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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079325
· 쪽수 : 125쪽
· 출판일 : 2022-08-25
목차
1부
여행하는 떡갈나무
사물들
유자차 한 잔
목요일 아침
실종
착시
동그라미
외출
야외
어떤 말이 공기에 스미면
지팡이와 당나귀
이쑤시개 식후경
12월의 노래
마침표를 조문하다
2부
내가 가꾸는 꽃
돼지 국가의 창설
보성에서
각방
사랑니를 뽑으며
언니의 이혼
매형
노을
화분
방에 대한 기억
붕어
꿈속의 국경
벌이 쏘다
사랑의 습관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랑
3부
우크라이나를 위한 기도
유령의 시대
말과 칼
꽈리 생각
초록은 성업 중
빈집
인왕산 아래
장마철에 쓰는 편지
부처님 오신 날
춘몽
아침의 소란
고아
전단지
버스를 기다리며
그렇게나 많은 눈
어머니와 틀니
외팔이의 시
4부
병아리 상자의 비약 같은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신부대기실에서
고작이라는 말
옥희 씨의 겨울
한 판 잘 놀았습니다
한밤의 사골四骨
김애조는 누군가
해남의 경야經夜
닭장 속에 노동이
풀들이 마를 때
저자소개
책속에서
어떤 말이 공기에 스미면
추석 지나자 대기가 감미로워졌다
늘 마시는 공기지만 코끝에 맴도는 대기에서
감미로운 고독이 느껴졌다
올 추석은 누이도 매제도 오지 않았다
대면하지 않는 격리감도 제법 맛이 드는지
고독하다는 느낌도 느낌뿐
가을 개인전을 마친 딸로부터
두 고모, 세 고모네 집을 차례로 돌며
작품을 하나씩 전달하고 있다는 문자가 왔다
“가족들 품에 있으면 좋을 것 같아 고모네로 보냈어요”
그 말이 공기에 섞여든 모양이다
딸이 보낸 문자를 가슴에 품고
내가 누군지 알고 싶어 중랑 천변을 걸었다
새들이 정교한 설치물처럼 다리를 접고 서 있었다
접는 기술을 보여주는 새를 구경하고
밤늦게 귀가해 우엉차를 끓이는데 갑자기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았다
마침표를 조문하다
조문을 가야 하는데
배를 깔고 엎드려 책장을
뒤적거리며 뭉그적거리고 있다
벌써 세 번째 읽는 책
첫 번째, 두 번째 읽을 때 그은
밑줄 친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책은 그 책이고
조문을 가야 하는데
망설이고 있다
그새 내 입장이 바뀐 게다
인식이 변했다는 증거로서의 입장 총서
죽은 자만이 유일하게 입장이 없다
하나의 총서를 완성하고 찍혀있는
마침표 앞에서 뭉그적거리는
내 입장이 모호하다
모호한 대로
일단 여기까지
마침표를 남겨둔 채
조문을 가기 위해 책을 덮었다
유자차 한 잔
하루가 다르게
살아있다는 게 느껴진다
오늘 생긴 무덤과
오늘 태어난 갓난아이의 울음과 함께
세상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내게 남은 건 무엇일까
몇 가지 질문에서
나는 살아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있는 이대로
유자차 한 잔,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