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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나의 창을 두드리는 그림](/img_thumb2/9791192964485.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2964485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23-08-09
책 소개
목차
머리글: 나의 창을 두드리는 그림 005
1장 저렇게 무력한 이를 따를 것인가?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012
자신을 기다리는 다디달은 은총 017
새로운 것 앞에 022
포근함 그 너머, 성가정의 풍경 028
저토록 무력한 이를 따르고 싶은가? 033
절대적 내맡김, 끌려가는 그리스도 038
이 얼굴 044
고요함과 역동성 048
한 유대인의 초상화, 예수와 유다 053
뒤에 숨은 사람 057
하느님의 어릿광대, 무력한 이들에게 깃들어 있는 예수 061
진정한 깨끗함, 짐에서 벗어난 여인 066
부활은 이미 이땅에서 070
여인에게서 발산된 희망의 빛 074
2장 추락과 상승은 따로 있지 않다
춤추는 마음 080
돌기둥을 짊어진 여인 084
이카로스 뒤집기 089
우유 따르는 여인, 경건한 노동의 힘 094
여성만이 그릴 수 있는 사랑스러운 그림 098
가난한 ‘일요일의 화가’의 꿈 101
낮고 작은 생명의 자리 105
방랑자라기보다는 마치 모든 것의 주인인 양 110
죽음의 사신은 늘 눈앞에 114
스러져가는 억새의 노래 118
한 사람 여기, ‘자기잊음’과 ‘자기비움’ 사이 122
하느님의 불 127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131
고난 한복판에서 희망의 자리를 찾아가는 사람들 136
인류의 짐으로부터 해방 143
몸속 몸 밖 147
금기의 공간이 되어버린 종교행렬 152
살아 있는 구유 156
3장 따뜻함으로 채워지는 빈자리
어둠 속 한줄기 생명의 빛 162
인간이라는 그릇 167
이런 기다림 171
빈자리, 하지만 따뜻함으로 채워지는 176
아기를 가진 어머니처럼 181
사랑의 그물망 184
건초더미의 무상성 188
놀라워라 192
내어주는 생명 197
마지막 길 201
4장 그의 약함은 하느님의 도구
기묘한 자화상 206
맨발의 톨스토이 214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219
한 남자의 초상 혹은 자화상 225
젊은 틴토레토와 늙은 틴토레토 229
미켈란젤로 자화상, 순교라는 자의식 234
그 무엇으로도 풀기 힘든 삶과 죽음의 관계 240
하느님의 도구가 된 그의 약함 244
지적이며 숙련된 거장 250
스튜어드 왕가의 화가 255
비로소 주인을 찾은 그림 259
어머니의 모습에 새겨진 화가들의 작품세계 264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 새로움에 매료될 태세가 되어 있는지요? 죽음을 통과한 새로움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경이로움을 체험합니다. 경이로움은 사람의 영을 새롭게 하여 낡은 사람도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줍니다. 경이로움은 사람을 변질시키지 않고 변모시킵니다. 새로움은 아주 강력하나 그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그 사람답게 이끌어줍니다. 그동안 자신으로 살 수 없게 방해하던 낡은 요소를 무너뜨립니다.
〈새로운 것 앞에〉 중에서
어쩌면 역사 속 유다는 누구보다 예수를 열정적으로 사랑했을지 모릅니다. 사랑을 쏟았던 만큼 그 사랑이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기대했을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습니다. 그리고 열혈당원 유다에게 그 사랑은 자기와 같은 길, 조국의 회복이라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민중선동, 민중의 신뢰확보, 로마에 대한 복수심, 유대인의 희망인 메시아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는 시간을 유다는 견딜 만큼 견뎠을 것입니다. 이 열혈당원에게서 빠질 수 없는 애국심과 자기욕망 또한 모자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돈주머니 역할을 맡았던 것을 보면 누구보다 현실에 밝고 또 총명했을 것이고, 그 총명함으로 누구보다 빨리 자신의 길과는 너무도 다른 예수의 길을 파악했겠지요.
〈한 유대인의 초상화, 예수와 유다〉 중에서
인간의 고귀함이 자연 위에 우뚝 서서 마음대로 통치하고 지배하는 것일까요? 생명의 소중함이 과학의 발전만으로 지켜낼 수 있을까요? 인간의 참 행복이 물질이 풍족하다 하여 얻어지는가요? 참된 자유가 우주를 여행한다고 해서 누릴 수 있는 것일까요? 하느님 없는 이성,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발전의 끝이 이제는 보이지 않나요? 이제 우리는 사막의 수도자들처럼 “우리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을 때가 되지 않았는지요? 역설적인 의미에서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라는 제목은 잘맞는 듯합니다.
〈방랑자라기보다는 마치 모든 것의 주인인 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