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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한국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91189333102
· 쪽수 : 276쪽
책 소개
목차
1 마음속의 마을
2 표절 I
3 출발하지 못한 기차들
4 미궁(Labyrinth)
5 개인소장(個人所藏, Private Collection)
6 미로(Maze)
7 두 가지 경우
8 표절 II
9 1924
10 교환의 법칙
11 Nice Dream
12 옛날 친구 승구
13 겹치지 않는 궤도 I - 문 앞의 눈[雪]
14 반사바퀴 회사
15 표절 III
16 꿈을 먹는 요정
17 누구의 자유의지?
18 겹치지 않는 궤도 II ? 불의의 일격
19 사닥다리
20 스톡홀름 증후군
21 사진 가게
22 꿈 ◇ 해석
23 꿈 ◇ S
24 소풍
25 언덕
26 표절 IX
27 최후의 도시, 페린치아
28 연옥
29 언덕의 앞면
30 언덕의 뒷면
31 지도제작자 동맹의 비밀
인터뷰: 인류는 똑같은 꿈을 꾼다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누구에게나 마음속의 마을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의 마을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일찍이 유년 시절부터 군인이었던 부친을 따라 여러 마을을 전전했지만, 그리고 나이가 먹어서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천성 때문에 셀 수도 없이 많은 마을을 떠돌아다녔지만, 그중에서 마음속의 마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마을은 단 한 곳뿐이다. 여기서 나는 그 마을의 이름을 밝힐 수 없다. 그저 이 나라의 한 곳으로 남쪽에 있다고만 해두자. 내가 그 이름을 댈 수 없는 까닭은, 마을이 누군가의 ‘마음속의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깊숙한 골짜기 속에 숨기고 있던 비밀까지 그 누군가와 공유해야 하고, 또한 그 누군가가 계속해서 그 ‘마음속의 마을’을 가슴속 책꽂이 한 켠에 꽂아두고 잘 보관하기 위해서는 그 비밀을 타인에게 발설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 위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지도 위에 등재된 모든 도시들의 숫자를 훌쩍 뛰어넘는 마음속의 마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 마음속의 마을은 벌써 40년 전, 그러니까 내가 지구 위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들보다 소행성의 비대칭적인 궤도에 더 관심이 많았던 고등학교 시절 대략 한 학기 정도 머물렀던 곳이다. 그곳의 비밀이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이었다. 처음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아니, 그렇게 말할 수 있기라도 한 건지, 실은 모르겠다. 왜냐면 그때 나는 내가 알아낸 사실을 지금은 돌아가신 부모님들과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과연 그 사실을 내가 누군가와, 그러니까 마을에 살던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해 본 적이 있는가 하면, 너무 오래전 일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것 역시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나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던 걸까?
이런 일이 있었다. 아주 더운 마을을 여행하다가 길가에 버려진 커다란 냉장고를 발견하고 그걸 열었더니 차가운 코카콜라 한 병이 들어 있었는데 목이 너무 말라 주인을 찾을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콜라를 따 마시려 했지만 병따개가 없어서 콜라를 마실 수 없었던 꿈을 꾼 어느 일요일 아침 일찍, 나는 어머니의 지갑 속에 들어 있던 지폐 한 장을 몰래 꺼내 가까운 가겟집으로 달려갔다. 당연히 꿈속에서 마시지 못한 콜라를 사 먹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콜라를 한 병씩 손에들 들고 가겟집을 나서는 게 아닌가! 그들은 서로 민망스러운 일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서로 흘끔흘끔 남의 눈치를 살피다 일요일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휑하니 집으로 달려가 버렸다. 그 외에도 수많은 예들이 있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꿈을 꾼 다음 날 아침에는 등굣길에서 마주친 대부분의 친구들 손에 우산이 들려 있다거나, 집에 불이 활활 타는 꿈을 꾼 다음 날에는 하루 종일 복권 가게의 줄이 끊이지 않다거나, 배를 타고 먼 바다를 여행하는 꿈을 꾼 뒷날 미술 수업 시간에는 같은 반 친구들이 죄 비슷한 빛깔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비슷한 모양의 배를 그린다거나 하는 일 따위들 말이다. 내 기억 속에서 유난히 인중이 길고 삐쩍 마른 얼굴을 하고 있던 미술 선생은 모두 똑같은 배를 그려대고 있는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아니, 아니. 돛이 세 개였어, 네 개가 아니라.”
가장 비극적인 일로 기억되는 사건은 내가 그 마음속의 마을을 떠나기 직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날 밤 꿈에서 나는 우리 학교에서 히에로글리프를 가르치던 여선생님이 학교 뒷산에서 커다란 붉은 말과 관계를 갖는 것을 보았다. 너무나 생생하고 기분 나쁜 꿈이었다. 나는 그 선생님이 기혼이었는지 미혼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다지 젊지도 그다지 늙지도 않았다는 것만큼은 어슴푸레 기억나지만.
다음 날 그 선생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선생을 보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는 기분이었다. 애들도 나와 비슷한 심정인지 평소 같았으면 선생이 나오지 않았다고 좋아라 떠들고 법석을 부려야 할 녀석들이 온몸에 다 기운이 빠진 듯 책상에 드러누워 한숨만 쉬고 있었다. 한 놈이 칠판에 말을 그리다가 다른 놈에게 두드려 맞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날 저녁 집 마당 평상에 누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사과를 접시에 담아 주며 말씀하셨다.
“그 선생 자살했대요.”
아버지는 그 선생이 누구인지 왜 자살했는지 묻지 않았다.
“뒷산 말오줌나무에다 목을 맸다나 봐요.”
아버지는 한숨을 크게 내쉬셨고 하늘에서는 별똥별이 우르르 쏟아졌다. 나는 그 사납던 붉은 말이 어떻게 됐는지 그게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