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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가 가다

황소가 가다

박태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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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가 가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황소가 가다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3802045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24-05-15

목차

시인의 말 … 2

제1부 황소가 가다

황소 1 … 10
황소 2 … 12
황소 3 … 14
황소 4 … 15
황소 5 … 16
황소 6 … 18
황소 7 … 19
황소 8 … 20
황소 9 … 22
<심사평> 불교적 상상력으로 빚은 진솔한 시 … 24
어머니, 나의 어머니 … 26
눈도 귀도 … 28
서너 걸음 앞 … 29
또 들린다 … 30
부추 … 31
항아리 … 32
산소호흡기 … 34

제2부 산다는 것은

산다는 것은 … 38
백일홍 … 40
사임당 만나기 … 41
낙하산 … 42
다시 원점이다 … 44
곰곰이 생각해 보면 … 46
오늘 밤에는 … 48
그때 그 커피 한잔 … 50
바둑 한 수 … 52
술잔 … 54
커피 한잔 … 56
여성봉 … 58
돈, 돈, 돈 … 60
술 한잔 할까요 … 62
돌계단 … 64
국회의사당 앞길 … 65
낮에도 별은 있다 … 66
지우개 … 67

제3부 푸른 신호등

그림에서 시를 읽다 … 70
히아신스 그녀 … 72
이중주 … 73
가을 하늘 … 74
푸른 신호등 … 75
가을풍경 … 76
인천대교 … 78
족자섬 … 80
연꽃이 노는 곳 … 81
가을 산책 … 82
눈에 단풍 … 83
눈길 … 84
백합꽃 … 85
절임의 미학 … 86
트로트 요정의 노래를 들으며 … 88

제4부 못 다한 참회懺悔

시간은 … 92
침묵沈默 … 94
거울 1 … 96
거울 2 … 98
거울 3 … 100
거울 4 … 101
거울 5 … 102
그림 그리기 … 104
윷놀이 1 … 105
윷놀이 2 … 106
윷놀이 3 … 107
살풀이춤 … 108
한량춤 … 110
발걸음 … 112
시詩밭 농사 … 113

제5부 시시한 시詩 놀이

삶은 눈물이다 · 삶은 · 이력서 … 116
코다리 맛 · 집개 · 당신 생각 … 117
낮잠 · 회초리 · 구름 … 118
가을소리 · 돌부처 · 빈 그릇 … 119
참선 · 가로등 · 석류 … 120
짝사랑 · 점자點字 · 운명 … 121
성묘省墓 · 말 없는 저항 · 이팝나무 … 122
사랑 1 · 사랑 2 · 사랑 3 … 123
골목 · 몽돌 · 생각 … 124
날씨 · 장맛비 1 · 장맛비 2 … 125
당신은 · 새벽이슬 · 파문波紋 … 126
그리움 · 시를 쓴다는 것 · 빗질 … 127
하루 · 장미 · 초승달 … 128
고독 · 의자 · 단풍잎 … 129
휴대폰 · 만능열쇠 · 연산홍 … 130
시집 ·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 장 콕도의 귀 … 131

작품해설
끝없는 탐구의 열정과 영감이 빚은 시_민용태 … 132

저자소개

박태만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9년 진주시(옛 진양군)의 한적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아호는 심양(尋陽)이다. 진주고, 국민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서돈각 교수님을 모시고 법학을 전공했다(법학 석사). 육군 중위(정훈장교)로 예편했고, 전문건설공제조합,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메리츠증권(주)에서 근무했으며, 현재에는 HB자산운용(주)에서 근무 중이다. 2018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민용태시포럼 회원이다. 오늘도 민용태 교수님을 모시고, 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학생이다. 시집으로 『황소가 가다』(2024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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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끝없는 탐구의 열정과 영감이 빚은 시

민용태(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스페인 왕립한림원 위원)

