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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91189534479
· 쪽수 : 168쪽
· 출판일 : 2023-12-07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맞춤복 가게가 모여 있는 거리를 아시나요?
이 안에 옷 만드는 모든 게 다 있어요
– 샬롬의상실 김옥희 대표
1981년생이 본 중촌동 맞춤복 거리의 삶
– 샬롬의상실 김혜진 실장
맞춤복 거리에서 제2의 삶이 시작됐어요
– 2022 뉴욕국제디자인 초대전 Best Of Best 상을 수상한 청년 배재영 씨
맞춤복 거리의 청년 1호
– 바르지음 김희은 대표
여기 맞춤복 거리에서 태어난 토박이예요
– 현대교복 이정수 공동대표
맞춤복 안에 인생이 담겨 있어요
– 14년째 중촌동 맞춤복 거리에서 옷을 만들어 입는 이수정 고객
에필로그 - 맞춤복 거리, 대전의 소중한 유산이 잘 계승되기를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 머리말
인터넷 쇼핑몰을 들락거린다. ‘○○백화점 세일 중’ 메시지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의 옷 사랑은 유난하다. 유행이 계속 바뀌며 빠르게 소비되는 탓에 옷을 고쳐 입기보다는 원하는 옷을 새로 사 입는 게 더 편리한 사회. 우리는 패스트 패션 시대에 살고 있다.
구술생애사 작가로 일하면서 60대 이상의 노인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았다. 내가 만난 어르신 중 한 분은 “21살에 공장에서 일했는데, 힘들 때마다 맞춤 양장을 빼입고 고향에 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했다.”라고 말했다. 70세가 훌쩍 넘은 반백 머리 할머니의 눈은 ‘양장 입은 모습이 성공의 바로미터’라고 말하고 있었다.
맞춤복 거리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낸 건, 대전 ‘중촌동 맞춤패션거리’에 패션플랫폼을 지어 올린다고 지역 신문들이 앞다퉈 보도했던 기사를 읽은 뒤였다. 예산이 100억이라고 했다. 들어가는 예산이 10억이라도 놀랄 일인데 100억이라니 입이 떡 벌어졌다.
유년 시절부터 청소년 시절까지 중촌동에서 살았다. 내 기억에 중촌동 맞춤복 거리는 허름한 골목이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기성복을 입고 자란 나에게 그곳은 어딘가 생뚱맞고 촌스럽고, 좀처럼 발길이 향해지지 않는 장소였다.
중촌동 지역은 80년대부터 아파트가 하나둘 들어서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이후로는 예전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맞춤복 거리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게다가 대전시에서 100억 원의 돈을 들여 거리를 재정비한다니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있는 맞춤복 장인들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명인의 솜씨로 일대일 맞춤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인들의 이야기를 접했다. 대전시에서 중촌동 맞춤복 거리를 대전의 문화유산으로 여기고, 2011년에 패션특화거리로 지정한 사실도 알게 됐다. 중촌동 맞춤복 거리가 전국에서 원스톱 방식으로 맞춤복을 해 입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란 사실을 알고 나자 한번 가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장인 정신을 지키되 젊은이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야 찾는 이가 많아진다. 대전시가 거리를 재정비하고 패션플랫폼을 운영하려는 이유가 청년과 장인들이 협력해 맞춤복 거리를 살릴 방안을 모색하려는 취지라는 걸 이해하게 됐다.
맞춤복 거리를 지키는 장인들은 적게는 30년에서 많게는 50년까지 맞춤복을 지어왔고 대다수가 여성이다. 이들은 가난으로 인해 많이 못 배운 채 일찍 생계 활동에 뛰어들었다. 기술을 가지고 일을 하며 돈을 벌어 결혼하고 자녀를 키웠다. 평생 재봉틀 곁을 떠나지 않고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힘든 시기에는 같은 여성 동료 장인들과 서로 버팀돌이 되어주며 이겨냈다. 인생고락을 함께 나눈 사이이기에 서로를 또 다른 가족 같은 공동체로 여기고 살았다.
