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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2638638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25-05-29
책 소개
신을 증명하고 싶은 자와 신에게 도전하려는 자의 한판 승부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SF, 미스터리, 호러 등의 장르를 오가며 자신만의 이야기 세계를 펼쳐놓는 경민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고장 난 세계의 신과 내일 비가 올 확률》이 출간되었다. 제8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우수상, 제1회 K-스토리 공모전 미스터리 부문 최우수상, 2022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스토리 부문을 수상하며 자신만의 빛나는 상상력을 발휘해온 작가는 《고장 난 세계의 신과 내일 비가 올 확률》에서 고철 쓰레기가 모여드는 마을의 한 소녀를 통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환상 세계를 펼쳐낸다.
읍내의 유일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태어난 리아는 자신이 화장실 변기로 통하는 별세계에서 어느 날 뚝 떨어진 것임을 직감한다. 고도로 발달하는 사회의 이면에 쌓여가는 산업 쓰레기와 지역사회 운영을 위해 유치한 도박장으로 인해 망해가는 광산 마을에서 가장 불운한 방식으로 가장 낮은 곳을 살아내는 성스러운 존재로서 리아는 자신을 이토록 참혹한 곳에 밀어낸 원세계로 돌아갈 것을 꿈꾸며 확률과 우연을 건 과감한 도전장을 내민다. 서로 모순되고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 뒤섞인 쓰레기 마을은 불가해한 곳이지만, 처참한 이들에게 전혀 다른 세상을 선물해줄 기회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리아의 모험을 써나가며 그 참혹한 삶에 가슴앓이를 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자신의 처참한 삶으로 더 많은 고통받는 삶들을 구원해내는 리아의 후일담을 상상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에서만큼은 더 큰 상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모든 걸 집어삼키는 슈퍼컴퓨터와
또 다른 세계로 연결해주는 빛나는 문장들
침체된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광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쓰레기 매립지를 떠안는 대가로 최대 규모의 카지노를 국가에 요구한다. 법안 처리 과정에서 옥신각신한 끝에 쓰레기 광산이 생긴 지 정확히 10년 뒤에 동광 카지노가 문을 연다. 동광 카지노는 지역 경제의 블랙홀이 되어 모든 지역 사업은 도박광들을 위한 장사로 통일되고, 어른들은 또 그렇게 번 돈을 도박장에 쏟아넣었다. 오직 동광 카지노만이 돈을 불릴 수 있었다. 동광시 정평읍 사거리의 버거리아 화장실 두 번째 칸에서 뚝 떨어지듯 태어난 리아는 쓰레기 마을에 모인 쓰레기 난민들을 위한 폐컨테이너에 살며 종일 쓰레기를 뒤져 돈이 될 만한 것을 찾아내 근근이 끼니를 해결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동광시의 유일한 사립대학교가 폐교했을 때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산업폐기물인 슈퍼컴퓨터를 손안에 넣게 된 리아는 비로소 이곳을 탈출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된다. 리아는 하나의 본체에 여러 개의 하드웨어 연결을 거듭하며 끝없이 데이터를 수집했고, 거기서 새로운 정보를 도출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이닝 머신은 서로 상관없는 사건들로부터 경향성을 도출해내 그 인과를 문장으로 뱉어냈다. 소나기가 오는 시간대에는 편의점의 우산 판매량이 증가한다는 등의 납득 가능한 인과에서부터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것까지. 면봉 판매량이 감소한 지역에서 대통령 지지도가 상승한다거나, 고등어 어획량과 강력범죄 검거율이 비례한다는 등의 결괏값에 대해서는 누구도 왜 그런지 설명할 재간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만들어낸 문장들 가운데 ‘카지노’와 관련된 문장들을 수집해 구현 가능한 것들을 추려낸 리아는 드디어 동광 카지노로 출전할 것을 선언한다. 설명할 수 없지만 확신에 찬 리아는 그렇게 빛나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것을 확실하게 믿고 있었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보름달이 뜬 다음 날이면 동광시청 공무원들이 외근을 나올 확률이 20퍼센트 증가해요. 어제 보름이었고. 이유는 없지만 그냥 그래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일들이 사실은 연관되어 있어요. 이 기계는 그걸 찾아내요.”
“그게 말이 돼? 달이랑 외근이 무슨 상관이라고.”
“말했잖아요. 이유는 없다고. 그냥 신이 세상을 만들 때 허술하게 만들어서 고장 나 있는 부분들을 이 기계가 찾아내나 보죠.”
“할머니 무릎 같은 거예요. 할머니가 무릎 시리다면서 다음 날 비 올 걸 백 프로 맞혀버리는 거. 아무 관련도 없는데 신통하게 들어맞는 법칙들 말이에요. 그런 걸 나는 알고 있어요. 믿기지 않죠? 나도 이번 판만 끝내면 다신 안 믿을 거예요. 이 망할 카지노 동네에 다시 오지도 않을 거고.”
“그렇게 되길 희망해봅니다. 카드 오픈하겠습니다.”
정소열은 두루뭉술한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아니 증오했다. 리아가 카드를 읽은 것처럼 보였지만 우연일 수도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신이 행한 듯 보이는 기적도 그저 사람들의 착각일 수도 있지 않은가? 확실치 않은 가설들은 진리의 탈을 쓴 채 세상을 미몽에 빠트리고 거짓된 선지자들이 설치게 만들 뿐이었다. 정소열은 리아 일행의 허위가 탄로 나거나 아니면 완전무결한 승부를 냄으로써 자신을 압도해주길 기대했지만 지난 승부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것이 정소열의 마음을 내내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저 흔하디흔한, 패배한 도박사라 치부하며 리아를 잊으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