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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통일/북한관계 > 북한학 일반
· ISBN : 9791192667065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22-12-28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08
본문에 앞서 선수들과 그들의 게임 12
1부 / 게릴라와 부자 소년 31
1장·서막I 32
2장·푸들과 참칭자 59
3장·스탈린의 사탕발림 79
2부 / 전쟁 101
4장·“조국해방전쟁”의 혼란 102
5장·궁지에 몰리다 122
6장·미그기 145
7장·북한으로의 귀환 161
8장·국제 스포츠 경기 178
9장·지도와 망명을 위한 뇌물 198
10장·이모부 유기은 215
3부 / 탈주 241
11장·비행 허가를 얻다 242
12장·물라(돈)를 쥐어짜내다 274
13장·진짜와 가짜 293
14장·학습과 숙청 306
에필로그 322
책속에서
노금석은 북쪽으로 중국을 향해 바람을 맞으며 이륙했다. 바람은 이제 먼지를 날릴 정도로 빨라졌다. 활주로는 보기보다 더 울퉁불퉁했다. 그가 스로틀을 올리고 브레이크를 떼자 미그기는 덜컹거리며 떨었다. 노금석은 이거야말로 세계 최악의 활주로중 하나일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일단 이륙해서 바퀴를 넣자 비행장은 더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미그기의 계기판에서 노금석은 김일성의 사진을 보았다. 이것은 모든 북한 비행기의 표준장비였다. 사진 액자에는 전투기 조종사들을 위한 선전문구가 적혀있었다. 붉은 글자로 “사악한 양키들에게 복수의 총탄을 겨누고 쏘라”는 것이었다.
중국으로 가는 길의 절반쯤에서 노금석은 좌선회해 서해로 향하다 다시 좌선회해 서해안의 해안선을 따라 비행했다. 그곳에서 그는 평양의 폐허를 볼 수 있었다. 5,790m 상공에서도 평양은 폭격맞은 지옥 같았다.
여기서 그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해야 했다. 만약 다시 좌선회하면 그는 훈련을 끝마치고 예정대로 순안 비행장에 착륙할 수 있다. 만약 우선회해서 남쪽으로 향해 38선을 넘는다면 반역자가 된다. 그는 마지막으로 따졌다. 북한 정부는 지금까지 그를 잘 대해줬고, 제트기 조종사로 훈련시켜 보병으로 죽지 않게 해 줬다. 그는 훈장을 받은 참전용사였고, 수입도 제법 좋았으며 식사 수준도 높았다. 특히 북한의 깡마른 농부들과 비교하면 그랬다. 그는 아마도 전후 북한의 엘리트 중 하나가 될지도 몰랐다. 북한은 어쨌든 고향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월남은 어째야 할까? 이모부 유기은은 이미 떠벌이고 다녔다. 늦든 빠르든 공군 사령부는 그에 맞춰 행동할 것이다. 설령 그가 처형당하거나 투옥당하거나 공군에서 쫓겨나지 않더라도 북한에서 그의 삶은 어떻게 될까? 그는 오랜 삶 동안 가짜 공산주의자로서 지겨운 집회에 나가고 친구들을 배신하고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다.
그는 남쪽으로 향했다.
속도를 시속 990km로 높인 노금석은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마치 터질 것 같았다. 오른손으로 조종간을 잡고 왼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그는 진정하려 애썼다. 휴전선에 빠르게 접근하자 그는 좁은 미그기의 조종석에서 목을 좌우로 돌려 산소 마스크의 호스가 닿는 한 최대한 넓은 범위를 관찰하며 자신을 추적하는 미그기나 세이버, 혹은 대공포화의 연기가 있는지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무전기 너머로 아침에 처음 이륙한 조종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채 상위는 관제탑에 착륙허가를 요청했다. 그는 하늘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하느님 맙소사.” 노금석은 혼잣말을 했다. “이제 내 차례가 되겠군.”
관제탑이 그에게 외쳤다. 그의 기체번호는 87번이었다.
“87번, 어디 있나?”
관제탑은 번호를 5초 간격으로 계속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