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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079127
· 쪽수 : 123쪽
· 출판일 : 2022-03-14
목차
1부 상냥한 인생은 사라지고
처서
부엉이와 빨간 기억
상냥한 인생은 사라지고
잭살 할매 잭살 밭에 잭살 나무 그림자 진다
pen잘
비밀의 정원
강가에 앉아있는 한 사람이 있다
한恨어머니
향자곳
나는 여러 번 죽고 싶다
어떤 마음
어떻게 나는 나에게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상추
도청 애서愛書
고독한 덩어리
2부 중간에서 만나자는 말
스피노자자두나무
포구 나무
비정성시非情盛市의 크리스마스
새는 겨드랑이에 붉은 노을을 숨기고 있다
가는 봄
떨어진 꽃잎은 말이 없다
찬란한 한때
중간에서 만나자는 말
나는 겨울만이 아닙니다
기다리는 하루
휘파람을 부는 일
먼 곳이 먼 곳으로
사람들은 그곳에 왜 가냐고 물었다
3부 너의 그늘을 다 베어가지는 않을게
너의 그늘을 다 베어가지는 않을게
누가 내 귓속에 꽃을 심어 놓았나
곱닥한 봄
이별
거기 있던 돌
나눠 가진 계절
이상하고 슬픈 파랑
부처님, 그 손가락 접어주세요
어떤 사람의 그리움의 방식
새가 왔다
이 거대한 세상에 홀로
봄날, 수선화 피는
늙은 고향
4부 기다려, 너에게 가는 중이야
기다려, 너에게 가는 중이야
본다
삶의 질
이별은 단지 맨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말하지 못한 말
청동거울 품은 너럭바위
어떤 주소
연설한 값
씨앗 한 알
까께비한 밤
농사일지
해찰 핀 것도 아닌데
소리는 뭉쳐 흘러간다
소문처럼 너는 가고
해설 상냥하고 다정한 시의 마음 | 이은지(문학평론가)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상냥한 인생은 사라지고
삼십 년 동안 아비의 생을 지탱해 준
버드나무 한 그루
도대체 얼마나 한다고
오라비는 제멋대로 버드나무를 팔아버렸나
덩달아 뿌리째 뽑혀나가
마구 뒹구는 기억들
버드나무 아래 앉아서
침착하고 내성적인 죽음을 기다리던 아비는
생생한 헛헛함으로 허둥대신다
다 해봤어요
이생에서 더 해볼 게 없어서
버드나무가 돈이 되나 알아봤어요.
귀농한답시고 들어와 다 팔아치우는
오라비는 눈치가 없는 건가요,
배짱이 무궁무진한가요
아비는 아직 살아 있고
오라비는 돈을 벌었어요
실패했다, 라는 문장의 주어는 언제나 저예요
다행이지요
제가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저는 매번 지고 말아요
팔랑이던 초록 버드나무 잎사귀처럼
상냥했던 인생은 이제 바빌론 강가에서나 만날 수 있어요
버드나무 팔려나갔다는 소식을 들은 날,
눈먼 가수가 검은 제비 같은 선글라스를 끼고
부르는 노래를 밤새 들었어요
별이 흘리는 눈물처럼 비가 내린다고
혼자인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하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다고
부엉이와 빨간 기억
깊은 밤 부엉이는 훅훅
상수리나무 젖은 잎처럼 운다
훅훅 허공에 빈 주먹질 한다
훅훅 마른 나무에 입김 분다
나뭇가지에 훅훅 새순 돋는다
부엉이는 나무다 나무는 부엉이다
나무는 훅훅 어둠 속을 날아다닌다
적적한 달 귀퉁이 물고 가다가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에 흘리고 간다
반짝, 무덤에서 피어나는 빛
부엉이는 훅훅 자란다
부엉이는 밤새 여기저기서 훅훅 둥글게 울어쌓고
나는 고향집에 오면 아무 때나 잠이 쏟아진다
머리는 늘 동쪽에 두고 잔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해가 뜨는 쪽을 바라봐야 한다는 어른들의 무서운 말
앞산 무덤을 보며 자란, 오래된 습관이 빚어낸 말
누워 있는 방은 오래전 흙집 외양간이 있던 자리
훅훅 나무가 우는 밤이면 떠오르는 시절 하나,
다섯 살 무렵 외양간에 들어가
뽀얀 송아지처럼 훅훅,
어미 소의 젖을 빨아 먹던
빨간 기억
말하지 못한 말
앞집 할매 담장 위로 쑥 고개 내밀고 물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뭣하요?
종일, 무화과나무 아래 놀고 있는 어린 고양이들을 보았어요
고양이를 지키는 어미 고양이를 보았어요
텃밭에 옮겨 심은 상추는 언제쯤 뿌리 내려 와싹와싹 자랄까 생각도 했어요
드디어, 저 멀리 산 아래 기차가 지나는 시간을 적어두었어요
배가 고프면 감자를 쪄서 검은 개와 나눠 먹으며
햇살 잘 드는 마루에 나와 시를 읽어요 그러다가
담장 너머 감나무 잎사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오래 바라봤어요
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따, 마당에 풀이 가득하고만, 할 일이 많겄소
풀을 다 뽑아버리면 풀벌레는 어디서 사나요?
여름밤 풀벌레 소리는 어떻게 듣나요?
그러면 제 귀는 밤새 잠 이루지 못할 텐데요,
마당을 북방의 초원이라 부르고 싶어요
무성해진 그곳에 누워 은하수를 보고 싶어요
라고, 말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