말∙주∙참고자료∙찾아보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경제와 음악은 서로 이율배반적으로 보인다. 경제는 ‘아폴론’, 음악은 ‘디오니소스’의 영역에 머무른 것으로 여겨지는 탓이다. 하지만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음악 등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 다만 경제는 다른 요인과 더불어 예술을 포함한 상부구조에 개입하거나, 중간 단계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음악 등 예술은 생산양식상의 근본 모순을 봉쇄하면서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의견에 귀 기울이게 되는 까닭이다. 최초의 ‘자유 음악가’ 베토벤이 모차르트처럼 굶어 죽지 않은 건 1차 산업혁명에 따라 부르주아계급이 대거 양산된 덕분이다. 음악을 향유하고 소비하는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던 축음기와 라디오는 2차 산업혁명기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결과물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이례적’ 호황이 1970년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면 기성세대를 상대로 전면전을 벌였던 펑크록이 출현할 수 있었을까.
#_들어가는 말
결과적으로 대분기 이후 산업화에 따른 공업화가 진전되었던 1880년에는 전 세계 지역별 공산품 생산능력 중 아시아 지역의 비중은 20% 정도로 축소된다. 대신 영국과 유럽대륙 그리고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미국을 합친 비중이 60%를 상회한다. 이 추세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0년대까지 이어진다. 대분기의 결과는 지역 간 1인당 GDP의 격차 확대였다. 앞서 소개한 ‘메디슨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1820년 3대 1을 기록했던 지역 간 격차는 1870년 5대 1로 벌어졌고, 이후 1950년 15대 1, 1998년 19대 1로 그 간격이 더욱 커졌다.
영국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맹아가 움트기 시작한다는 경제적 토대의 변화는 정치, 사회, 법률, 예술 등 상부구조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 책에서 경제사와 함께 주목할 음악 역시 이런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바로크음악이라는 중세의 잔재를 벗고, 우리가 현재접하는 ‘고전주의 음악’의 원형이 제시된 건 이 변화의 결과다.
#_1장 산업자본주의, 부르주아와 ‘베토벤들’을 낳다
프랑스대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이중혁명을 거친 서구 사회는 그 이전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되었다. 당시 사회의 주인공은 기존의 귀족이 아닌 부르주아계층이었다.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라 경제적 주도권을 대토지 소유자였던 귀족이 아닌 도시의 공장주와 대상인, 금융·법률 전문가 같은 부르주아계층이 확보한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을 겪은 당대인들은 국가는 왕국과 따로 존재하고, 백성들은 지배자와 독립해 존재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음악 문화의 헤게모니도 귀족에서 시민사회, 곧 부르주아계층으로 넘어갔다. “음악은 시민계급의 독점적 소유물”이 되었다. 음악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은 소수 귀족의 후원 대신 다수의 도시 중산층인 부르주아계층으로부터 ‘선택’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공공연주회나 출판 등 음악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야 했다는 뜻이다. 더구나 일반 청중들은 귀족계급에 비해 음악적 소양이 떨어졌고, 무도회 같은 목적이 아닌 음악 자체만을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성공하려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투쟁’이 필요했다. 그 결과 표현 강도를 끊임없이 높이는 19세기의 과장된 양식이 탄생했다.
#_2장 세계를 통합한 부르주아, 낭만을 노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