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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국방/군사학 > 국방 일반
· ISBN : 9791194005391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25-09-30
책 소개
목차
chapter 1 해방의 그림자
해방 정국과 대남공작조직의 창설
성시백의 등장과 대남공작의 서막
성시백, 중국공산당원이 되다
성시백을 공작원으로 끌어들인 김일성
성시백, 서울에 입성하다
성시백과 김일성의 의미 있는 만남
남한 우익지도자들을 남북연석회의에 참가시켜라
김일성, 성시백을 통해 남로당과 별개의 간첩망 구축
성시백, 본격적인 공작에 돌입
단선 반대 세력을 결집하라
강동정치학원 설립과 남로당 수습 공작
강동정치학원과 게릴라 활동
성시백의 군부 및 정보 수집 공작
국회 프락치 공작과 성시백
북로당 남반부 특별정치위원회 사건 경위와 전말
아직도 진행형인 ‘여간첩 김수임 사건’
좌절된 대남정보 수집 공작
chapter 2 6·25와 공작 전쟁
전쟁 초기 대남공작
이인모는 종군기자가 아니라 정치공작원
점령지역에서의 토지개혁 실시
인적·물적 자원의 약탈
인민군 퇴각과 혼란 수습
남조선 인민유격대 창설과 이현상
지구당 개편과 유격대 약화
대남공작부서 개편과 남조선유격대 지원
남로당 지도부 숙청과 유격대의 괴멸
지하당 재건과 정보 수집 공작
chapter 3 휴전, 끝나지 않은 전쟁
대남공작기구 정비 및 확대
지리산유격대 수습 공작
지리산유격대 괴멸을 초래한 북한의 공작
도시와 농촌에 잔존하는 당 조직 및 당원들과의 연계 공작
신(新)조직 구축 공작도 동시에
남북협상파 잔류인사들에 대한 공작
편지 공작
거물 간첩 박정호와 진보당
구소련 외교문서에 등장하는 박정호
김일성에게 보낸 박정호의 자필편지
이중간첩 양명산과 조봉암
chapter 4 격동의 시대와 지하조직
4·19와 대남공작 지도기구 확대
가족·친척을 간첩으로
민주 열사로 둔갑한 남파공작원 최백근
최백근의 합법 정당 창당 공작
김일성의 환대를 받고 돌아와 처형된 최백근
지도연락공작조를 동원한 혁신정당 창당 공작
『민족일보』와 조용수
5·16 군사 쿠데타에 당황한 김일성
북한 대남공작의 총본산-3호 청사
5·16 쿠데타와 북한의 정세인식
5·16 주도 세력에 대한 평가
4명의 ‘황태성’
첫 번째로 남파된 황태성
지켜지지 않은 공작 원칙과 임미정
검거를 ‘자처한’ 황태성
겁이 많은 2번 ‘황태성’ 김모와 계속되는 공작 실패
공화당 의장 정구영에 대한 포섭 공작
집요한 정구영 접근 공작
편지 전달 방식의 김성곤, 이효상 공작
국회의원 김규남 포섭 성공
한국군 상층부를 포섭하라
육군참모차장 김종오 중장 포섭 기도 사건
한국에 마르크스-레닌주의 당을 건설하라
대폭 확대강화된 중앙당 대남공작기구
대남공작 교육 및 훈련기관의 확대
우연에서 시작된 통혁당 창당 공작
공작원 조카를 풋내기로 취급한 최영도
최영도에게 거물급을 보내다
최영도에 대한 극진한 환대
정태묵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의심을 희석시키다
김종태 포섭으로 이어지는 통혁당 창당 공작
일타쌍피
김종태에 대한 환대와 기지교육
백두1호-김종태
공작 대호와 연계 번호
입북 세 번째 만에 만난 김일성
통일혁명당 조직 확대 공작
노동당에 복당한 정태묵
정태묵, 다시 노동당의 전사로
공작 성과 인정받은 최영도
통혁당은 노동당의 남조선 지역 하부조직
실패로 돌아간 통혁당 건설 구상
계속된 통혁당 창건 공작
제주도 출신 양군옥 간첩사건
거물 여간첩 유위하 사건
통혁당 수습 성공으로 통전부 부부장까지 승진한 유정숙
통혁당 창건 공작은 계속되고 …
이효순 숙청과 대남공작기구의 확대 개편
1·21사태
청와대 습격은 무력 남침을 위한 트집잡기용
1·21 실패가 북한에 준 교훈
베트남전 파병이 부른 북한의 대량 도발
울진·삼척 무장선전대 침투 사건
북한의 무장선전대 남파 미련을 못버리게 한 광주사태
어부 납치와 공작
자진해서 포섭된 함경도 출신 어부
남한 출신 어부도 북한공작원으로
동베를린에 설치된 북한 공작거점
윤이상의 자가용 승용차와 조명훈
임석진과 이기양
평양에 간 한국 유학생과 윤이상
동베를린(동백림) 간첩단 사건의 진실은?
북한의 해외 공작은 영국에서도
국회의원, 교수가 된 유학생 간첩
저자소개
책속에서
사실 성시백은 이미 1946년 말에 처음으로 평양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면서 김일성과 북한 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직접 남파된 김철, 최상열 등으로 이루어진 남조선공산당과는 별개의 대남공작 전담 조직인 “북조선공산당 남반부 특별정치위원회”를 조직해 공작에 진입한 상태였다.
따라서 평양에 두 번째로 가서 김일성과 의미 있는 만남을 가진 후 서울에 돌아온 다음에는 김일성의 지시대로 미리 준비해 놓은 인적·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공작에 돌입했다. 이를 위해 성시백은 과거 중국에서 지하공작 활동을 할 때 인연으로 알고 있던 임정계통의 사람들과, 그들로부터 소개를 받거나 서울에 돌아와 알게 된 사람들 가운데 포섭이 가능한 인물을 접촉해 자기 조직의 사람으로 만드는 작업부터 했다.
이 과정에 이범석 장군 밑에서 일하던 정국은과 김규식 비서실의 중요 인물이었던 권태양, 김규식 밑에서 민족자주연맹 간부로 활동하던 박건웅, 조선공산당 내에서 대회 소집파의 입장을 취했다가 출당된 서완석과 고준석, 강진, 유혁, 서중석 등도 성시백과 연결되었다. 이 가운데 원래 중국공산당원 출신이었던 박건웅은 중경에서부터 성시백과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성시백이 서울에 입성하면서 바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김구의 개인비서이자,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의 아들인 안우생도 성시백의 조직원이었다. 안우생은 중국에 있을 때부터 성시백과 가까운 친구 사이였는데, 1948년 4월 평양에서 남북연석회의를 소집할 때 이 회의에 김구 선생을 참가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안우생은 625전쟁 당시 평양에 들어가 북한의 해외 공작원으로 홍콩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후 노동당 대남공작부서에서 외국어 강사로 활동했으며 1991년 2월 사망해 평양시 형제산구역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안치되어 있다.
조소앙의 비서 김흥권은 성시백 조직의 일원이었던 강병찬과 교류하고 있었다. 강병찬은 남로당에서 밀려난 뒤 성시백과 연계되었는데 나중에 홍명희의 민주독립당이나 한독당에서도 활동했다. 백남운 계통의 사람이었던 최백근과 임정 계통의 김찬도 성시백 선의 핵심 인물이었다. 임정계열 인사로 유명한 엄항섭도 성시백과 비밀리에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이밖에도 성시백 선에는 다양한 경력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소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