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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2828282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23-11-04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회귀回歸 / 9
조짐 / 39
매지구름 / 69
떨켜 / 101
지고이네르바이젠 / 133
메이저 아르카나 13번 / 165
반위 / 197
샤프란 / 229
해설 _ 여성 서사의 파토스 _ 김성달(소설가) / 259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 큰 체구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어린애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던 모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한없이 여린 남자. 목을 매고 죽은 엄마와 가출한 누나와의 이별로 가슴에 못이 박힌 소년. 사랑의 결핍으로 관심이 늘 필요했던 소년. 나는 왜 그런 남편을 외면하고 ‘금쪽같은 나’만을 생각했던가? 측은한 마음이 일면서 내 이름을 지은 뜻에 생각이 미쳤다. 남편이 보고 싶었다.
멀고 아득한 초원을 사이에 두고 헤어진 서쪽의 처녀와 동쪽의 후루, 타고 갈 말이 죽어 만나지 못하고 애를 태우던 두 사람은 누구를 탓하고 원망했을까? 누구도 상대를 탓하지 않았으리라. 간절한 기다림과 함께 언젠가 초원을 가로질러 가서 만나는 날을 꿈꾸며 그리워했으리라.(「회귀(回歸)」)
조심스럽게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퇴원을 축하하듯 탐스러운 눈송이가 세리머니를 한다. 단풍이 곱게 물들 때 입원했는데 한 계절이 후딱 가버린 것이다. 달포 만에 내 집엘 왔다. 창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노을의 선연한 빛이 승리자의 깃발처럼 눈부시다. 주인 대신 집을 지킨 먼지들은 일제히 일어나 경례를 하고, 집을 잘못 찾은 줄 알고 시무룩하던 우편물들은 반색한다. 이제껏 참았던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매지구름」)
토요일에 형수가 내 생일을 축하한다며, 좌구산 근처에 좋은 곳이 있으니 차를 가지고 우리 집 앞으로 오겠다고 전화했다. 휴일에도 출근하는 형이 마침 쉬는 날인가 보다. 모처럼 교외로 나오니 찬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는데 공기부터 다르다. 울긋불긋하던 단풍은 어느새 칙칙하게 물들어 내동댕이 처져서 밟히고 있다. 나무들은 마지막 열정으로 고운 모습을 보여주고 미련 없이 이별한다. 혹독한 추위를 몰고 온 겨울을 예감하며 떨켜를 만들고 섭리대로 새봄을 위한 거름이 된다.
잎이 뿌리에서 나왔고 생을 다한 후 떨어져 다시 뿌리로 돌아가니 만물은 생명을 다하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의 성어 낙엽귀근(落葉歸根)이 생각났다.(「떨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