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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책읽기/글쓰기 > 책읽기
· ISBN : 9791189333218
· 쪽수 : 320쪽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쾌락, 부스러기, 그림
1부 도끼, 열쇠, 찌꺼기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
역행하는 시간, Through the Looking-Glass
카프카, 책에 대해 말하다
러시아 인형, 첫 번째 이야기
러시아 인형 , 두 번째 이야기
SF에 대한 나의 편견을 둘러싼 피고 측 증인과 검찰 측 증인
시간에 대한 SF 작가들의 상상력
지극히 사적인, 추리소설들을 위한 명예의 전당
취향에 관하여
신윤복의 전모를 쓴 여인, 前⼈未發可謂奇
네 가지 코기토
글을 쓰는 다양한 이유들
천재, 천재에 대해 말하다
욕망에 대한 두 가지 질문
책껍질을 벗겨라!
책으로 책을 짓다
소설 쓰는 ‘척’하는 남자 둘
나의 서재에서
남의 서재에서
꿈으로 지은 이야기들
오마주를 위해 만든 작품들
낡은 책들은 어디서 태어났는가?, 첫 번째 이야기
낡은 책들은 어디서 태어났는가?, 두 번째 이야기
환상의 책
2부 책 속의 그림 속의 책 속의 그림 속의……
푼크툼-꿈의 열쇠-왜 하필 스펀지에서?
Et In Arcadia Ego(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
푼크툼이 주는 즐거움, 스투디움이 주는 즐거움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와 「그랑드 자트 섬」
요한 대 요한
셀피의 홍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러시아 인형, 세 번째 이야기
현대미술-자신만의 빌보케를 만들 것!
책 속의 그림
그림 속의 책
장소의 무력함과 인간의 권능
원근법을 무시-무지하라!
랭보, 모음(母音)들, 색깔들, 화가들—첫 번째 이야기
랭보, 모음(母音)들, 색깔들, 화가들—두 번째 이야기
여행의 무익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상트로페즈 혹은 생트로페
두 명의 성경 번역자
그림 속에서 만나는 일인다역 의 잘못된 활용법
낡은 집, 낡은 아파트, 낡은 골목
소식을 전하는 자, 대천사 가브리엘
四인의 페스타이올로가 화폭을 응시하오
베로니카의 수건
뒷모습: 4인의 여자와 1인의 남자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이상한 제목의 그림들
3부 부스러기들
쓸모없는 재능, 첫 번째 이야기
부스러기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서
쓸모없는 재능, 두 번째 이야기
쓸모없는 재능, 세 번째 이야기
핼러윈 기념, 미드에서 날아온 부스러기 세 조각
카프카의 「법 앞에서」 읽기, 아니 읽는 대신 다른 부스러기들 나열하기
돼지가 땡기는 날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어떻게 끝낼 것인가?
A Coat, a Hat and a Gun
페소아에서 주운 부스러기들, 반짝대는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남긴 부스러기들
단테의 연옥에서 만나는 일곱 가지의 대죄
주(主)가 되겠다는 주(註)의 야심
만화책에서 내린 부스러기 두 조각
비행기에서 문득 계획의 접착제가 떨어져나가다
四人의 독설가가 잠언집 안에 숨겨둔 부스러기들
개선을 거부 혹은 혐오하는 사람들
제사를 쓰는 여섯 가지 동기
권력에 대하여
부스러기들, 한 번 더 카프카에서 주운 것들
음악 속의 부스러기, 부스러기 속의 음악
마무리—초심에 대하여
저자소개
책속에서
20세기가 낳은 가장 혁신적인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1952년에 발표한 『또 다른 심문들』에서 프란츠 쿤 박사의 중국백과사전에서 인용했다고 주장했고(그 백과사전의 제목이 바로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이다. 물론 그건 보르헤스의 십팔번인 이른바 ‘가짜 인용’이다. 당연히 이런 책은 존재하지 않으니 아마존이나 중국 헌책방을 찾아 헤매지 말도록!), 다시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재인용했고, 마지막으로 수다쟁이 아저씨 움베르토 에코가 『궁극의 리스트』에서 재재인용해서 더더욱 유명한 동물의 분류 방식은 다음과 같다.