박태만 시인은 타고난 예술혼을 가졌다. 처음 나의 시 창작 교실을 찾았을 때 그는 황소 같으신 아버지의 기억을 황소 같은 집념으로 그리고 있었다. 나는 뛰어난 박 시인의 시적 재능을 보고 당장에 “문학바탕 신인상”을 추천했다. 다섯 편이면 될 것을 열 편에 가까운 시들이었다. 그때 내가 한 말: “박 시인은 평생 자신의 이 첫 시들을 뛰어넘지 못할 거야!” 그리고 6년이 지나 이 묵직한 시집을 들고 왔다. “돈 버느라 시 쓸 시간이 없었어요”하는 박 시인의 계면쩍은 웃음을 보고, 나는 “이 친구가 시집 낼 돈이 없었구나!”를 직감했다. 그러자 “…사실 시집 낼 돈을 못 벌었거든요”하는 흰머리를 보고 나는 예쁜 딸을 손에 잡고 온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연상했다. 박 시인의 “시집”이라는 하이쿠俳句가 그때를 떠올린다:

할머니가 시집을 갔다
예쁜 딸을 낳았다
시집 한 권

사실 할머니가 시집을 간 것도 거짓말 같은 일이다. 더구나 “예쁜 딸을 낳았다”면 엎친 데 덮친 격!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영감 많은 사춘기에 써서 내야 할 예쁜 시집을 이제 백발이 성성해서 첫 시집을 낸다는 일. 이것은 그 나이 손녀딸 시집보내기보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것이 기적처럼 잘 표현된 짧은 시가 일본의 시체詩體인 하이쿠 스타일로 쓴 이 시이다. 이미 20세기에 가장 인기 있는 세계인의 짧은 시형식이 하이쿠다. 그 형식을 연습해 보자고 한 창작 교실의 열기를 반영한 시여서 더욱 반갑다. 짧지만 참 잘 쓴 시이다.

박 시인은 딸 이야기만 나오면 좋은 시가 나온다. “가로등”이란 하이쿠가 그렇다:

태풍에 늦은 귀갓길
딸을 기다리는
가로등

이 시는 박 시인 같은 영감의 시인이 아니고는 기대할 수 없는 절구이다. 태풍이 오는 날 집에 돌아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는 아버지 어머니의 눈망울을 본 일이 있는가? 길모퉁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가로등이 바로 그것이다. 왜 하필 “딸을 기다리”냐고 묻지 마라. 딸이 더 예쁘고 귀엽고 안타깝고 아프다. 그것을 느끼고 아는 사람이 박 시인이다. 그래서 용감하게 “딸을”이라고 구체화한 것이다. 이 정도면 이미 영감의 시가 무엇인가를 잘 말해준다. 백발이 성성한 영감이 무슨 영감이냐고 웃지 마라. 시인은 나이를 초월한다. 그렇다고 시인이 “이력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거울을 많이 보는 사람이 시인이다:

살다 보면
이력서를 쓰게 된다
얼굴 주름

이마에 주름살을 구태여 훈장이라고는 말하지 말자. 그냥 오래 살아왔다는 것 그 자체가 이력서다. 별로 노력해서 만든 것도 아니다. 그냥 “살다 보면” 생기는 흔적이다. 몇 번이고 취직하려고 쓰다 몇 번이고 떨어진 쓰라린 기억의 흔적 같은 것이다. 자랑스럽지 않지만 유일하게 내놓을 수 있는 자존심이 그것이다. 박 시인의 시에는 유달리 시간의 이미지들이 빛난다. 그만큼 살아왔음에서 우러나온 체감 그리고 온도의 증표랄까:

눈길이 텅 비어간다
꽃잎은 시들어 바람개비가 되고
시간과 강은 발목을 잡는데
안개 자욱한 눈길 밤을 걷는다

나이 들어가다 보면 나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강물 소리도 들린다. 눈에 보이던 것들도 안 보이는 게 많아진다: “눈길이 텅 비어간다” 꽃잎은 없다. 낙엽이나 바람개비가 된다. 시간이 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러면 안 된다고 억울하다고 “발목을 잡는데”, “안개”만이 현주소이다:

