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0492430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20-04-20
책 소개
목차
1 원찬스 007
2 GV 빌런과의 조우 015
3 선택의 프로 027
4 여의도 PA 제작지원 036
5 베리 임포턴트 펄슨 051
6 조건이 있어 065
7 시네필들은 시네마테크에서 재회한다 081
8 촬영 시작 093
9 유튜버 윤미와 프리 솔로 105
10 단팥죽은 언제든지 117
11 택시 드라이버 인 서울 127
12 감독 똑바로 해 140
13 영화제 초청 153
14 바르샤바, 진쿠예 바르조 171
15 가편집본 183
16 나 행복하지가 않다 197
17 장례식장 208
18 신 피디와의 미팅 221
19 서울영화제 234
20 막이 내리고 250
작가의 말 258
추천의 말 260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촬영 회차가 반 토막 난 〈원찬스〉 현장에서 프로듀서에게 어떻게 안 되겠느냐고 무릎까지 꿇었지만, 촬영은 전부 마치지 못하고 종료되었다. 십 년 동안 염원하던 내 집을 드디어 짓게 됐는데 공사 기간과 재료가 절반밖에 주어지지 않은 거랄까. 부실시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느 영화과 졸업단편보다도 준비가 안 된 현장이었어요. 제작 기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엔지를 오케이 해야 했어요.”
내가 말해놓고 그것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요약하는 것만 같았다. 노 굿을 오케이 하면서 살아온 인생, 변명 같은 인생. 관객들은 그런 사정에 관심이 없다. 영화는 영화로 말하는 것이다.
“공모전 결과 듣고 며칠간 밥 먹는 게 죄책감이 들더라. 그래서 좀 굶었어. ‘이렇게 하루 종일 비생산적인 인간이어도 되는 걸까?’ 싶고. ‘나는 언제쯤 죄책감 없이 영화를 보거나 맥주를 마실 수 있을까?’ ‘내가 아무 비용이 들지 않는 인간이면 좋겠다’ 뭐 이런 생각을 계속하고 있더라고, 내가. 그거 너무 나쁘잖아, 자신한테. 그치?”
나는 승호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았다. 일인분의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모든 지난한 과정이 지나서 나중에 뭔가가 되어서 ‘그런 때도 있었지’ 하고 추억할 후일담이 되어야 하잖아.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어떡해?”
이 힘든 시간이 쓸모가 있다는 것, 그렇지 않다면 원한이 생기고 만다. 승호는 진심이었다. 승호는 솔지처럼 술기운에 “나 이제 이놈의 영화판 떠날 거야!”라고 외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현장에 갈 타입이 아니었다.
“영화는 내게 좋은 것만 줬는데. 영화가 나한테 상처를 준 게 아닌데. 영화가 미워지고 극장도 안 가게 되더라. 영화도 밉고 나도 밉고……. 나, 그저 영화가 좋아서 그다음은 생각도 않고 영화학교에 갔어. 돌아보면 난 그다지 감독이 되고 싶지도 않았어. 꼭 감독이 돼야 하는 거 아니잖아? 그게 행복의 척도도 아니고.”
행복은 고사하고 어떤 설문에서 영화감독이 가장 스트레스 많은 직업군이라고 하던걸. 승호가 덧붙였다.
“내가 사랑하는 걸 미워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걸 더욱 사랑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어.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뭘 위해서 이 모든 일을 하겠어?”
그리고 언젠가 마침내 극장으로, 그 어두컴컴한 곳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신기루를 좇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리고, 완성된 영화가 빛이 되어 먼지를 뚫고 흰 스크린 위에 움직이는 환상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우리가 보낸 세월이 빛이 된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