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9898762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22-07-25
책 소개
목차
환한 봄 … 7
달의 집 … 9
나의 집 … 45
달 아주머니와 나 … 73
별 아저씨와 달 아주머니 … 109
나는 모른다 … 147
은밀하게 아프지 않게 … 175
물의 아이 … 201
상수리나무 위로 날아 … 237
작가의 말 … 267
저자소개
책속에서
내가 없는 집으로 곧장 달려가야 한다. 길을 걷다 사람이 눈에 띄면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분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정신없이 걷고 자꾸만 두리번거린다. 나를 모르는 누구라도 나타나 주기를 갈망하면서 조바심친다.
왜 모두 돌아앉았는지 알 수 없다.
짧은 봄이 지나가면 여름이다. 아직 뜨거운 여름은 도착하지 않았다. 견딜 수 없이 춥고 악취로 숨이 막히는 낯선 봄이 두려워서 진저리친다. 집으로 가는 방향을 잃어버리고 두려움에 빠져든다. 누구라도 모습을 드러내면 용기 내어 물어야 한다.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다고 해도 거듭 묻고 물을 수밖에 없다. -(<환한 봄>)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고, 쇠락해서 기울기를 기다리는 노인이 되면 외로움과 슬픔을 잊게 될 거라는 짐작은 터무니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아버지가 될 수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었다. 외로움이 깊다고 해도 견뎌내면서 차근차근 나이를 먹는 평범한 삶을 살았어야 했다. 나는 늙어 병이 든 아버지를 돌보고, 임종을 지키고, 땅에 묻고 통곡하고 싶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수행하면서 눈물 젖은 얼굴로 회한에 잠길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식을 잃고 슬픔에 사무치는 아버지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다. 그 고통이 얼마만큼 깊고 뼈에 사무칠지 짐작하기 어렵다.
열여덟 봄에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차마 아버지에게 묻고 확인할 수 없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에게 가혹한 일이다. -(<나의 집>)
나는 여진으로 땅이 흔들릴 때마다 조금 더 깊이 지하로 빨려 들어가는 주검들을 떠올리면서 몸서리쳤다. 거대한 물기둥과 함께 모래와 자갈이 땅 위로 솟구쳐 올랐다. 물기둥이 올라왔던 자리마다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단단했던 땅은 늪으로 변했다. 모내기를 마친 논과 작물이 심긴 밭, 자동차가 달리던 도로, 육중한 건물이 서 있던 땅은 흥건히 젖어서 말랑말랑해졌다. 끊임없이 물이 차올랐다. 사람들이 두 발로 딛고 섰던 자리마다 더러운 물이 쿨렁거리며 차올랐다. 땅에 파묻힌 주검들은 젖은 채로 어디론가 떠밀려 갔다.
나는 물속을 떠도는 주검들을 따라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바닷물은 차갑고 물결은 사납게 요동친다. 나는 죽었기 때문에 추위와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다. 광포한 바다는 금세 캄캄해진다. 싸늘한 바닷물이 내 주검을 삼킨다. -(<별 아저씨와 달 아주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