허무와 꿈 사이
빈틈은 부끄럼 속으로 숨어들고
울음과 웃음은 같은 방에서
시와 시간을 나누어 쓴다

그래서 나이 들면 시를 쓰나 보다. 쓸쓸하고 서글프고 아프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다 허무하다. 인생이 한 자락 꿈이다. 잘못한 것도 많다. 울고 웃다 보니 시간만 간다. 시라도 써야지, 살아간다는 느낌을 증거로 남겨야지, 예술이라는 게 별건가? 박 시인은 화가 앙드레 브라질리에의 그림에서 시간의 흔적을 본다:

앙드레 브라질리에의 무늬는
콘서트, 서커스, 말 그리고 아내
꽃잎을 모두 벗겨낸 벌거벗은 색
빛 한 줌을 더해 그린
얼굴, 그림에서 시를 본다

시는 잘 써야 할 필요는 없다
화가의 붓으로 중얼거리는
숲속, 강가, 해변을 뛰노는 말처럼
풀밭을 찾아 풀을 뜯으며
영원 속에서 순간을 쓴다

사람들은 잘 사는 인생과 못 사는 인생을 말한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은 모두가 같다. 프랑스 야수파 화가의 그림에서 박 시인은 “시는 잘 써야 할 필요는 없다/화가의 붓으로 중얼거리는” 것처럼 쓰면 된다고 배운다. “풀밭을 찾아 풀을 뜯으며/영원 속에서 순간을 쓴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박 시인은 노자의 “도는 자연에서 길을 찾는다道法自然”는 말을 떠올렸는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영원 속에서 순간을 쓴다”는 인상주의적 화법을 배운 점이다. 사실 “영원”보다는 “순간” 속에서 사는 것이 맞다.

서구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동양의 화법畫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마네, 모네, 고갱, 고흐 같은 화가들이 그들이다.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絵의 풍속화나 춘화 등에서 볼 수 있는 순간적 현실 또는 단편적 풍경을 영원화하는 화법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을 보는 세상을 그리는 순간적 스케치기법은 동양의 선법禪法에서 유래한다. 박 시인은 프랑스 화가의 그림에서 그런 시간성을 읽은 것으로 보인다. “순간 속에 영원을 찾기”나 “영원 속에서 순간을 쓰기”의 느낌을 받은 것은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자연 풍경의 한순간, 영원의 한 궁극적 시점을 포착하는 것은 그림에도 시에도 매우 중요하다.

박 시인의 시에는 나이와 시간 흐름의 이미지들이 기발하게 그려져 있다:

삶의 두루마리를 거꾸로 읽다가
지울 수 없는 얼룩들
다림질로 펼 수 없는 주름들
반성은 힘을 잃고
가로등에 이마를 부딪힌다

갑자기 세월의 깊어진 상처를 박 시인은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묘사한다. 인생을 살아가며 세상을 읽고 회상하고 알아가는 것을 “삶의 두루마리를 거꾸로 읽다가”의 전통적 이미지로 훌륭하게 표현한다. 그것이 구태여 큰 잘못이 있기에 지우고 싶었다기보다는, 좋거나 궂거나 어차피 “지울 수 없는 얼룩들”로 남는 것이 과거이다. 그것이 “다림질로 펼 수 없는 주름들”이라는 표현은 참 좋다. 가끔 잘못 살았다는 “반성”을 하더라도 이미 때는 늦었다. 길을 가다가 “가로등에 이마를 부딪힌다”는 표현은 참으로 현실감이 넘친다. 가끔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다가 부딪히는 가로등의 나무람처럼.