중촌동 맞춤복 거리를 지탱해주는 또 하나의 기둥은 바로 고객이다. 이곳의 고객들은 특별하다. 10년 이상 옷을 해 입으며 장인들과 친구 혹은 언니 동생 사이로 정을 나누어 오고 있다. 맞춤복 거리의 상인과 고객들은 서로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며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이다. “어떤 디자인을 원하세요?”라는 응대에서 시작된 관계가 어떻게 내밀한 속 이야기까지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을까? 사람 냄새 나는 공동체로 50년 이상 존속되고 있는 맞춤복 거리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보물을 캐는 심정으로 중촌동 맞춤복 거리에 쌓인 이야기를 들려줄 여섯 명의 인터뷰이를 찾아 나섰다.
첫 번째 인터뷰이는 샬롬의상실 김옥희 대표다. 김 대표는 중촌동패션상인협의회 회장이다. 동구 대동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다 1989년 중촌동 맞춤복 거리에 입성했다. 90년대 들어 중국 시장이 개방되고 세계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면서, 저가의 옷이 대량 생산돼 전 세계적으로 팔려나갔다. 맞춤복 시장은 큰 타격을 받았다. 김 대표는 중촌동패션상인협의회 회장을 맡아, 맞춤복 거리가 활성화되도록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김 대표야말로 50년간 맞춤복 거리에 쌓인 이야기를 잘 들려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인터뷰이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맞춤복 거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한 김혜진 씨, 세 번째 인터뷰이는 대학 3년을 장인들과 함께 보내며 맞춤복 거리가 제2의 집이 되었다는 20대 청년 배재영 씨다. 네 번째 인터뷰이는 중촌동 맞춤복 거리의 문화적 가치를 알아보고 그 명맥을 잇기 위해 이곳에 둥지를 튼 청년 사업가 김희은 씨다. 이 세 명은 모두 청년층이다. 장인들 대부분이 고령인 중촌동 맞춤복 거리의 운명은 이러한 청년들의 손에 달려있다.
맞춤복 거리 장인들 인터뷰를 마무리할 무렵에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이정수 씨를 만났다. 지금은 구의원으로 동네 일을 더 체계적이고 넓게 챙기는 분이다.
마지막 인터뷰이는 고객 이수정 씨다. 한 문화 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난 전직 고위공무원에게서 예전 동료 직원이었다는 그를 소개받았다. 전직 공무원 분은 중촌동 맞춤복 거리에 관한 책을 쓴다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전에 같이 일했던 직원이 거기서 옷을 맞춰 입었어요. 그 덕에 우리 집사람도 같이 가서 옷을 맞춰 입었지요.”라며 수정 씨를 소개해 주었다. 수정 씨와의 만남은 이 책을 쓰는 데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그는 맞춤복 거리를 지키는 장인들의 기술과 정신을 문화유산이라고 여겨 매번 이곳에서 옷을 맞춰 입는 고객이다. 기성복의 편리함을 마다하는 그에게서 소중한 것의 가치를 알고 지키려는 마음이 무엇인지 배웠다.
최첨단 시대에 여전히 손으로 직접 옷을 만드는 사람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일구고 어려움을 불행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이들.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은 묵묵히 자신들의 가치를 지켜왔다. 이제 그들의 삶 한 부분을 들어보려 한다. 그들의 흔적을 보다 객관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다양한 관련 통계 자료를 함께 담았다.
지금부터 맞춤복 거리의 삶을 자신의 언어로 들려주는 여섯 명 주인공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때는 사람들이 버스 대절해서 옷 맞추러 목동까지 오던 때였어요. 수십 명이 단체로 와서 원단 구매하고, 그걸로 옷맞추고 하던 때였어요. 장사가 아주 잘됐어요. 그래서 대동에서 몇 년 양장점 운영하다가 89년 중촌동 맞춤복 거리로 들어왔어요. 진짜 잘된 거는 말도 못 하게 잘됐어요. 그때는 어떤 집이든지 들어오는 일감을 다 못 받았어요. 우리가 주문 받은 옷이 이렇게 100장이 있잖아요? 그러면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게 100장이 있고, 여기 주문받아 놓은 게 또 있고, 한 덩어리는 대기 중이고 그랬어요. 맨날 하루 종일 일만 했어요.
엄마가 거기다 데려다 놨으니까 한 거예요. 우리가 또 견디는 건 잘하거든. 그래서 그냥 참고 견디고 했어요.
나는 원래 손재주 없었어요. 재주라고 하는데 재주가 아니더라고요. 재주로 하는 거 같으면 나는 못 했을 거야. 근데 시간의 힘이라는 것이 그래요. 내가 어디서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내가 만들어지고 다듬어지고 이렇게 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