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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1816068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21-11-26
책 소개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아마도 날개떡볶이에서 일을 하다 나왔을 철규씨는 맨발에 슬리퍼 바람이었어요. 11월은 맨발로 다닐 계절이 아닌데. 그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루이뷔통 가방을 안고 있었어요. 그 가방을 안은 채로 저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왔어요.
“저기요, 철규씨. 다음에 얘기하자니까요.”
그는 듣지 않았고 눈동자를 어디에다 두고 온 사람처럼 텅 빈 눈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했어요. 내 방은 1층, 여섯 걸음만 가도 되는 곳이었지만 발을 뗄 수가 없었어요.
“한대리님을 사랑한 거 말고, 제가 잘못한 일이 뭐가 있어요?”
달아나도 안 되고, 웃어 보여도 안 되는 그 순간이 오자 저도 모르게 비명이 터지더라고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어요.
“야, 이 미친 새끼야! 그게 잘못한 거야! 왜 니 마음대로 나를 사랑하고 말고 해? 너 돌았니? 나한테 왜 이래, 이 미친 새끼야!”
그가 언뜻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 몸을 홱 돌려 뛰기 시작했는데…… 더는 안 붙잡을 줄 알았는데.
엄마와 아버지가 영안실에 들어섰을 때 그곳엔 과장님이 있었어요. 과장님은 푸들푸들 떨고 있었어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람처럼, 머리통이 3분의 1이나 으깨진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어요. 수정아, 한수정 대리야. 이러지 마. 일어나. 아마 그런 말을 하고 싶었겠죠. 하지만 과장님의 입술은 열리지 않았어요.
엄마의 입은 그보다 더 굳게 닫혀 있었어요. 울지 않으려고, 아니 눈물이 눈에 가득 차 내가 안 보일까 봐 눈을 더 크게, 더 크게 뜨며 엄마는 나에게 걸어왔어요. 눈을 너무 크게 홉떠 엄마는 엄마 같지 않았어요. 천천히 한 걸음씩, 이 상황이 너무 두렵고 무서워 후다닥 다가갈 수도 없다는 듯이 엄마는 느리게 걸어와 내 목을 한 팔로 감싸 안았어요. 그리고 나머지 손을 내 등에 넣은 다음 나를 일으키려 했어요.
“가자. 집에 가자, 내 새끼…… 내 강아지. 집에 가야지. 여기 너무 춥다.”
누가 엄마를 잡아 흔들기라도 하듯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아마 엄마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거예요. 나는 다 알아들었지만요. 나를 일으키려는 엄마를 말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엄마는 끝내 나를 일으키지 못했어요. 엄마의 팔은…… 지푸라기 같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