박 시인은 “시간은 흰 머리카락만 남았다”고 말한다. 누군들 시간의 상흔이 아프지 않을까만은 박 시인이 쓴 세월의 흔적은 또 한 번 그리스 비극처럼 드라마틱하다:

시간은
흰 머리카락 사이에서 춤추며
뿌리 깊은 치아마저 흔들어 대고
무거운 지렁이 주름 길 위에서 꿈틀댄다

시간이라는 추상이 흰 머리카락 사이에서 춤추는 모습은 서양의 “죽음의 춤”처럼 잔인하리만큼 흥겹다. 기독교의 저승사자는 긴 칼춤을 추며 해골을 으스댄다. 그러나 박 시인의 저승사자는 아직 여유가 있다. 저승사자가 여유가 있다고 해서 반길 것은 아니다. 아직도 영원히 살 것 같은 “뿌리 깊은 치아마저 흔들어 대고” 주름이나 지렁이를 길가에 드러내고 있으니까 말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누가 봐도 소름 끼치는 일이다.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온 밤에 세면대에서 무심코 제 얼굴을 본다:

거울은 나를 조각낸다
내면을 가득 채운 지방질
욕망을 대변하는 큰 밥그릇
술과 함께 허우적대는 밤

눈밖에 없는 너는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인다고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눈을 버리고 맨발로 걸어 보라고

늙음과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친절하지 않은 친절이 있다. 아직도 술과 욕망에 허우적거리는 밤이다. 박 시인은 “내면”이나 “욕망” 같은 추상어를 “지방질”이나 “큰 밥그릇”에 맛깔나게 요리하는 훌륭한 요리사다. 그러나 요리사는 요리를 “내려놓을 때” 더 잘 보인다. 특히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인다고/내려놓아도 괜찮다고/눈을 버리고 맨발로 걸어 보라고” 할 때 “빈손”이나 “맨발”로 떠나는 인생이 보인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다. 아침에 보면 맨발로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띠풀도 삐비도 맨발이다. 그 옆에 제비꽃도 맨발로 맨얼굴로 웃고 있다. 예쁘지 않은가. 맑은 것은 다 예쁘다. 겉치레도 욕심도 벗고, 눈도 눈치레도 벗고 가볍게 길을 나서 보자.

박 시인은 아버지만 생각하면 저절로 시인이 된다.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그만큼 영감의 시인이다. 박 시인에게는 아버지를 그리는 것이 곧 시를 쓰는 일이다:

어깨 위에 멍에 걸어
질척대는 화폭에
거침없이 선을 긋고

네가 만든 이랑
네가 휘저은 써레질이
새 생명의 태반이 되고

가을이면
너의 그 넓은 황금 잔등
황금빛 나락이 열리고

김 서린 쇠죽 가득한 여물통 마주하고
너와 아버지는
“우리 농사꾼들 참 고생 많았어!”
서로 눈인사한다

우리의 유교적인 전통사회에서는 사람이 하는 일들을 두고 서열을 매겼다. 그게 바로 “사농공상士農工商”이다. 선비士는 땅과 하늘 일을 다 아는 사람이다. 그 선비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농부이다. 하늘 보고 땅 파며 시절을 따라 순리대로 살기 때문이다. 목수나 석공은 나무나 돌 자연을 자르거나 깨면서 일하기 때문에 그다음으로 쳤다. 그리고 상인商人은 어떤가. 하늘과 땅과는 전혀 상관 없이 남들이 만든 곡식이나 물건을 사고파는 직업이니 자연과는 가장 먼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장사치라고 하며 제일 천시했다. 지금은 “돈 돈 돈”하는 박 시인의 시에서처럼 돈 많은 사람이 최고지만 말이다.

박 시인의 아버지는 논이든 밭이든 “질척대는 화폭에/거침없이 선을 긋고” 자연의 화폭에 그림을 그리신다. 황소가 “만든 이랑/네가 휘저은 써레질이/새 생명의 태반이 되고/가을이면/너의 그 넓은 황금 잔등/황금빛 나락이 열리고”, 이것이 황금 들판을 이루는 신비가 아닌가? 하늘을 살피고 땅을 일구는 일에 황소와 농사꾼이 따로 없다: “우리 농사꾼들 참 고생 많았어!” “서로 눈인사하는” 모습에 넘어가는 해가 설핏 웃는다.

