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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문화연구/문화이론
· ISBN : 9791192169637
· 쪽수 : 552쪽
· 출판일 : 2026-05-15
책 소개
이 책은 영양정보를 비롯해 식품의 정보를 빼곡히 담고 있는 라벨과 식품 규제의 역사, 숫자 하나를 두고 벌어지는 소비자와 기업 그리고 정부의 힘겨루기를 가감없이 들춰낸다.
[식품 라벨의 숫자는 언제나 진실일까?]
누군가는 시험 문제 풀듯이 한 글자 한 글자 씹어먹을 기세로 살펴본다. 하지만 포장 상품을 집어든 소비자 대부분은 기껏해야 칼로리만 체크하거나 원산지만 확인할 뿐 그 빽빽한 글자와 숫자를 신경쓰지 않는다. 포장 식품에 표시된 식품 라벨 이야기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오렌지 100%”는 정말 오렌지만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일까? 라벨에 ‘정제수’ ‘향료’가 적혀 있는데도 “100%”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까? 문제 없다. 국내 식품표기법상 정제수와 시럽, 첨가물이 들어가도 ‘다른 과일’을 사용하지 않고, 과일을 짜낸 ‘과즙’이 있으면 ‘100%’로 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100% 과일 착즙 음료는 비농축과즙인 NFC(Not From Concentrate)일 텐데, 이마저도 농축과즙액과 비농축과즙액을 혼합해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요즘 자주 보는 “제로” “무가당” “논알코올” 역시 완전히 “0”인 경우는 많지 않다. “무가당”은 당류(0.5g/100g당 미만) 대신 인공감미료가 추가되고, 논알코올은 대체로 0.01~0.05%의 알코올이 들어가 있는 경우이며 0.00%는 무알코올로 표시한다.
물론 영양성분표는 보험약관보다 덜 빽빽하며, 읽기 어려울 정도로 글자가 작지도 않다. 하지만 이처럼 우리가 늘 ‘읽고 있다’고 착각하는 식품 라벨 속에서 원하는 정보, 사실을 읽어내는 것은 고도의 훈련 없이는 불가능한 과제처럼 보인다.
책에도 나와 있는, 마이클 폴란이 세운 식품 규칙, 즉 “다섯 가지 이상의 성분이 들어갔거나, 발음하기 어려운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은 어떤 것도” 먹지 말라는 조언이 분명 누군가에게는 호들갑스러움이거나 지독한 낭만주의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고 있어도 그 의미를 모르고 지나치고 있거나,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속임을 당하고 있다면, 폴란의 호들갑은 사실상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그 무엇보다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식품 라벨을 둘러싼 기업, 정부, 소비자 간 힘겨루기의 역사]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이것은 왜 오렌지주스인가》는 묻는다. 우리는 왜 음식을 고를 때 ‘맛보지’ 않고 ‘읽게’ 된 것일까? 우리는 왜 읽고 있어도 알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복잡하고도 미묘한 식품 라벨은 언제, 어떻게, 무엇을 위해,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
눈에 잘 띄는 “영양정보”라는 제목 아래에 매우 밋밋하게 식품 성분들이 나열돼 있으며, 흰 바탕에 검정 글자(혹은 검정 바탕에 흰 글자)가 고등학교 어휘 수준으로 표시된 공간. 포장지 다른 곳에 표시된 다채롭고 화려한 색깔의 제품 정보와 확연하게 대비돼 역설적으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지만,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블랙박스 같은 영역”.
이 식품 라벨은 지극히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막후에서 마케팅, 디자인, 영양학, 심리학, 소비자 전문가들이 은밀하게 내린 의사결정을 근거로 하는 복잡한 정치적 내막을 암호화한 것이다. 이러한 합법적이고 과학적인 라벨이 미국인들이 일상에서 쓰는 수백만 개의 가정용품에 붙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1980년대를 지나면서 식습관과 건강 사이의 관계에 대한 대중들의 우려가 커졌는데, 이에 대중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1990년대에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 FDA의 영양성분표 표시면이었다고 보통 설명한다. 하지만 FDA 영양성분표 표시면의 기원은 20세기 전반기, 미국 포장식품 경제가 시작되면서 FDA가 식품시장을 규제하는 핵심 기관으로 떠오르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은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사용하여, 그 기원인 19세기 말~20세기 초부터 21세기 정보화 시대까지 쭉 짚어간다. 큰 틀에서 이 책은 미국 식품 규제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그 속에서 20세기를 관통한 순수식품이나 GMO 관련 논쟁, 사카린이나 시클라메이트 같은 유해물질 논란 등 식품 관련 논쟁을 살펴본다. 더불어 비타민 광풍이나 콜레스테롤 논쟁, 기능성 식품, 영양강화식품 관련하여 대중들의 건강과 식품에 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도 추적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 내 기아와 영양실조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운동과 대응, 소비자중심주의의 출현 등을 통해 식품 및 식품 경제가 사회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대중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유기농과 동물복지, nonGMO, 방사선 조사 식품 관련하여 위험사회와 대안 식품 운동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는다.
