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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잔류자들

사할린 잔류자들

(국가가 잊은 존재들의 삶의 기록)

현무암, 파이차제 스베틀라나 (지은이), 서재길 (옮긴이), 고토 하루키 (사진)
책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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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잔류자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사할린 잔류자들 (국가가 잊은 존재들의 삶의 기록)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아시아사 > 동아시아/극동아시아사
· ISBN : 9791188990405
· 쪽수 : 328쪽
· 출판일 : 2019-07-31

책 소개

'사할린 잔류자들', 그들은 일본 통치 시기에 본국의 자원 근거지 역할을 맡은 사할린에 투입되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 각국의 안일한 태도와 얽힌 이해 관계 등의 문제로 인해 고국으로 되돌아오지 못했다. 이 책은 그들이 개척해 나간 '삶'에 주목한다.

목차

남사할린(가라후토) 지도
머리말

1부 가족과 살다
1장 일본, 한국, 러시아 세 나라로 확대된 생활 공간
2장 전후 사할린에서 살게 된 어머니와 귀국 3세 손녀의 정체성
3장 ‘영주 귀국’의 길을 개척한 인생
4장 세 가지 문화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귀국 3세

2부 국경을 넘다
5장 어머니의 망향의 염원을 안고 살아가는 딸
6장 사할린, 훗카이도, 인천을 오가다
7장 한국에 ‘영주 귀국’한 일본인 여성

3부 사할린에서 살다
8장 도마리의 흙이 되다
9장 친아버지와 친어머니를 끌어안고 싶다
10장 나의 ‘고향’은 사할린

해설: 사할린에서 교차하는 한·일의 ‘잔류자’들

후기를 대신하여: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탄생한 책
역자 후기

저자소개

현무암 (지은이)    정보 더보기
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박사(사회정보학). 현재, 홋카이도대학 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연구원 교수. 연구분야는 미디어문화론, 한일관계론. 저서로 『코리안 네트워크-미디어·이동의 역사와 공간』(홋카이도대학출판부, 2013), 『‘반일’과 ‘혐한’의 동시대사-내셔널리즘의 경계를 넘어서』(벤세이출판, 2016), 『〈포스트제국〉의 동아시아-담론·표상·기억』(2022, 세도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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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차제 스베틀라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72년 러시아 출신. 홋카이도대학 국제홍보미디어 연구과 박사. 현재 동대학 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연구원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급변하는 러-일 변경의 목소리(Voices from the shifting Russo-Japanese border)》(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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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길 (엮은이)    정보 더보기
울산 출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국민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식민지 시기 미디어와 대중문화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만주, 경계에서 읽는 한국문학』(공저), 『조선 사람의 세계 여행』(편저) 등의 저서와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 『사할린 잔류자들』 등의 번역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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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하루키 (사진)    정보 더보기
1985년 오사카 출생. 일본사진예술전문학교 졸업. 〈내리는 눈 한 송이가 사람을 충만하게 할 때까지, 그로부터 3년: MONEHT〉, 〈봄이 오기 전에〉 등 몇 차례의 사진전을 가졌다. 지은 책으로 《사할린을 잊을 수 없어(サハリンを忘れな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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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장 일본, 한국, 러시아 세 나라로 확대된 생활 공간)
2014년 6월에 삿포로에서 열린 북동아시아 축제. 이 축제는 일본, 중국, 러시아, 한국(남한), 북한, 몽골이 문화적 배경인 사람들이 모이는 교류의 장이다. 홋카이도 조선 초중고등학교와 토요 교실 러시아학교의 학생들도 각자 민족의상을 걸치고 노래와 춤을 뽐낸다.
“조선의 전통 의상이 잘 어울리네요”라는 말을 듣자 올리아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렇죠? 제가 봐도 그래요. 저도 카레얀카(조선인)니까요!” 옆에 있던 육촌 동생 료샤도 “나도 카레이츠(조선인)야!”라며 박자를 맞춘다. “나도!”, “나도!”라며 아이들은 일본어와 러시아어로 소리를 지른다.


(2장 전후 사할린에서 살게 된 어머니와 귀국 3세 손녀의 정체성)
와키 일가는 1951년 집안의 기둥이었던 텐 복만이 죽고 난 뒤 생활이 어려워지자 1954년에 소련 국적을 취득했다. 그런데 요네코가 1961년에 결혼했던 첫 남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 국적자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나홋카(Nakhodka, 러시아의 연해주, 동해 연안 남부, 표트르 대제 만(灣)에 면한 항구도시)의 북조선 영사관 직원이 사할린으로 찾아와 사할린 조선인들에게 북조선 국적의 취득을 권유했다. 전 남편은 이를 수락하여 국적을 북조선으로 변경했다. 한국과 국교가 수립되지 않았던 냉전의 한가운데에서 무국적 상태를 탈피하기 위한 선택지의 하나였다. 소련 국적의 요네코와 달리 북조선 국적의 남편은 반년마다 여권(신분증명서)을 갱신해야 했다. 요네코는 글을 못 배운 남편을 대신해서 신청서를 썼다. 그때마다 북조선 영사관에서는 “김일성 수령의 명예를 위해 조국(북조선)으로 가야만 합니다”라고 쓰인 편지가 왔다.


(3장 ‘영주 귀국’의 삶을 개척한 인생)
유리코는 1946년까지 일본학교를 다녔고 집에서는 일본어만 사용했다. 그 뒤에는 조선학교에 다니게 되어 조선인 커뮤니티 속에 휩쓸렸고 결혼 상대 역시 조선인이었다. 이후로는 거의 한국어만을 사용해왔다. 그녀의 아이들이 학령기가 되자 조선학교는 폐교되어 러시아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여전히 아이들과 한국어로 말하고 있었지만 학교 교사에게서 가능한 한 집에서도 러시아어를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 자신이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 역시 언어 환경을 바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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