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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079509
· 쪽수 : 136쪽
· 출판일 : 2022-11-20
목차
시인의 말
1부
로제타 현상
이별연습
유폐를 읽는 방법
꽃이 피는 병
홍어
우슬
사막
낙타
질량 불변의 법칙
선인장
마을버스
모자
마늘밭의 시지프스
울음의 습성
2부
분꽃
설산이 그립다
석양증후군
헛꿈은 달콤하다
호박잎 잎새마다 눈물 고이는
달밤
사이의 서書
물결을 보고 있으면
슬픔도 기다려지는 때가 있다
대문 앞에 봄을 세워두고
달팽이는 싫어
비를 부르는 방식
하루살이 고백론
막차
3부
봄봄
설경雪景
설경 2
수락산 산 1번지
도깨비불
바랭이를 뽑는 시인
지지대를 세우다
처서 지나고
육묘일기
냉이씨
늦가을
노인 일기
늙어서 좋다
굽은 나무를 돌아보다
4부
바람고지에 서서
강변길 따라
동백정에서 봄을 만나다
마량포구의 저녁
풍등
근황
제주, 돌담
차귀도 일몰
금모래 해변
공원묘지에서
고향
건원릉 억새
그러니까 참새가
정처 없다는 것
해설
꽃과 아버지와 사막의 심상 | 공광규(시인)
저자소개
책속에서
꽃이 피는 병
대나무꽃을 본적 있다
백 년에 한 번은 활짝 꽃피워 보겠다고
뼈마디 갈고 닦는다는데
한 번은 꽃피고 가리라
한사코 뻗어 오르는 집념의 발돋움으로
단 한 번 꽃피우고
서서 죽는 대나무
꽃이 피는 병이 들어 꽃이 피고
꽃이 피어서 죽어버린다니
너무 일찍 꽃피우고
오랫동안 시들어가는 것이
사는 일이고 보면
단 한 번 꽃이 피고 죽는 대나무는
진즉에 세상을 알아버린 듯하다
세상 곳곳마다 키만 키우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빽빽한데
어쩌면 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몰라 천천히 꽃피는 법을 날마다 연습 중이다
*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차용
분꽃
해마다 같은 자리에 피는 줄도 모르게 피는 꽃
꽃밭 한 귀퉁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자라서
해질녘 고개 들며 환하게 웃는 꽃
화장 한 번 해 보지 못한 어머니 주고 싶어서
꽃이 필 때마다 뽀얀 분가루 모아서
단단히 여며놓은 까만 꽃주머니
하얀 분 한 통 사보지 못하고
분꽃 같은 시절 다 보낸 어머니
까만 주머니 속에 꼭꼭 담아두고
꺼내지 못하던 여자였던 어머니
단단한 씨앗 속 하얀 속살 파내어
까만 얼굴에 바르고 까르르 웃어보이던
맨발의 어머니가 환하게 핀
내 가난한 꽃밭에 달빛 퍼붓는다
호박잎 잎새마다 눈물 고이는
도드락도드락 배가 불러오는 저 달
뻐꾸기 소리 불러들이는 한여름밤 푸른 달빛
밭두렁에 호박잎 무성하고 애호박들 도툼도툼 살이 차오르는 유월
호박잎 따서 무르게 찌고 애호박 풋고추 찌면 맛나게 잘 드시던 아버지
작년 여름에도 생신상 앞에서 활짝 웃으시던 아버지
열사흘 달빛 부드럽게 내리는 아버지 생신날
파란 잔디도 아직 터를 못 잡은 아버지 유택 찾아간다
땀으로 얼룩진 런닝셔츠 벗어 던지시고 옮겨 가신 그곳
꿈에 그리던 파란 잔디마당이 있는 집 예쁘게도 가꾸셨네요
아직도 새집을 짓느라 고생하시는지요
소주 한 잔에 마른 명태포 한 장 차렸습니다
상다리 휘어집니다
한여름밤 달이 차오르는 만큼 그리움 차올라
호박잎 잎새마다 눈물 고이는 여기서
어느쪽으로 생신상을 놓을까요
고향에서 나를 기다리는 늙으신 어머니를 찾아가
속울음이나 한 상 그득 차려내는 아버지 생신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