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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9171223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19-11-28
책 소개
목차
1. 만남
한밤의 불청객 9 / 오지 않는 사람 15 / 강아지 주인을 찾습니다 26 / 나를 보내지 말아 주세요! 33
2. 우연은 필연의 씨앗
안골마을의 봄 39 / 전원에 살어리랏다 44 / 벤츠 아저씨와 똘이 50 / 정다운 이웃들 57
3. 나의 딸 우리 수니
‘순이’에서 ‘수니’로 69 / 동병상련 77 / 오래 함께 할 날들을 위하여 81 / 산딸기 익어갈 무렵 89 / 투명 강아지 96
4. 사랑의 계절
수니의 전성시대 105 / 그 푸르고 행복한 날들 110 / 빛과 그림자 116 / 사랑이 죄인가요 122 / 인과응보와 기적 129 / 고백 140
5. 탄생의 신비
꼬물이 사남매 149 / 육아는 힘들어 155 / 하나, 두리, 세나, 사라 165 / 모성애 169 / 파란만장 178
6 성숙의 아픔
우리 언제 다시 만날까 193 / 잊힌 날들의 의미 202 / 사춘기 207
7 해후
돌풍을 몰고 온 여인 217 / 저 먼 안식과 희망의 품 221 / 마리나는 내 운명 229 / 내가 수니에게 준 선물 237 / 엄마가 돌아왔어요! 240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앗! 이게 뭐야?”
사립짝문을 들어와 무심코 현관으로 향하던 나는 테라스의 자동 센서 등이 켜지는 순간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서고 말았다. 뾰족한 주둥이에 커다란 두 귀가 쫑긋하고 동그란 눈망울이 영롱한.
마을 곳곳에 준동하는 고양이는 아니었다. 저번에 거실 앞 테라스 아래서 기어 나와 비척비척 산길 쪽으로 사라지던 늙은 너구리, 이웃들이 그 녀석은 죽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새벽에 마당에 잘못 들어와서는 어쩔 줄 모르고 겅중겅중 뛰던 새끼 고라니도 아니었다.
멈춘 걸음을 한 발 물리면서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니 영락없는 여우다. 털빛이 눈부시게 흰 눈여우. 그렇게 녀석은 그림같이 앉아서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순간, 어릴 때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옛날얘기 속의 꼬리 아홉 달린 ‘백여시’가 떠오르면서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나는 녀석과 함께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유기견이란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목줄을 풀까 말까 망설이다가 풀어주기로 했다. 그렇다고 녀석이 달아날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비록 마을 방송으로 녀석의 외모와 품종, 성품, 우리 집에 들어온 일시 등을 알리며 주인을 찾는다는 메시지를 전하지는 못했지만 이장 댁을 방문한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민들이 들고 나면서 강아지를 버리고 가기도 한다는 것, 심지어 다른 마을에서 여기에 갖다 버리기도 한다는 사실. TV 방송에서나 듣던 이런 서글픈 일이 내 주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알게 되었으며 베일에 싸인 이 강아지의 정체도 어렴풋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장이 지구대와 유기견 보호소를 말해준 것은 내가 건강을 회복하러 조용히 ‘요양차’ 내려왔다는 이웃들의 얘기를 듣고 마지막 방법으로 제시한 배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벤츠 아저씨라고 부르게 된 이 아저씨는 앞뒤 사정을 가차 없이 잘라내고 핵심만 툭, 휙 하고 던지는 극단적인 비약 어법을 구사했다. 인사말, 감사, 사양, 미안 같은 말은 그의 매너사전에 없는 듯했다. 용건만 담은 극히 짧은 발화는 ‘뭐지?’ 하고 얼른 추슬러봐야 뜻을 알 수 있었지만 대단한 의미가 담긴 적은 거의 없었다. 간단명료해서 도리어 신선한 맛이 있었고 퀴즈를 풀듯 추리를 요하기 때문에 긴장감도 유발했다.
벤츠 아저씨는 이 집을 팔고 아랫마을 연립주택으로 이사 가 살고 있었다. 차를 몰고 있는 그와 마주쳐서 인사를 건네면 빙긋 웃는 법조차 없이 차창을 조금 내리는 것이 다고, 밭에서 내려오는 길에 비닐봉지 하나를 내게 툭 건네줘서 방금 캔 도라지가 담긴 걸 알고 얼른 인사를 하려고 보면 벌써 차창 밖으로 담배연기만 내뿜으며 저만치 가고 있었다.
‘혹시 이거 괜찮으면 드시겠습니까?’ 하면서 친구가 가져온 와인이라도 한 병 건넬라 치면 가타부타 한마디도 없이 맡겨놓은 물건을 돌려받듯 낚아채서는 차 뒷자리에 툭 던졌다. 검둥이 똘이가 마당에 들어오기만 하면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오줌을 지리고 잔디밭에 똥을 싸는데 내가 모종삽으로 똥을 치우는 것을 보면서도, ‘지 살던 집 아인교.’ 이 한마디가 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