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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91190406086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21-06-21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7
01 추방된 쪽방촌 도시빈민의 대항기억 13
02 빈곤밀집지역 내부의 인간관계
-쪽방촌과 영구임대아파트의 차이를 중심으로 73
03 빈곤의 공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쪽방촌을 둘러싼 외부의 시선들 119
04 보도된 쪽방촌과 보도되지 않는 쪽방촌
-탈식민주의적으로 빈곤의 공간 읽기 163
참고자료 241
에필로그 259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물론 가시화된 현실은 참담할 때가 더 많았다. 쪽방촌에 들어서자마자 파고드는 악취, 동네에 방문할 때마다 눈앞에 보이는 온갖 구토와 비둘기 떼의 습격, 주민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드러나는 크고 작은 폭력, 동네를 울리는 고성방가, 극도의 알코올 중독이나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 또는 혹독한 외로움의 영향으로 일상화된 죽음들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쉬이 익숙해지는 것들이 아니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이곳을 스냅숏처럼 스치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그런 지저분한 풍경으로만 기억되어 끝내 치워 버려야만 하는 공간일 것이다.
그러나 난 판이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 쪽방촌 안에 분명히 사람들의 생동하는 끈질긴 생명력 또한 존재한다는 단호한 믿음, 흡사 아비규환과 같은 겉보기와 달리 사람들이 그곳에서 고통을 공유하며 여러 방식으로 서로 돕고 살아가고 있다는 그런 믿음. 선험적일 뿐이었던 투박한 믿음은 낭만화의 위험성을 자각하고서도 시나브로 두 눈으로 충분히 검증되며 어느덧 실재가 되어 있다.
쪽방촌의 도시빈민들이 녹여낸 목소리에는 쪽방촌이 평당 타워팰리스보다도 값비싼 월세를 지불해야만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 그럼에도 주민들의 가난을 이용해 부당하게 돈을 벌어들이는 일부 사람들의 존재로 인해 세입자들이 월세를 현금으로 내면서도 여전히 비인간적인 공간, 예를 들어 비가 새고 곰팡이와 바퀴벌레가 가득한 천장을 바꾸어 달라고 요구를 꺼내기조차 어렵다는 점, 그러면서도 해당 지역의 개발이나 건물주의 변심으로 인해 이곳에서마저 쫓겨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서울시의 확고한 개입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쪽방촌이 철거 이슈와 닿으면서 문화제의 주제로 자리잡게 된 배경에는, 쪽방촌이 단순히 ‘빈곤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기존의 일차원적 인식을 넘어 그곳에 ‘추방 현상의 역학’, 즉 ‘쫓아내고 쫓겨남의 다이내믹’이 작용하고 있음을 이제는 사회에 폭로하고자 한다는 의지가 서려 있었다. 이것은 해당 문제가 방임할 수 없을 만큼 정말로 심각한 사안이 되었다는 점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발언하고 주체적으로 거주의 권리를 주장할 만큼 쪽방촌 주민들의 역량이 강화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5월 26일, 전원 퇴거 요구(1차) 이후 석 달간 기다릴 대로 기다렸다고 판단한 건물주는 본격적인 리모델링 작업을 위해 철거 반원들을 들여 건물 4층에 있는 공실 두 개의 문짝을 뜯어냈다. 부서진 문 안쪽의 402호에는 아직 거주하는 주민이 있는 상황이었다. 뜯어낸 벽돌과 자재들이 방바닥과 복도의 입구에 널려 동자동 9-20은 세입자들의 출입조차 지장을 받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공사는 아랑곳 않고 진행되었고, 6월 1일에는 화장실 문을, 6월 9일에는 인부들을 동원해 쇠망치로 공실의 내벽을 해머로 허물고 세면장의 수도를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쪽방촌 사람들에게 세면장은 빨래도 하고, 쌀도 씻고, 세수도 하는 복합적 공간이었다. 남아 있던 세입자들은 지하 및 1층 화장실에 문 1개를 다시 달아서 사용하며 버텼다.
6월 10일, 인부들은 남아 있던 주민의 존재 여부를 따지지 않고 건물 4층의 천장을 뜯어냈다.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도착했으나, 민사상의 문제라 인부들에게 주의 조치를 취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난감한 것은 철거 작업을 하던 인부들도 마찬가지였다. 건물주와 회사에서는 세입자들이 모두 이사를 마무리했다며 작업을 들어가라고 하고, 세입자들은 철거를 중지하고 나가라고 하니, 공사한 흔적이 있어야 돈을 받을 수 있는 인부들 또한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괴로운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