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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1719192
· 쪽수 : 120쪽
· 출판일 : 2023-10-20
책 소개
목차
제1부
칸나/ 악몽/ 지독한 설득/ 오십견/ 태양광 모듈/ 껌딱지 3/ 정월대보름/ 그믐밤/ 척!/ 북국새/ 우는 바람/ 홍매/ 천국의 새/ 십리벚꽃 / 봄, 차밭에서
제2부
그림자/ 오늘의 운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11월/ 고라니/ 귀가/ 파랑/ 낚시/ 망종/ 일진/ 저녁 풍경/ 규칙은 지키라고 있지/ 시든 꽃/ 몽유도원도/ 껌딱지 7
제3부
둥근 그리움/ 산골散骨/ 오동꽃/ 애호박/ 어미 혹은 거미/ 은비녀/ 계절의 냄새/ 만추/ 선소공원에서/ 꽃무릇 / 그날 이후/ 입동/ 문향文香/ 폭설暴說/ 5월
제4부
모과佛/ 꼬리/ 밤꽃/ 수레국/ 표절/ 노래방에서 쓰는 편지/ 금지/ 거미/ 도반/ 지구를 돌리다 만 것들 / 돌부처/ 능소화/ 마스크/ 시작법/ 낙관
저자소개
책속에서
오후 다섯 시와 여섯 시 사이에 있었다
바람은 차가웠고 달은 눈썹을 비켜 서쪽으로 갔지만
나는 동쪽이 될 수 없었다
길의 지문을 다 지우고 다시 길 안에 갇히고 싶었다
두렵고 무섭고 아팠다
달은 반쪽을 찾아 강물을 따라갔지만
희망은 강물보다 빠르게 달을 비껴갔다
한동안 아침이 오는 것조차 잊었다
검게 젖은 슬픔을 꺼내 널었다
악몽은 아무리 뒤집어서 빨아도 희어지지 않았다
- 「악몽」 전문
바람이 울고 있었다
창문을 마구 흔들면서 울고 있었다
들어줄 귀를 찾는 것 같았다
꽉 다문 유리창을 열어
말해 봐
뭔 말이든 해 봐
다 들어줄게
귀를 활짝 열어 속삭였지만
바람의 말은 제 몸속에 둘둘 말려있었다
밤새 울다 그치다 울다 그치다
끝끝내 말하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울음은 그치고
문이란 문은 다 열려 있었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구겨진 빨래가 젖은 얼굴로 포개져 있었다
- 「우는 바람」 전문
나를 향해 뻗쳐오는 손은 왜
매번 오른쪽인가
옳은 쪽이 아니고 오른쪽
바른쪽이 아니고 오른쪽
우기는 쪽은 집요하고 우악스럽고
훅훅 들이미는 주먹을 다 맞아들이던 맷집은
헐거워졌다
비겁하고 나약하고 초라해 날개가 꺾인 새 같다
악한 것이 선한 것을 집어삼키듯
상한 것이 덜 상한 것을 썩게 하듯
주눅 든 발부리에 힘을 모으고
두 다리 꼿꼿이 세우려고 안간힘 쓸수록
수평자의 눈금이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한쪽이 무너지자 어느 쪽도 내 편이 아니다
내 몸 안에서 돋아나는
이 무지막지한 통증들에 대항하는 건
부질없다
살을 뚫고 나오는 신음을 더는 삼킬 수가 없다
- 「오십견」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