박 시인은 그 황소와 황소 같은 아버지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그들의 등줄기를… 파먹고” 자랐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배우지 않은 삶의 지혜요 깨달음의 실현이다:

그들의 그것들은
아들의 체액體液이 되었다
그들의 등줄기는 아들이 파먹었다

두 분은 모두 갔다
푸른 소靑牛는 아버지를 태우고
고향 동굴 암벽 속으로 갔다

약수암 법당 뒷벽
심우도尋牛圖를 아들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야 소를 찾는가尋牛? 박 시인은 이렇게 흙으로 빚은 아버지의 길에서 소를 찾았다. 깨달음은 하늘과 땅, 사람과 동물, 그리고 우주가 하나임을 느끼고 하나 되어 사는 것이다. 내 속에 물이 있고, 나락이 있고, 소가 있고, 쌀이 있다. 내 속에 해가 있고, 공기가 있고, 비가 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이 되어 사는 일이 바로 소를 찾는 길이 아니겠는가?

박 시인의 시는 황소처럼 믿음직스럽다. 황소처럼 속없이 웃는 모습이 득도한 선승禪僧 같다. 요즘 코로나니 정쟁이니 전쟁이니 살기도 힘들고, 돈도 잘 벌 수 없으니, 도나 닦자고 하는 허허로운 자세가 오히려 노을처럼 미더울 때가 있다:

산다는 것은
우리 속에 갇혀 우주를 바라보는 것
먹이를 찾고 무게를 재고
우리 속에서 장애물을 넘고
그 너머에 있는 더 높은 담장을 넘는다

해 질 무렵 나뭇가지에 걸린 풋달
강물 위에 되비친 목마름
사각 틀에 묶인 가로수 같은
텅 빈 속박과 선택 그리고 자유
나는 이미 다른 길 위에 서 있다

산다는 것은
디딤돌보다 키가 큰 미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은 그냥 두고
몸과 마음에서 힘을 빼고
웃자, 그냥 웃자

“그냥 웃는” 삶에서 스스로 자연의 기운이 느껴진다. 구름이 느껴진다. 하늘이 보인다. 이렇듯 박 시인의 시에는 “사각 틀에 묶인 가로수 같은/텅 빈 속박과 선택 그리고 자유”의 낯설지 않은 낯설음이 존재한다. 늘 가로수 같은 길 가기이면서 “이미 다른 길 위에” 있는 평범 속 비범한 혁명이 그것이다. 박 시인의 시가 마침내 선사의 웃음 같은 티 없음이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끝없는 탐구와 명상의 흐름이다. 시방 폭죽 터지듯 벚꽃이 피듯.


황소 9

우시장은 흔적이 없다
슬픈 눈의 누렁이도
등 굽은 농부도
이제는 없다

너의 큰 눈망울
너의 거친 숨소리
너의 느릿느릿한 걸음걸이
우생牛生의 무거운 적재함

아버지의 땀
아버지의 꿈
아버지의 삶
인생人生의 고귀한 중량감

그들의 그것들은
아들의 체액體液이 되었다
그들의 등줄기는 아들이 파먹었다

두 분은 모두 갔다
푸른 소靑牛는 아버지를 태우고
고향 동굴 암벽 속으로 갔다

약수암 법당 뒷벽
심우도尋牛圖를 아들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낮에도 별은 있다

철조망은 손에 손을 잡고
시간이 된다
간간이 가시매듭들
길을 묻는다

리듬과 박자를 놓쳐
높은음으로 가지 못하고
낮은음으로 떨어진
이탈한 음표들

삐딱하게 굽은 나무들
풀지 못한 가시매듭들
한숨 시름 실패 좌절
철조망에 물음표로 매달리고

철조망 사이
오선보 사이
하늘을 본다
낮에도 별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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