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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1859294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22-08-16
책 소개
목차
서序─곰방대를 든 연당여인蓮塘女人_7
신들의 새벽으로 떠나는 인간의 저녁_11
Jeff Mangum, 《Orange Twin Field Works Vol.I》, 2001
희디흰, 내세來世가 없는 길몽吉夢_23
White Noise, 《An Electric Storm》, 1969
오필리아, 기면발작嗜眠發作의 꿈_37
Laurie Anderson, 《Big Science》, 1982
간화선看話禪의 반대편—시詩에 관한 것들_53
Hölderlin, 《Hölderlins Traum》, 1972
토란향_63
Harmonia & Brian Eno, 《Tracks & Traces》, 1976
대살代殺, 큐비즘의 날들_71
Exuma, 《Exuma》, 1970
지베르니 정원의 부엽浮葉들_87
Harmonium, 《Si on avait besoin d'une cinquième saison》, 1975
금요일의 자매들_101
Azure Ray, 《Burn and Shiver》, 2002
침소寢所의 무늬_113
Huun-Huur-Tu, 《The Orphan's Lament》, 1994
산 자의 인력, 죽은 자의 척력_125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먼지의 절기들_143
Aster Aweke, 《Aster's Ballads》, 2004
별자리의 산란기_149
Hawkwind, 《Space Ritual》, 1973
거울 앞의 놀이들_161
Psychic TV, 《Force the Hand of Chance》, 1982
축제/네크로필리아_173
Garmarna, 《Vittrad》, 1993
서랍 속의 생물들_185
Tom Tom Club, 《Tom Tom Club》, 1981
밤의 세공술_195
Kishori Amonkar, 《Samarpan》, 2003
……로 갔던 사람들_209
한유주, 『달로』, 2006
몽상어 편람夢想語 便覽_237
The Magnetic Fields, 《69 Love Songs》, 1999
눈이 내리는 방_245
Robert Johnson, 《The Complete Recordings》, 1990
위경僞經의 낮, 진경眞經의 밤_253
Boubacar Traoré, 《Je Chanterai Pour Toi》, 2003
망각의 의자_271
요가 선생을 둘러싼 담론
신들의 황혼/별사냥_275
Musa Dieng Kala, 《Shakawtu》, 1996
배농排膿_283
Nikhil Banerjee, 《Raga Malkauns》, 1998
종終─처네를 쓴 여인_291
저자소개
책속에서
잘 만들어진 음악의 다수는 듣는 이와 만드는 이 사이의 왜곡을 매개로 한다. 자연음은 ‘음향’은 될 수 있어도 ‘음악’은 될 수 없다. 연주자와 청자 사이에 규약된 질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산야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 한줌은 ‘좋은 음악’이 될 수 있는 반면, 음반에 담긴 바람 소리만으로는 ‘음악’이 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왜곡이라는 굴절을 통해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은 글쓰기에서도 비슷하다. 보르헤스의 「알레프」처럼 모든 시간, 모든 공간,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는 설득 매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투명함이 문학의 미덕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정교하게 세공된 왜곡을 나는 그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복수 교차되는 여러 기준 가치는 세상을 아주 해독하기 어려운 실뭉치로 만들어버리곤 하지만, 해독 불가 문제지의 답변 항목에 가장 좋은 해답을 써넣을 수 있는 수험자는 해독 불가 그 자체를 답변으로 받아들이는 자, 문제를 다시 문제화하는 자뿐인 것이다.
_「간화선看話禪의 반대편—시詩에 관한 것들」
제발, 제발, 애원식의 편지를 쓰긴 싫었다. 내 등뼈를 만지고 나를 물고기라고 부르던 사람이 있었다. 가시에게 반하겠어, 여름 숲길의 장미 덩굴에게 반하겠어. 난 노란 모자를 썼고 오늘은 놀러가는 놀이와 놀러 나가지 않는 놀이를 하는 날. 멀리 있는 것들은 갈 수 없어 슬픈 게 아니라, 가고 싶어지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곤혹이라는 이름으로, 지옥문 앞의 흰 사제들과 만나 라일락 아래의 검은 제의를 올린다. 그것은 리듬이고 노래고 선물이다. 나는 배고픈 염소처럼 종이를 씹고 내가 쓴 글자만큼만 울었다.
_「대살代殺, 큐비즘의 날들」
사람을 사랑해야지, 라고 말하며 나는 밤길을 걸었다. 인적은 없고 버려진 자전거는 검은 손으로 안장만 반짝반짝 닦고 있었다. 사람을 사랑해야지, 라고 말하며 나는 몹시 지쳐가고 있었다. 설탕이 먹고 싶었고 더운 내 등에 귀를 대고 싶었다. 내 그림자 속에 손가락을 넣고 등불은 혀와 코를 만든다. 여러 색 색연필로 채울 수 있는 것은 빈칸이 많은 일요일뿐. 아이들은 노는 일에도 번거로운 순서가 너무 많았고, 고리가 많은 외투 때문에 옷을 벗을 때도 옷을 입는 것처럼 보였다. 나라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너라는 사람을 사랑할 때 불 켜진 간이화장실에서는 여자애들만 걸어나왔다. 문 두드리는 소리, 문패의 이름이 조금씩 바뀌는 소리, 엄마 뱃속에서 발가락이 자라고 그때부터 너는 물고기가 아니었다. 사람을 사랑해야지, 라고 말하며 나는 걸었고 등불이 내 그림자를 만질 때마다 눈이 생겼고 귀가 돋았다. 기억할 수 없는 것들만 꿈이 될 자격이 있는 걸까? 사람을 사랑해야지, 라고 말하며 나는 밤길을 걷는다.
_「거울 앞의 놀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