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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9176617
· 쪽수 : 276쪽
· 출판일 : 2021-05-25
책 소개
목차
005 작가의 말
제01장 나비, 둘
제02장 화사(畵師)를 만나다
제03장 전야(前夜)
제04장 밀담
제05장 벌거벗은 몸
제06장 정결한 음란
제07장 음란한 기품
제08장 도깨비와 노닐다
제09장 사랑이 가는 자리
제10장 별리의 밤
제11장 아름다운 사람, 들
평론 | 열망과 환상, 그리고 예술 - 김지윤(문학평론가)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이 사람은 지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사람이 생각하는 건 보통의 춘화가 아니다. 남녀의 흐벅진 정사를 화선지에 담으려는 게 아니다. 더 깊은 곳이거나, 그 너머의 무엇이다.’
속으로 중얼거리던 박호민이 상현의 눈을 응시하며 물었다.
“의도가 무언가?”
상현은 눈을 좀 크게 떴을 뿐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여인을 매의 횃대에 앉히려는 뜻이 무언지 나로선 도무지 모르겠군.”
박호민이 다그치듯 말했다. 하지만 상현은 이미 확고한 답을 갖고 있었다.
“음란을 감추지 않겠다는 뜻이지요.”
“음란을 감추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정결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
“이매망량을 아시지요?”
박호민이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왜 난데없이 도깨비 얘기를?’
이(?), 매(魅), 망(?), 량(?) -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도깨비’를 가리킨다. 이 글자들을 다 모아 놓으면 도깨비가 사는 굴에 잡혀가 혼줄 빠지게 고생한다는 뜻이다.
“저 화사님의 그림이 어떠했냐고 물으셨지요? 소첩이 본 것은, 아무래도 이거나, 매거나, 망이거나, 량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름답다는 건 무언가. 우리는 무엇을 아름답다 하는가. 사람들이 스쳐 갔다. 상현의 작은 몸을 감싼 큰아버지의 부드러운 두 손이, 따뜻한 음성이, 지나갔다. 아버지의 무덤가 잔설을 뚫고 피어오른 복수초 노란 꽃이, 어린 상현의 머리를 쓸어안은 어머니의 차가운 몸이, 그의 뺨에 닿은 누나의 작은 손바닥이, 지나갔다. 무릎이 꺾일 때마다 모든 것은 스러진다, 스러지지 않기를 바라지 말라며 팔뚝을 으스러지게 쥐던 매형의 손아귀가, 당신이 읊던 이하(李賀)의 귀기 어린 시들이, 지나갔다. 보드랍고도 뜨겁던 아내의 손길이, 어머니의 그것만큼이나 냉담하지만 그윽하던 눈이, 은밀했던 숨결이, 가슴 안에 샘물처럼 고이던 그녀에 대한 미안함이, 지나갔다. 그리고 상희가, 달려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비단치마를 끌며, 그의 앞에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