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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3169025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4-03-05
책 소개
목차
1부 흰 꽃, 붉은 열매
012 우레가 지나가는 풍경
014 장미열차
015 흰 꽃, 붉은 열매
016 레다를 덮친 백조처럼
018 질문 앞에서
019 흘수선(吃水線)
020 불타는 노틀담
022 오후 4시
024 세탁기 속에는 생쥐가 산다
026 불의 춤
028 사라진 얼굴
2부 삼각해변을 달리는 개
030 풍경을 애완(愛玩)하다
032 지붕 위의 황소들
034 삼각해변을 달리는 개
035 등화관제
036 물 먹는 사람
038 땅을 샀다
040 꿩꿩 장서방
041 삼각지
042 멱살 잡힌 주말
043 잠든 대지 위에
044 램프 이미지
3부 별이 지는 밤
048 견우牽牛
050 별이 지는 밤
052 새벽의 질문
054 눈물
056 바람 부는 밤
058 심지에 한 점 불씨를 얹어
060 어느 새벽
062 열매는 슬픔의 무게로 떨어진다
063 풍등(風燈)
064 내가 죽어서 그대가
066 바람에 불리는 풀잎
4부 불멸의 구도를 생각하다
070 배낭을 짊어지고 아고라로 가는 사람들
074 상아가 사라지는 모잠비크
076 밤새 안녕들 하신가요
078 개가 죽은 자리는 어디인가
080 쥐덫
082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084 오매불망(寤寐不忘)
085 회심의 순간
086 다리 위에서의 웅변
088 직유법
090 춘당 춘색(春塘春色)이 고금동(古今同)이라
093 불멸의 구도를 생각하다
096 대담 강인한×박성현
저자소개
책속에서
세탁기 속에는 생쥐가 산다
쥐구멍이 있어
세탁기 속에 안 보이는 쥐구멍이 있어
양말 한 짝을 생쥐가 물어가 버리고,
감춰둔 양말 한 짝을
또 살그머니 갖다놓기도 하였다.
자정 가까운 때
이불 속을 파고드는 비몽과 사몽의 틈을 비집고
드러누운 잔등이
내 손이 닿지 않는 달의 뒤편처럼 캄캄하다.
남의 손을 빌려야
닿을 수 있는 미지의 단말 구역
시원한 손의 방문을 기대한다.
정곡을 짚어서 시원하게 뚫어주기를 기대하건만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를 건조대에 널기 위하여
내복을 털다가
생뚱맞게 소매 속에서 양말 한 짝
미안한 듯 밤톨처럼 굴러 나온다.
아하, 거기였네.
생쥐가 물어간 쥐구멍이 바로 그것이었는가.
꼭 당신의 손이 필요한 시간
아니, 필요한 당신을 사나운 가려움증이 깨우쳐준다.
당신의 손이 허둥지둥
이리저리 뒤집고 살펴도 거기, 거기가 아니다.
마침내 내 손수 속옷을 벗어들고
활활 털어도 떨어지지 않던 건
바로 요것,
등판에 붙어서 끝끝내 시치미 떼던
한 가닥 머리카락이었다.
이 작은 발견의 기쁨은 보름달처럼 환하다.
물 먹는 사람
윤슬.
윤슬이 튄다. 반짝반짝.
오후 세 시, 11월
윤슬을 데리고 물오리 혼자 논다.
한강에서
모터보트가 끌고 가는 한 사람.
보트 뒤 물살 비틀어
건너다니는 지그재그
즐거운 스키어.
유턴의 지점
보트가 멈추고 고요의 바닥으로
가라앉는 사람.
일분, 이분…
삼분 만에 다시 검정콩 같은
강물 위의
점.
점이 끌고 나온 몸통,
꼿꼿한 몸통 일으킨 채로 상쾌하게
물살을 가른다.
멀리 은빛 반짝인다.
수정 구슬.
배낭을 짊어지고 아고라로 가는 사람들
아고라의 아침은 비둘기들의 조찬으로 시작된다.
가로등 아래 진설된
말라붙은 컵라면과 한밤의 토사물과
지난밤 다른 도시에서의 테러와 소요
종교부족 간의 전쟁 기사를 싣고 뒤척거리는 신문지들.
우리들의 내부에서
녹슨 태양이 술렁이는 아침
우리들의 과거는 검푸른 이오니아의 바다
학교에서 바라본 금환일식, 금테 두른 태양
혹은 노래도 꽃도 없는, 진실이 없는
신문지.
모두들 헤어져 간 소년들의 운동장에서,
은밀한 숲속 산책로에서
발길에 차이는 마스크, 마스크, 마스크……
가위눌린 꿈속,
떠나간 친구들의 엉뚱한 변모
집배원의 피곤한 손에서 반려되는 우리들의 안부.
경광등 번쩍이며 사이렌이 울리고,
우리들의 영웅은 없고 슈퍼맨도 오지 않는
시시티브이를 피해서
유아를 학살하는 어린이집 지붕에 비둘기와 낮달
울고 있는 아이들, 아이들의 삭은 이에
순금의 비가 내린다.
하늘에서의 분분한 낙하, 그것들이 맑은 음색으로
대낮의 시가지를 뛰어다닌다.
주말이나 휴일 우리들은 영화관에 갔다가 외식을 하고
바람이 이는 엷은 미열을 느낀다.
(선별진료소로 찾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파이프 오르간 기분 좋은 모음과 함께
우리들이 마련하는 한 줄씩의 귀가
일몰이 드리워진 공원 벤치에서
지그시 머리를 드는 식욕
고궁의 뒷길을 가는 잿빛 부연 눈물
눈물 속에 잠기는 참 작은 세상, 잿빛의 카페
잿빛의 포장마차에서 문득
죽은 친구들의 하얀 손이 나온다.
그들의 하얀 손이 나와서 어두운 우리들의 이마를
뭉쳐져 있는 기억을 더듬는다.
나무가 자란다.
가시 돋친 나무가 철근처럼 지붕을 뚫고 자란다.
그 나무 등걸 안에 은밀한 음성과 식탁,
아침 식탁을 앞에 두면 우리들은 마리오네트
즐거운 마리오네트
우리들의 내부에 순순히 귀항하는 늙은 태양.
두 개의 국기를 배낭에 창검처럼 꽂고
국경일 아침마다 아고라로 나서는 사람들
검찰의 선택적 수사와 선택적 기소와 선택적 정의를
사랑하는 영원한 보수주의자들, 할렐루야
눈부신 은총 속 이 도시엔 소문이 많다.
이면도로 질척이는 헛소문에
돼지들이 빠진다.
돼지들 꿀꿀거리는 온종일
하늘엔 안개처럼 축복처럼, 방사능 미세먼지 뿌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