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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해방전후사/한국전쟁
· ISBN : 9791191432114
· 쪽수 : 300쪽
· 출판일 : 2021-06-25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 오판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자유 진영과 소련 중심의 공산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 초기. 북한은 어떻게 미국의 영향권에 있던 남한을 침공할 마음을 먹을 수 있었을까? 신생국 중화인민공화국이 내상이 채 아물기도 전에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한 까닭은? 거기에는 여러 지도자들의 오산과 오판이 점철되어 있었다.
2 충돌
세계 3대 동계전투로 꼽히는 장진호 전투를 비롯, 처절했던 1950년 겨울 한반도 북부 전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미군의 최강 화력이 산악지형에 무용지물이었던 반면, 중국군은 이미 국공내전으로 다져진 게릴라전의 베테랑이었다. 한편 진영을 막론하고 무서운 적이 있었다. 바로 혹한이었다.
3 대치
1.4 후퇴 이후 38선 부근에서 치열하게 벌어진 공방전. 전쟁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었고 한반도의 군인과 민간인은 지쳐갔다. 그렇게 시작된 정전협상. 그런데 중국과 소련은 전쟁이 지속되길 바랐고, 그 결과 협상은 2년 넘게 이어졌다. 그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전쟁은 이후 미국과 중국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오늘날 신냉전이라고도 불리는 두 국가의 대치 구도를 우리는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해제: 미중전쟁이라는 시각에서 본 한국전쟁
참고 자료
도판 출처
리뷰
책속에서
1949년 8월, 상황이 변했다.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한 것이다.
이로써 소련도 미국과 대등한 힘을 갖게 되었다.
그 전까지 미국은 베를린, 한반도, 그리스, 터키 등에서 소련과 첨예하게 맞섰지만 핵무기를 독점하고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소련이 미국의 핵 독점을 무너뜨리면서 미국은 대외 전략을 대대적으로 고쳐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 달여 뒤, 국제질서에 커다란 충격을 던지는 또 다른 변수가 발생했다.
중국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것이다.
1945년 이후 4년이나 이어진 치열한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 주석 및 혁명군사위원회 주석에 올랐다.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으로 옮겨 가야 했다. 중국이 두 개로 나뉘었으나 사실상 중국이 공산화된 것이다.
이는 단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이 한반도를 대소련 방위선에서 제외하자 김일성, 스탈린, 마오쩌둥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949년 봄 김일성과 스탈린이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38선 이남에서의 주한미군 철수, 중국의 공산화, 소련의 원자폭탄 보유라는 세 가지 변화가 동북아 정세를 흔들어놓은 것이다.
1950년 3월, 김일성은 다시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을 만났다. 스탈린의 생각도 달라져 있었다. 스탈린은 국제적 여건으로 보나 한반도 상황으로 보나 북한이 행동을 개시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스탈린이 생각하기에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을 제압했으니 이제 북한을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은 중·소 동맹으로 주춤할 수밖에 없고 원자폭탄을 보유한 소련의 위상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었다.
미군이 북상을 감행하자 10월 14일 중국은 다시 중앙정치국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 자리에 참석한 인민지원군 총사령관 펑더화이는 출병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펑더화이는 미군이 평양-원산 인근에서 진격을 멈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군이 설정한 북진 한계선과 비슷한 라인이었다. 중국은 미군이평양-원산 선에서 멈출 경우 중국군이 평양 이북 지역을 점령하게 되어 싸우지도 않고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미군의 북진 한계선을 자신들의 국방선(국가방위선), 즉 국경선으로 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