a. 황제에 예속된 동물들
b. 박제된 동물들
c. 훈련된 동물들
d. 돼지들
e. 인어들
f. 전설의 동물들
g. 떠돌이 개들
h. 이 분류 항목에 포함된 동물들
i. 미친 듯이 날뛰는 동물들
j. 헤아릴 수 없는 동물들
k. 낙타털로 만든 섬세한 붓으로 그려진 동물들
l. 그 밖의 동물들
m. 방금 항아리를 깨뜨린 동물들
n. 멀리서 보면 파리로 보이는 동물들
볼 때마다 웃음 짓게 하는 이 놀라운 분류 방식. 이런 놀라운 분류표를 고안해 낸(고안해 냈으면서도 짐짓 고안한 것이 아니라 타인이 쓴 글에서 빌려 왔다고 천연덕스럽게 농을 던지는) 보르헤스는 어디에 속할까?
이 책의 첫 장을 막 젖힌 당신은 어디에 속하는가? 그리고 이 책을 쓴 나는 어디에 속할까?
나는 ‘l. 그 밖의 동물들’에 속하고 싶다, 영원히.
한 정의가 나온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이 두 가지 상반된, 하지만 롤랑 바르트의 다른 문장-개념들이 그렇듯, 여전히 모호한 이 개념들을, 간단히 축약해 보자.
교양-정보-지식의 영역에서의 즐거움인 스투디움과, 괴물처럼 설명할 수 없고, 아주 자주, 타인에겐 아무것도 아닐 지극히 사적인 즐거움인 푼크툼. 푼크툼이란 단어가 존재해야 한다는 건, 그만큼 왜?라는 질문의 답에 도달하기가 힘들다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 우리는 “왜 너는……?”이라는 질문을 참으로 쉽게 남발하지만, 거기에 정확히 다다르는 것은 얼마나 힘든 여정인지.
각설하고, 여기선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들 중, 나의 푼크툼이라 부를 수 있는 그림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꿈의 열쇠」. 같은 제목의 그림만도 몇 개 더 되는 것 같은데, 1927년판이 내 푼크툼이다.
1927년판 「꿈의 열쇠」는 네 개의 액자를 닮은 격자로 나누어져 있고, 각각의 격자 안에는 그림과 단어가 하나씩 들어 있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하늘-새-스펀지-탁자라고 쓰여 있다.
1928년부터 1930년까지 파리에 체류하는 동안 마그리트는 유독 그림 속에 단어를 넣은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그중, 이 그림은 ‘내게’ 특별하다. 그리하여 ‘나의’ 푼크툼이 된다.
그는 주로 이미지에 올바르지 않은 이름들을 붙였다. 가방을 닮은 이미지를 그려 놓고 그는 태연하게 ‘하늘’이라는 단어를 그 아래에 배치한다, 마치 기표와 기의의 부착이 얼마나 연약한지 보여주려는 고집스러운 야심이라도 지닌 듯. 하지만 1927년 「꿈의 열쇠」에선 오른쪽 아래 스펀지에서 말과 이미지(Les mots et les images)가 행복하게 일치한다. 나는 또 한 번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한다. “왜 하필 스펀지에서 이미지와 말이 행복하게 화해하는가?” “스폰지가 뭐길래?” 아무도 답할 수 없는 질문, 하여 푼크툼이 되고 마는 그림.
사족이겠으나 1930년판, 같은 제목의 그림에선 한 번도 말과 이미지가 만나지 못한다. 1930년판 「꿈의 열쇠」에는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아카시아-달-천장-사막-비바람-눈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고 역시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달걀-구두-불이 붙어 있는 양초-망치-투명한 유리잔-검은 모자의 이미지가 배치되어 있다. 해서 오른쪽 중앙의 격자 안에선 양초의 이미지와 천장이라는 문자가 만난다, 아니 만나지 못한다. 그렇게 1930년작에선 아무도 만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