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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1897623
· 쪽수 : 173쪽
· 출판일 : 2023-09-15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뒤에서 당신을 안았더니 물비린내가 나 속을 알 수 없는 그 푸름이 두려워 발도 담그지 않았는데 바다는 생명이 시작된 곳이라기보다는 끝나는 지점 같다며 갈매기들이 영혼의 자릿세를 받으러 몰려다니는 깡패 같다며 수평선인지 그 너머인지를 바라보던 당신의 눈동자 그 속에 뛰어들어 물질이 하고 싶었네 – 11
물음표 – 12
무너지는 – 14
보육교사가 만든 어느 쇠파이프 – 18
아빠는 나비 – 20
구연동화 워터월드 2 – 22
새가 되어 가리 – 24
네 자리는 어디인가 – 26
주파수가 맞지 않는 재난방송 – 29
흰 눈—white out – 32
하나라 제자리에 두었습니다 – 34
아니다 – 36
폭염경보 – 38
제2부
그 사이 – 47
여름 우울 – 50
멀리 던진 돌은 찾을 수 없다 – 54
떠돌이 – 57
엎치락뒤치락 – 60
정읍, 염소 – 63
설 다음 – 66
엉망진창 – 68
사과 껍질을 깎다 – 74
개똥이의 고백—고부에서 2 – 76
비대칭 – 78
지금은 가벼운 시대 – 81
제3부
고독한 신년사 – 87
1.4 후퇴 이후에 – 90
검붉은 도미노 – 92
우리 동네 마트에서 남자 – 94
녹슨 연주자 – 96
구운 달걀 18 – 98
배시시 – 101
삼월과 눈 – 104
미안해 고맙다 – 106
일렁거리다 – 109
창궐기 1 – 112
하루가 일 년처럼 참호에서 웅크린 – 113
엊그제 – 116
그림자를 짓이겨 무릎에 발라 주었다 – 118
제4부
13월 – 123
비들이치는창가에팝송대백과 – 126
기차는 석양을 꺾으며 달리네 – 128
브리콜라주 – 131
네가 시를 쓰듯 시를 읽는 밤들 – 134
어떤 어둠 – 137
낙하산 매는 법 – 140
12시 – 144
모두 알지만 나와 시집만 모르는 일 – 146
어느 날, 잠을 – 149
저기요 환불이 된다면 – 152
P를 추억 – 154
해설 전병준 시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 157
저자소개
책속에서
엎치락뒤치락
혼자라는 생각 닳지 않았다
바람과 파도는 닿지 않았다
어땠을까 겨울에 너는 구석구석 희뿌연 먼지
휴지에 물을 묻혀 막막한 안쪽부터 닦아 낼까
뱉다 만 한숨 추스르다 고개를 뒤로 젖힐까
그때부터 모로 튼 슬픔마저 삼켰는지
보일 듯 말 듯 수평선 혼자라는 윤곽
광어회에 초장을 듬뿍 찍어 상추와 깻잎을 겹쳐
어떤 희망 같은 걸 얹고 소주잔을 부딪치다 보면
조금씩 나아가는 느낌으로 달아오르는 것 같았는데
바다에 그리고 겨울에 왔지만
버티는 일이야말로 울음이나 눈물보다 멀미가 심해
지독한 바람 때문일 거라고 파도 때문일 거라고
방파제 끝까지 달렸지 가슴이 터져라 달렸지
잠시 숨을 멈출까 생을 저밀까
농담처럼 고여 묘지가 된 자리
홀로
지난 계절에는 지하철에서…… 화력발전소에서…… 방 안에서……
고시원에서…… 노동자가, 작가가, 배우가, 세 모녀가,
선량하기만 했던 누군가와 누군가가 튕겨 나가
아무 데나 깨져 박힌 돌멩이 파편처럼 떠났지만
세상은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으며
문득문득 혼선되며 연락이 닿는 듯했으나
어설프게 은폐된 문장들만 맴돌아
사람들은 어느새 퇴화를 선택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않으려고
혼자…… 낯선 골목에 접어들면
늘 막다른 길에 들어선 것처럼
돌아서지도 못한 채 경직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그게
사랑하고 있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내가 나를 죽이는 것 같지만 그게
누군가를 죽이지 못해 대신 죽이는 것이라면
주체할 수 없는, 숨겨지지 않는
그게 감정인지 상태인지 욕망인지
불분명한 울렁거림
혼자라는 울컥거림
그림자를 짓이겨 무릎에 발라 주었다
온종일 쉬지 않고 은행잎이 내렸다
도로에 터져 죽은 새처럼 바스러질 것 같아
택배 상자에 적힌 이름과 주소 위에다
검정 유성 매직펜을 덧칠하는 중이지만
그림자가 흘러내리도록 울 수 있다면
마음에 심장처럼 판막이 있다고 오해했다
한참 말문이 트이던 때 같았는데
엄마는 아궁이에서 연탄을 꺼내며 울었다
방이 한 칸, 부엌도 하나, 눈물은 두 개
연탄구멍은 너무나 많아
두꺼운 솜이불 아래 입김만 내민 채
엄마 눈에 달린 여러 개의 그림자를 세다가
잠이 들었고 겨울이 다 가 버렸다
투두둑 떨어져 내리는 고드름
언젠가 저토록 허망한 소리를 내며 떠날 텐데
쌀이 떨어지면 덩달아 연탄도 떨어져
어떻게 울음에서 소리만 걸러 내고 엄마는
삼십 촉 전등알처럼 깜박거렸을까
올이 풀려 버린 잠의 뜨개들
부르트도록 하얗게 일어난 거스러미들
그림자마저 무너뜨리고 파헤쳐서 도굴하는 굴착기
철로 위에서, 소스 배합기에서, 철제 코일 아래서
좁은 골목에서 믿을 수 없는 심폐소생술이 시도됐지만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마음이 생각을 들어 올리는 지렛대라고 믿었던 것 같다
기억상실증이 오면 내가 누구인지 뭘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숨은 잃어버리지 않을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학교와 병원까지 폭격했고
핵미사일을 사용할 수 있다는 계획을 당차게 발표했다
신은 질문의 방향일 뿐
대답을 구하는 건 너의 그림자거나 나의 그림자
그림자 저편에 뭘 박아 대는지 관자놀이가 온종일 아팠다
심하게 넘어지며 바닥에 끌리고 쓸려서
마음이 잘 일어서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