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2828633
· 쪽수 : 290쪽
· 출판일 : 2024-10-02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두 남자
물수제비 사랑
어느 화요일 오후
오래된 기억
괜찮아, 수고했어
코비의 마음
편견과 정의
해후
스마트 소설
백만 송이 장미
백일홍
해설
삶의 폐허를 넘어서는 사랑의 역설 / 유성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철벅철벅 젖은 신발 소리를 내면서 걷고 있는데 물 건너 안산 숲속에서 과수댁 하소연 같은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길게 들려왔다. 퍼뜩 날아드는 생각에 웃음이 새 나왔다.
“저 산비둘기가 지금 뭐라며 우는 줄 아냐?”
생각에 잠겨 있던 채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내가 좋아 사는 남자, 인연대로 살게 두소.”
나는 그럴싸하게 가사를 붙여 산비둘기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 채화는 그제야 “저 우짖는 소리도 영락없는 선화네.” 하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작전을 훌훌 팽개치고 가는데 앞쪽에 젖은 옷을 걸치고 팔자걸음으로 선화를 부축하며 가는 ‘버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손을 들어 가리키자 채화도 어머니도 함박웃음을 터뜨렸다.(「두 남자」)
“당신은 직업이 뭐야?”
“저는 사다리차 기사였습니다. 삼 년 전에 이삿짐 일을 하다가 강풍으로 사다리가 꺾여 넘어졌는데 밑에서 짐 꾸리는 걸 도와주던 어머니는 현장에서 돌아가시고 저는 화공약품이 든 병에 머리를 맞아 두 눈을 잃을 뻔하다가 간신히 사물을 구별하는 시각 장애인이 되었어요.”
파란 하늘의 모진 태양 빛이 남자의 검붉은 얼굴 위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고 움켜쥔 성재의 손아귀가 맥없이 풀렸다.
“죽지 못해 버티고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남자의 눈에서 마침내 눈물이 쏟아졌다. 성재가 맞은편에 있는 H은행을 쳐다보며 영옥에게 물었다.
“지금 몇 시야?”(「어느 화요일 오후)
나는 풀리지 않는 숙제를 끝마친 듯 묵묵히 뒷동산으로 올라갔다. 산바람이 나를 따라 휘청거린다. 모든 생명의 기운이 솟아나는 봄이라 천만다행이다. 내 몸뚱이도 무엇이든 저 생명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꽃비가 내리고 물오른 나무의 잎사귀들이 초록빛을 흩뿌린다. 정말 죽기 좋은 계절이다. 딱 하나, 엄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뻐근하다. 이 세상에서 나를 최고로 여기는 사람인데 효도 한번 못하고 사라지는 게 너무나 한스럽지만, 이 길이 그나마 불효를 덜 하는 것이리라. 온 세상이 짙어가는 녹음으로 가득하지만, 바닥에는 가랑잎이 수북하다.(「오래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