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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시론
· ISBN : 9791193169094
· 쪽수 : 480쪽
· 출판일 : 2023-06-15
책 소개
목차
1부 시의 표정
012 시의 언어에 대하여
019 현대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027 감동・상상・아름다움
043 역사 속의 시
052 현실 인식과 시 정신의 균형
063 올바른 주제와 올바른 아름다움
068 세상의 바보들을 보고 웃는 방법
085 코끼리가 그린 추상화 한 점
100 독자 없는 시대에 ‘불통’이 미덕인가
119 산문시가 산문이 아니라 시인 이유
126 패러디, 모방, 표절
136 기형도의 「물 속의 사막」 감상
141 은사시나무에서 들리는 물소리
149 나희덕, 푸르고 서늘한 언어의 감별사
161 불가해한 사랑에 바치는 연가(戀歌)들
168 즉물적(卽物的)인 시
174 극적인 정점에서 시작하는 시, 「레다와 백조」
2부 말의 몸짓
180 감각의 통로에서 바라본 시들
190 장시와 처녀시집과 시의 재미라는 것
201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아름다운 고통
207 정양의 시 감상
210 김기택의 시 감상
213 함기석의 시 감상
217 윤성택의 시 감상
222 전복과 함축된 여백
226 내가 감동한 한 편의 시
231 이기성의 시 감상
233 조정의 시 감상
236 김중일의 시 감상
239 이근화의 시 감상
242 안희연의 시 감상
246 이혜미의 시 감상
250 김경주의 시 감상
256 시는 모순과 오류의 발명인가
262 양안다의 시 감상
270 독자를 조롱하는 젊은 시인의 자의식 과잉
3부 자작시 해설
276 귓밥 파기
280 램프의 시
283 불길 속의 마농
290 밤 버스를 타고
299 대문에 태극기를 달고 싶은 날
302 하수구를 뚫으며
305 카인의 새벽
310 겨울 가로수
313 지상의 봄
316 우리가 만나자는 약속은
319 빈 손의 기억
323 스크램블드에그를 만드는 여자
326 병 속에 고양이를 키우세요
329 붉은 가면
332 강변북로
335 브릭스달의 빙하
338 신들의 놀이터
342 마리안느 페이스풀
347 봄날
350 거대한 손
353 리아스식 해안의 검은 겨울
359 가라앉은 성당
365 테셀레이션
368 아이즈 와이드 셧
372 장미가 부르는 편서풍
376 파리를 방문한 람세스 2세
383 희게 말하고 희게 웃는다
388 두 개의 인상
391 도스토예프스키를 위한 헌시(獻詩)
4부 에세이와 대담
398 음치가 부르는 노래
402 본명과 필명 그리고 호
407 「품바」와의 인연
409 서둘러 간 제자 원섭에게
412 조건 없는 사랑, 조건 없는 마음
416 가든, 가수, 공인
421 물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427 프레베르의 시 「밤의 파리」
430 버리고 사는 이야기
434 시인은 ‘장식’이 아니다
436 시참(詩讖), 혹은 순교의 길
444 1966년 신춘문예 어떤 현장의 이야기
451 폭풍 흡입과 폭풍 식음
453 소곡주에 덕자 회를 안주로
456 반려견(伴侶犬)이라는 말
460 강인한 시인과 나눈 시화(詩話)
저자소개
책속에서
시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형식에만 집착하는 버릇이 있는 신인 지망생들의 작품을 여기에서 직접 들춰보긴 어려우므로 4천여 편의 예심을 마친 『중앙일보』 기사(2015.9.4.)를 읽어본다.
손택수 씨는 대뜸 “태양이 너무 눈부셔 그 너머를 볼 수 없는 상태와 같은 작품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미지를 촘촘하게 배치해 화려한 느낌을 주지만 그런 경향이 지나쳐 정작 읽고 나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작품들을 그렇게 평한 것이다. 강동호 씨는 세련된 스타일이 대세로 느껴질 만큼 내용보다 기량이 승한 작품이 흔하다는 설명이다. 강 씨는 “특히 40대 이상 나이 든 사람들의 응모작 가운데도 모던한 느낌의 작품이 많았다.”고 했다. 대학 등에서 시를 가르치는 시 선생들이 주로 젊은 느낌의 모던한 시를 가르친 결과다. 그래서 위기에 몰린 건 전통 서정시다. 소수, 타자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강 씨는 “형식적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피로감은 없는지 반성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 「독자 없는 시대에 ‘불통’이 미덕인가」 중에서
기형도의 시 「물속의 사막」은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가슴 저리게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시다. 여름 밤 장맛비, 빌딩 안, 밤 세 시. 도심 속의 한 점 섬인 양 완벽하게 단절되고 구원이 닿지 않는 시간과 공간 속에 그는 갇혀 있다. 제목에서의 '사막'은 막막한 절망의 심정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금지된다, 인기척을 내지 않는다, 통과하지 못한다" 등 부정 어법에서 끼치는 절망감은 흑백의 대비적인 풍경 속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시 속에서 “밤, 석탄가루, 검은 유리창”과 함께 “흰 개, 비, 비닐집, 환한 빌딩, 와이셔츠 흰빛”의 흑백 대비는 어쩌면 죽음과 삶의 경계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밤 세시의 풍경 속에 유일하게 “푸른 옥수수잎”이 들어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과거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을 뿐, '무정한' 희망이었을 뿐이다.
― 「기형도의 ‘물 속의 사막’ 감상」 중에서
이 시에서는 축산농민과 소, 돼지의 위치가 전복돼 나타나 있다. 마스크를 쓴 소들이 우리에 갇힌 농민들을 끌고 나와 트럭의 짐칸에 아무렇게나 던져 넣어 어디론가 사라지는 장면. 어디서 봤더라, 이런 장면을…. 아, 그건 1980년 5월 광주에서 본 그 장면 아닌가. “어둠이 검은 것은 슬픔 때문이다”라는 경구(警句)가 검은 상복처럼 낮게 깔리고, 다시 장면은 비록 비유의 몸을 입고 있으나 이라크 전쟁 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어진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진, 벌어지고 있는 이 끔찍한 살해의 연속. 깊이 파헤친 흙구덩이 속으로 한꺼번에 몰려 떨어지며 비명을 지르는 돼지들, 허우적거리는 돼지들의 모습, 그게 오늘 우리들의 다른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시인은 그렇게 묻는다.
―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아름다운 고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