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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2828909
· 쪽수 : 278쪽
· 출판일 : 2025-07-25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유미의 바다 / 9
섬 / 43
왼손잡이 아내 / 73
공원에서 / 97
그 겨울, 불꽃 속으로 / 121
정임의 설 / 145
눈 속의 아기 부처 / 169
천안행 마지막 전동열차 / 189
포항함 756 / 215
해설_인내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푸른빛의 예술혼 / 241
저자소개
책속에서
언젠가 유미는 아빠랑 차를 세워두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본 적이 있었다. 파도는 일정하게 밀려왔다가 밀려가고, 파도가 뿌려놓고 간 소리는 코발트 빛 하늘이 쉼없이 거두어갔다. 아빠는 차에서 내려 모래밭을 거닐며 말했다. 저 수평선 너머 낯선 곳으로 쫓겨 간 삼별초 군사들. 그들은 낯선 이국땅에서 어떻게 살아갔을까? 어떤 이는 기와를 굽고, 어떤 이는 성을 쌓으면서 목숨을 이어가겠지. 그걸 생각하면 서글퍼져. 하지만 그게 바로 인생이겠지. 참고 또 참는 것. (「유미의 바다」) 중에서
그저 이런 섬처럼 묵묵히 견디며 평생 살 각오를 하니까 오아시스가 따로 없고 지옥이 따로 없습디다. 섬이란 게 때로는 꿈이 되었다가 지옥도 되었다가… 내가 짓는 시처럼 노래가 되기도 하고 눈물이 되기도 하고… 아내가 떠난 지 벌써 십수 년이 되었수다. 찾지 못한 시신 대신 바다에서 건져 올린 분홍 구두 한 켤레로 무덤을 만들었지. 저 뒷산 부모 산소 옆에 묻고 여태 말 한마디 안 하고 살아온 세월이 이렇게 되었수다. (중략)
가방을 배 위에 올려주며 나는 그녀의 눈 속에 고인 눈물을 보았다. 그녀는 먹은 나이만큼 잘 참았다. 배는 떠났다. 오래전 나를 실은 배가 부두를 떠나듯 그녀를 실은 배가 하염없이 밀려오는 물결만 남긴 채 섬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섬이 되어 섬을 바라본다.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섬이 되어 서로 멀어져 갈 때 섬들은 저마다 숨죽이고 울게 마련인 모양이다. 나는 아내를 생각하며 흘린 눈물을 또 오랜만에 그녀를 보내며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섬」 중에서)
여자의 복부에서 꺼낸 자궁을 열어놓고 그 속에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연필을 쥔 왼손이 파르르 떨린다. 그러나 세밀하게 선을 그어나간다. 그는 세상이 두려웠다. 까닭없이 불안하고 무서웠다. 특히 밤이 더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인체를 해했다. 자연을 빼닮은 인체를 들여다보며 세밀하게 묘사를 이어갈 때면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곤 했다. 그는 가장 께름칙한 소재를 택해 가장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왼손잡이 아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