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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91056358
· 쪽수 : 408쪽
책 소개
목차
1장 수수께끼의 의뢰
2장 가우디 프로젝트
3장 라이벌의 방식
4장 보이지 않는 벽
5장 재미있는 발상
6장 첫 번째 임상시험
7장 우리가 일하는 이유
8장 진검승부
9장 완벽한 데이터
10장 정당한 보상
11장 설계도의 주인
12장 기술자들의 긍지
리뷰
책속에서
"라이벌인 쓰쿠다제작소에 한번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라이벌?"
쓰쿠다는 무심코 되묻고는 아까부터 딱딱한 표정을 풀지 않는 자이젠에게 고개를 돌렸다.
"쓰쿠다 씨께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실은 다음번부터 밸브 시스템을 경쟁입찰로 결정하게 됐어요."
자이젠의 말에 쓰쿠다는 눈살을 찌푸렸다.
"밸브끼리 성능도 다를 텐데 가격 경쟁을 시키겠다고요?"
"가격뿐만 아니라 성능도 포함해서요."
자이젠 대신 시나가 대답했다. "제가 나사에서 쌓은 경험을 꼭 데이코쿠중공업과 함께 꽃피우고 싶어서요. 저희 회사에서는 지금 나사의 밸브 시스템보다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는 중입니다." (…)
"이번 경쟁입찰에서 낙찰된 밸브 시스템이 다음 중기계획에 채택될 겁니다."
"향후 3년간 사용할 밸브를 그걸로 정한다고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이야기였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중기계획에 사용될 밸브는 새로운 버전을 설계해 이미 개발에 착수했다. 만약 경쟁입찰에서 패하면 투자금도 회수하기 어렵다. 두말할 것 없이 쓰쿠다제작소의 중대 위기였다.
불편한 상사, 불편한 고객, 불편한 동료. 죄다 조직에서 일하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그걸 극복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출세임을 기후네가 깨달은 건 언제였을까.
지위와 입장에 따라 시각도 사고방식도 달라진다. 그게 바로 조직이다. 지위란 시야이며 시점의 높이다.
의사도 조직의 일원인 이상, 그러한 틀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기후네도 젊었을 때에는 나름대로 고생을 했다. 하지만 학과장이 된 지금은 다 옛 추억이다.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 예외는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오전 10시에 찾아온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다. 타원형 회의 테이블을 둘러싼 참석자는 합쳐서 35명. 아시아의과대학 이사회는 세 조직을 대표하는 멤버로 구성된다. 대학과 병원, 그리고 그 둘의 상부조직인 이사회다. 물론 제일 힘이 센 곳은 대학도 병원도 아닌 이사회다. (…)
"그 인공심장이 얼마나 참신한지는 알겠습니다."
기후네의 설명을 듣고 고마가타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교수님의 모교와 달리 우리는 사립 대학입니다. 즉, 무슨 일에든 재원이 필요하고, 사업을 벌이는 이상 채산을 맞춰야 해요. 작년에 이사회에서 승인한 연구개발비를 사용하시는 건 상관없습니다. 다만 그러려면 당초 계획대로 진행하실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떠십니까?"
"개발 단계에서 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지만, 그것도 조만간 해결될 테니 앞으로는 차질 없이 진행하겠습니다."
기후네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대답했다. 고마가타에게 울컥하는 마음이 소용돌이쳤다.
네놈이 뭘 알아. 책상에 앉아 숫자놀음만 하는 놈이.
왜 이 일을 하는가? 개발 과정이 길고 힘들더라도 그 물음의 답만 알고 있으면 헤매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답은 단순명쾌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일단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기업인 이상 당연하지만, 이익을 올리기 위해서다.
"지금 우리의 주력은 소형 엔진이지만, 앞날을 위해 의료기기를 또 다른 수익원으로 삼았으면 해."
"사장님, 정말로 그게 가능하다고 믿으십니까?"
에바라가 비아냥거리는 투로 물었다. 에바라는 무슨 일에든 기탄없다. 그리고 가식도 없다. 누구에게나 겉과 속이 똑같은 태도로 대한다.
"믿어. 그래서 자네들한테 부탁하는 거야."
네 사람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원래부터 사장이 시킨다고 덮어놓고 따르는 직원들도 아니거니와 그런 사풍도 아니다.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은 하지 말라고 다름 아닌 쓰쿠다 본인이 직원들을 교육시켰다. 이건 연구자였던 시절부터 지켜온 쓰쿠다의 신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