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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079882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3-08-15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1부 신당동 산 1번지
종점 풍경
신당동 산 1번지
유리의 본질
입영 전야
별
불편한 성자
두려움을 말하자면
나도 물들고 싶다
정림사지 5층 석탑
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아르브르
달의 몰락
상처
2부 아버지를 지우며
붕어빵이 있는 저녁
어머니의 봄
풍경 A
명예퇴직
아버지를 지우며
생강의 생각
고향
말이 사라졌다
어머니와 스피노자
바람이 분다
돌아가지 못한 길
저 도시에 장맛비 퍼붓네
어떤 귀가
까치집
3부 아득하다
겨울 편지
커피 한잔하실래요?
아득하다
익명의 도시
가을밤 자정에 비가 오고
꽃말
고목과 삭정이
해탈
장날 저녁
탈선을 꿈꾸다
붉은 울음
그늘 같은
편지
알 수 없다
4부 화양연화
사과가 익었다
차마, 꽃이라고 부르랴
거울이 되고 싶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엄마와 아들
2월의 0
꿈속에서
티켓다방에 관한 사소한 설명
사랑 그 너머
신발論
선재형이 거기 있다
비우고 채우기
화양연화
해설
옛집처럼 찾아가는 시의 거처 | 박미라(시인)
저자소개
책속에서
종점 풍경
천식을 달고 사는 종점이 있다
봄날이 엎어진 흔적이라는 황 노인의 기침이나
공회전 금지 현수막을 찢어발기는 종점의 병증은
더 나아질 것 같지도 않지만
오늘도,
종점 다방에서는 쌍화차가 끓고
종점 순댓국집에서는 해종일 연탄불을 피워둔다
애꾸눈 네온이 지키고 선 종점싸롱에서는 간간이 싱싱한 욕지거리가 튀고
내장을 들어내고 클클 거리는 버스들 곁에서
민망한 줄도 모르는 가로등 혼자 환하다
종점은 꾸벅꾸벅 졸며 아침을 시작하고
꾸벅꾸벅 졸며 저녁을 닫는다
간혹 돌부리를 걷어차 보는 것은
아직 튼튼한 다리를 확인하는 종점의 방식일 뿐이다
유리의 본질
바람도 구름도 드나들지 못하고
꽃 냄새도 새 소리도 밖에서 맴돌 뿐
바라보는 것만으로 갈증을 달래는데
그만큼으로도 가끔은 따듯했다고 고백한다
눈 큰 아이처럼 지켜 서서 창호지 문밖을 보여주거나
꿈속처럼 신비롭던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몸 바꾸어
단절과 소통의 거리를 가늠하기도 했는데
1천 도가 넘는 담금질을 견디고
긁혀서 상처받기보다 깨지는 몸을 얻고
다가서는 것들을 막아서는 차갑고 단단한 본질이
부딪혀 깨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인 것을
깨진 단면마다 그려놓은 물결무늬가
불가마에서부터 품고 온 바다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그래, 이제 알아듣겠다
아르브르
카페 아르브르 창가에 푸른 잎 무성한 나무 한 그루 있다
나무에게도 집이 필요했을 거라는 말도 있지만
저 나무에게 집이란
하늘이거나 구름이거나 세상을 흘러 다니는 온갖 소리들이 아닐까
조명 찬란하고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카페란
인간이 만들어준 화려한 감옥일 뿐
아무도 저 나무의 고향을 모르는,
다정히 이름 불러주는 사람 없는,
낯선 곳에서
나무는 푸르게 서 있다
아르브르 카페라고 말하면 나무는 저를 부르는 줄 알고
조금은 기쁘기도 했을까
어느 새벽, 전기톱 아래 토막토막 잘려진 그 나무
사람의 이별을 흉내 내듯
이파리 자꾸 흔들었는데
아르브르, 라고 발음하면 갓 구운 크림빵 냄새가 날 것 같은데
나무가 골목길을 돌아 멀어지는 동안
나는 나무처럼 서 있었다
*아르브르(ARBRE A PAIN) 프랑스어로 나무를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