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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91194028482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25-06-12
책 소개
목차
우리 학교에 인플루언서가 온다고?
아주 예의 바른 ‘남’
나도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
헉, 기후 행진 콘텐츠를 취소하라고?
황 당한 비데 사건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작전
죄책감의 냄새
특별 영상 업로드!
최악의 비건
아멜리의 비밀 고백
호텔 잠입 작전
드디어 기후 행진!
아자! 비건 파티
리뷰
책속에서
교장 선생님이 틀어 준 영상을 보니, 아샤는 코스트프레시가 오십 년 뒤를 내다보며 진행하는 ‘미래를 위한 친환경 캠페인’의 홍보 대사였다. 그래서 전국에 있는 중학교를 차례로 돌며 이번에 출간하는 책을 홍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서 빨리 여러분을 만나 보고 싶어요.”
스크린 속 아샤가 손을 흔들었다. 곧이어 체육관에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밀리, 이 기회를 절대 놓치면 안 돼.”
시몬이 내 팔을 움켜잡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나도 시몬의 팔을 꽉 잡았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아샤와 악수를 하는 내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학교에 누군가 전학을 오면, 교장 선생님은 으레 나에게 학교 안내를 부탁하고는 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는 셈이었다.
아샤와 나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생각해 보았다. 우선 우리는 기후 변화로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놓인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의 힘과 영향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샤는 인스타그램에서 스타 중의 스타니까.
아멜리의 점심은 방울토마토, 오이, 올리브가 들어간 파스타 샐러드가 다였다.
“좀 먹어 볼래?”
아멜리가 물었다. 시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포크로 샐러드를 집어 먹었다.
“음, 맛있다. 치즈 대신 면을 넣은 그리스식 샐러드 같아.”
“나는 치즈를 못 먹어. 비건이거든. 우리 가족은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아멜리의 말을 듣는 순간, 다니엘라의 입술이 움찔거렸다.
“멋진데!”
나는 일부러 큰 소리로 대꾸했다. 아니, 그래야 했다. 시몬의 입이 샐러드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다니엘라는 마치 매력적인 컴퓨터 코드를 바라보듯 아멜리를 보며 나직이 속삭였다.
“우리가 먹는 고기에는 정말로 끔찍한 문제가 있어.”
“그래, 맞아.”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짐짓 맞장구를 쳤다. 그런 것쯤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보이려고 애쓰면서.
“너희도 들어 봤을 거야. 닭을 아주 좁다란 닭장에서 키워서, 가슴에 생긴 상처가 평생토록 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 말이야. 병아리들이 서로 쪼아 죽이지 못하도록 부리 끝을 잘라 낸다는 것도.”
아멜리가 ‘부리’라고 말하는 그 순간, 안타깝게도 내 입안에는 새아빠가 만들어 준 치킨 카레가 들어 있었다. 갑자기 목이 메어서 치킨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진짜 끔찍해!”
내가 사레가 들려 캑캑거리는 동안, 시몬이 인상까지 찌푸려 가며 말을 이었다.
“오, 이번 기회에 비건 동아리를 만드는 건 어때?”
“애들이 관심을 가질까?”
아멜리가 이렇게 묻자 시몬이 나를 쳐다보았다.
“당연하지! 에밀리, 너도 관심 있잖아. 그렇지? 그 뭐냐, 비건틱한 거.”
“비거니즘.”
다니엘라가 속삭였다.
나는 겨우 재채기를 멈추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내가 여기서 질식해 죽는다고 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출석부를 교무실에 갖다 놓고 다시 과학실로 향했다. 복도 벽에 시몬의 포스터와 내 포스터가 띄엄띄엄 붙어 있는 게 보였다. 반대로 아멜리의 포스터는 그 사이사이에 촘촘하게 붙어 있었다.
아멜리의 포스터에는 ‘생명의 방. 비건 동아리에 가입하세요, 바로 지금!’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퇴비통과 재활용 표지판, 텃밭 상자 같은 것들이 작게 그려져 있었는데, 전부 아멜리가 학교에 두고 싶어 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한 번도 퇴비통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왠지 이 포스터에서는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복도 계단을 올라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무심코 후드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거기에는 포스터를 만들 때 넣어 두었던 검정색 펜이 들어 있었다.
잽싸게 계단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도덕적으로 올바르거나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떠올리기도 전에 펜 뚜껑을 열었다.
단 한 글자만으로 충분했다. ‘생명의 방’을 ‘생명의 방귀’로 바꾸는 데는.
잠깐 동안, 이 한 글자가 나를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하게 만들었다. 모든 게 나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커 때문에 생긴 질투도, SNS에서의 미미한 내 존재감도, 고기 파이를 먹으면서 느꼈던 죄책감도…….
바로 그때, 부드러운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순간, 심장이 뚝 멈추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