[정보화 시대에 올바르게 식품을 먹는 법]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식품 라벨은 정보의 조합이다. 즉, 식품 라벨과 식품 규제의 역사를 좇는 이 책은 누가, 왜, 어떻게 정보를 다루고 차지하려고 하는지, 그 영향과 결과는 무엇인지 추적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의 원서 부제는 “정보화 시대, 미국의 식품 규제Regulating Food in America in the Information Age”다. 즉, 이 책은 “FDA가 규제에 접근하는 방식의 광범위한 여행 과정, 즉 식품표준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정보 라벨을 통해 정보를 표준화하고 그럼으로써 식품 정치에서 바라보는 ‘정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수용하는 것에 이르기까지를 설명한다.”(396쪽) 저자는 FDA의 식품 규제를 세 단계로 구분해, 1) 역사학자 벤저민 코언이 “변조의 시대”라고 부른 1880-1920년대에는 불량식품에 첨가된 유해 화학물질을 추적하는 데 집중했으며 2) 저자가 “표준의 시대”라고 부른 1930년대-1960년대에는 식품표준을 개발했으며 3)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정보의 시대”에는, 식품 라벨 표시를 비롯해 정보의 규제 쪽으로 식품 정책의 중심점을 점점 옮겨갔다고 정리한다.
사실 숫자로 된 정보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마음 놓고 음식을 먹지도 못하게 된 것은 길게 잡아도 백오십 년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식품 정보의 영향력은 막강하며 그에 의지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마이클 폴란이 말한 “진짜 음식”, 즉 “증조할머니가 보고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음식”만으로 살아갈 수 있던 세상은 이상향에 가까워져버렸다. 현실을, 숫자로 설명되는 세상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 이 책은 미국 식품 규제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영양성분표 및 디지털화된 식품 정보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책 앞머리에 “한국어판 길잡이글”을 쓴 김태호(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각종 수치를 꼼꼼히 따져서 그중 가장 좋은 것을 고르는 행위가 우리를 현명한 소비자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객관식의 함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먹고사는 문제처럼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가, 어떻게 서너 개의 보기 중 하나를 고르는 것으로 환원될 수 있겠는가? … ‘무언가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우리를 가두는 틀일 수 있다. 반대로 ‘고르지 않는 것’ 또는 ‘하지 않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 될 수 있다. 특히 제품과 숫자에 지배당하지않는 삶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10-11쪽)
목차
한국어판 길잡이글
감사의 말 / 1차 자료 관련 주석
서문. 정보화 시대의 식품과 권력
전문가들은 어떻게 오늘날 식품체계의 기반을 구축했나 / 소비자에 대해 상상하기 /
대량유통시장의 규제 / 식품을 건강이라는 틀에 넣기 / 정보화 시대에 선택을 위한 기반구조
1장. 표준의 시대
푸드 포렌식, 식품에 대한 과학적 분석 방법을 통한 규제 / 포장된 진정성 /
동일성 표준 체계의 도입 / 제2차 세계대전과 새로운 규모의 정치경제학 / 결론
2장. 게이트키퍼와 숨은 설득자
식품-의약품의 경계와 “비타민 광풍”의 도전 / 숨은 설득자와 “일반 소비자” /
인공감미료와 권력 / 콜레스테롤 논쟁과 식이요법 관련 위험에 대한 새로운 계산법 /
식품업계의 저항 / 결론
3장. 영양실조일까, 잘못 알고 있는 걸까?
미국에서 기아의 재발견 / 미국인들에게 더 많은 비타민이 필요했을까? /
식품, 영양, 건강 관련 1969년 백악관 회의 /
시클라메이트에 대한 FDA의 달콤씁쓸한 판매 금지 / 성장의 한계와 새로운 식량 해법 / 결론
4장. 시장 기반으로의 방향 전환
반체제 시대의 FDA / 소비자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공간, 슈퍼마켓 / 라벨 표시 방식의 변경 /
“정보통 소비자” 상상하기 / 영양주의의 출현 / 규제 반대의 움직임 / 결론
5장. 정부 브랜드
기능성 식품의 출현 / 영양정보 라벨 표시 및 교육법에 대한 이익단체의 정치 / 영양성분표 디자인 협업 /
공중보건으로서 영양성분표 홍보하기 / 상업적 표현의 자유와 건강기능식품 마케팅의 반발 / 결론
6장. 라이프스타일 라벨 표시
위험을 라벨 표시하기 / 정보를 정확히 알리기보다 얼버무리기 / 대안 식품 운동의 주류화 / 결론
결론. 식품 정치에서 바라보는 정보에 대한 인식의 전환
식품 정치는 1930년대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변해왔을까? /
“넛지학” 그리고 “합리적 비합리성으로 행동하는 소비자” 상상하기 / 투명성과 진정성의 정치 /
라벨 표시의 논리적 귀결 / 정보주의는 끊임없는 소비를 부추긴다
연대표 / 주석 / 참고문헌 / 찾아보기 / 옮긴이 글
참고문헌
찾아보기
옮긴이 글
책속에서
근대과학과 함께 성장한 우리는 숫자로 된 정보를 사실 그 자체의 객관적 반영이라고 여기고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듯 어떤 숫자를, 어떤 형태로, 어떤 맥락에서, 어떤 단어들과 함께 전달하는지는 인간들 사이의 힘겨루기와 협상의 결과다. 숫자로 표현된 ‘사실들’ 이면에 숨어 있는 이와 같은 다양한 움직임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영양성분표는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미국의 각별한 애호, 사회적 문제를 과학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반영한다. 영양성분표 라벨은 영양학이 마침내 우리의 일상생활의 전면에 등장했음을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 또한, 영양성분표 표시면은 미국의 법률만능주의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즉,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편으로 경고문을 붙이는 것처럼, 식품 안전을 위해 경고 라벨을 부착한다.
식품의 영양과 성분 공개에는 매수자 위험 부담 원칙caveat emptor, 즉 구매자 개인이 주의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원칙을 지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부장으로서의 국가가 나서서 포장이라는 사적인 물적 재산에 대해 공적 메시지를 전달해주기를 기대하는 일종의 역설적 정치 감성이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