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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영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91192617619
· 쪽수 : 300쪽
· 출판일 : 2023-03-21
목차
사건의 내막
고공 공포
경매번호 249
레이디 새녹스 사건
토트의 반지
카타콤
로스 아미고스 피아스코
존 배링턴 카울스
심연으로부터
책속에서
그 날 밤에 벌어진 일 중에서 어떤 것은 아주 또렷하고, 어떤 것은 단편적인 꿈처럼 어렴풋하다. 완결된 이야기로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내가 왜 런던으로 갔다가 밤늦게 돌아왔는지 지금은 기억에 없다. 평소 런던을 방문했던 일들과 뒤섞여있다. 그러나 아담한 시골 역에 내렸을 때부터는 모든 것이 무척 또렷하다. 매순간을 되살려낼 수 있다.
승강장을 따라 걷다가 그 끝에서 반짝이는 시계를 보았을 때, 11시 30분이었음을 기억한다. 자정 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던 것도 기억한다. 그리고 눈부신 전조등과 세련된 황동색 광채를 앞세우고 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커다란 자동차를 기억한다. 그 날 낮에 배달된 30마력 신형 로버였다. 나는 운전사 퍼킨스에게 자동차에 대해 어떠냐고 물었고, 그가 아주 근사하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사건의 내막」 중에서
마침내 도랑의 쐐기풀 사이에서 그의 시선을 잡아 끈 것이 캔버스 천을 씌운 책이었다. 알고 보니 이것은 낱장을 떼어낼 수 있는 형태의 수첩이었고, 낱장 일부가 떨어져 나와 울타리 아래쪽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그는 이 낱장들을 주웠으나 첫 장을 포함해서 몇 장은 찾아내지 못했고, 이로써 이 중요한 진술에 통한의 틈을 남겨놓고 말았다. 이 농부는 주운 수첩을 자신을 고용한 농장주에게 가져갔고, 농장주는 이것을 다시 하트필드의 J. H. 애서튼 박사에게 보여주었다. 단박에 전문가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여긴 애서튼 박사는 수첩을 런던의 항공 클럽으로 보냈고, 이것은 그때부터 그곳에 보관되고 있다.
일지의 1쪽과 2쪽은 유실된 상태다. 비록 진술의 전체 일관성에 영향을 주진 않지만 마지막장도 찢겨지고 없다. 유실된 도입부는 짐작컨대 조이스 암스트롱의 비행사 자격에 관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른 출처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인데, 그것에 따르면 영국의 조종사들 사이에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지난 수년 동안 그는 누구보다 대담하고 지력이 뛰어난 비행사 중의 한명으로 알려져 왔고, 이런 자질 덕분에 그 자신의 이름을 딴 자이로코프스 장치를 포함하여 몇 가지 신형 장비를 발명하고 시험하는 것이 가능했다.
일지의 본론 부분은 잉크로 깔끔하게 적혀 있지만 마지막 몇 줄은 연필로 들쭉날쭉 급하게 쓰여 있는데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실상 이 마지막 몇 줄은 비행 중인 항공기의 조종석에서 다급히 휘갈겨 쓴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덧붙이자면 수첩의 마지막 장과 겉표지에 내무부 전문가들이 혈흔이라고(인간의 피일 가능성이 있고 포유류의 것은 확실한) 발표한 얼룩 몇 개가 묻어 있다. --「고공 공포」 중에서
에드워드 벨링햄과 윌리엄 몽크하우스 리 사이에 있었던 일, 또 애버크롬비 스미스에게 가해진 엄청난 공포의 원인에 대해 한 점 의혹 없는 최종 판단은 앞으로도 녹록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스미스로부터 직접 충실하고도 명확한 설명을 들었다는 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경비원인 토마스 스타일스와 옥스퍼드의 플럼트리 페터슨 목사를 비롯해 이 독특한 사건의 일부를 우연히 스치듯 목격한 사람들로부터 스미스의 말을 확증하는 증언까지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사건은 주로 스미스 개인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들 대부분은, 옥스퍼드 대학이라는 학문과 지식의 전당에서 그것도 대낮에 벌어진 이 사건을 두고 자연의 방식이 개입됐다기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미묘히 빙퉁그러진 성품과 불완전한 사고력으로 벌인 일이라고 생각할 터다. 그러나 자연의 방식이 얼마나 정밀하고 교묘한가를 떠올려보라. 또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과학의 등불을 전부 동원한다 해도 그 자연의 방식을 어렴풋하게만 이해할 수 있음을 떠올려보라. 저 높은 곳에서 거대하고 섬뜩한 가능성들을 가리고 있는 어둠을 떠올려보라. 그렇다면 인간이 배회하다가 들어설지 모르는 이상한 샛길을 제한할 수 있는 이는 용감하고 확신에 찬 인물일 것이다. --「경매번호 249」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