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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91194087892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5-07-31
책 소개
“이런 박진감 넘치는 일기는 본 적이 없다.”—장혜영(전 국회의원)
내가 사랑한 여자들에게 복수하려 써 내려가는
사랑과 원망, 웃음과 눈물의 일기
동성 애인과 막 헤어진 페미니스트 활동가가 홧김에 진보 정당의 대선 캠프에 들어가 새로운 일상을 꾸리며 써 내려간 ‘페미니스트 난중일기’.—장혜영(전 국회의원)
말할 자리가 없으면 스스로 무대를 만들고 동료를 모아 방파제를 짓는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심미섭은 이제 책을 통해 자신이 짓고 만들어 낸 세계로 초대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해도 될까 망설인 적이 있는 사람에게 특히 권하고 싶은 책이다.—권김현영(여성학자)
‘탈조선’하고 결별을 통보한 여자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대선 캠프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다!
내가 사랑한 여자들을 처분하기 위한 117일의 분투
2024년 12월 7일, 12·3 내란 이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서 당당하게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높인 심미섭. 혐오 없는 평등한 집회를 요구한 이날의 발언은 그 이후로도 계속된 네 달간의 광장에서 여성과 소수자의 자리를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페미니스트 정치 세력화를 위한 단체 ‘페미당당’을 친구들과 함께 만들고, 낙태죄 폐지 운동을 비롯해 다양한 페미니즘 의제를 다루며 활약해 온 심미섭의 첫 단독 저서 『사랑 대신 투쟁 대신 복수 대신』이 출간되었다. “말할 자리가 없으면 스스로 무대를 만들고 동료를 모아 방파제를 짓는”(권김현영) 심미섭은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어 왔는지”(장혜영) 이 에세이를 통해 뜨겁게 증명해 낸다.
제20대 대선을 앞둔 2021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저자는 진보 정당의 대선 캠프에 들어가기로 마음먹는다. 한국을 떠난 뒤 차별과 혐오가 덜한 해외에서 더 안심하며 지내게 되었다는 전 여자친구의 말에, 투쟁을 통해 한국도 살 만한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다. 철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며 페미니스트 활동가인 저자는, 낮에는 진보 정당의 대선 캠프에 들어가 여자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일하고, 밤에는 데이팅 앱을 뒤적이며 끊임없이 레즈비언 데이트를 한다. 대통령 선거일인 2022년 3월 9일까지의 매일을 디데이 형식으로 세어 나가며, 선거 캠프의 노동자이자 퀴어로서의 일상을 흥미진진하게 써 내려간다. 정당 정치와 한 사람의 생활을 병렬로 연결하며, 민주주의와 여성, 퀴어의 삶을 한데 꿰어 내는 117일 동안의 생생한 기록이다. 가히 “페미니스트 난중일기”(장혜영)라 칭할 만하다.
“그 시공간에서 내가 겪은 모든 일을 내 언어로 씀으로써 복수하겠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서로 돌보고 들볶고 되갚고 연대하는
여자와 여자와 여자들의 복수혈전
광장에서는 노동권을 외치면서도 정작 진보 정당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퇴근 후 업무 지시는 일상이며 ‘동일임금 동일노동’의 원칙을 지키기란 요원한 듯만 하다.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자는 진보 정당의 구호와 그 안에서의 실제 경험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틈이 있을까? 끝없이 마주치는 부조리 속에서 저자가 택한 투쟁 방식은 겪은 모든 일을 처절하리만치 솔직하게 씀으로써 ‘복수’하기다.
저자의 복수는 열악한 노동 환경만을 향하지 않는다. 사랑했지만 일시에 나를 버린 전 여자친구에게, 나를 키워 줬지만 나에게 냉담했던 엄마에게, 나를 대변해 줘 고맙지만 일순간 잠적한 대선 후보 S에게 복수의 연필심을 겨눈다. 지겹다 싶을 만큼 서로를 돌보고, 서로에게 진 빚을 되갚고, 서로를 실망시키고, 서로에게 연대하는 여자와 여자와 여자들 이야기가 제20대 대선 정국과 맞물린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보수 정당, 차별금지법 제정을 회피하는 유력 대선 후보, 젊은 남성의 표심 잡기에만 급급한 정치인들…… 이 틈에서 심미섭은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로서의 자신의 일상이 당연하다는 듯, 뻔뻔하게 드러낸다.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가 어렵기에 데이팅 앱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그 어떤 관계보다 평등하지만 복잡한 욕망과 감정이 오가는 레즈비언 섹스에 대해 토로하며, 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 ‘동의’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속내를 털어놓는다. 대선 캠프 안에서의 대문자 정치와 대조되는 이 이야기들은, 친밀성이라는 사적인 영역을 정치로 확장하기에 이른다. 약자성에 천착해 스스로를 타자화하기를 거부하는, “적나라할 만큼 솔직하고 처절할 만큼 분투하는 이런 레즈비언 이야기”(임솔아)는 그 자체로 차별과 혐오에 정면으로 돌파하는 용감한 전략이 된다.
엄마 대신 여자친구 대신 여성 정치인 대신……
나를 키운 엄마, 내가 키운 엄마‘들’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117일
단, 아무리 슬퍼도 ‘눈물은 한 방울씩만’ 흘리면서
‘복수하기’와 ‘은혜 갚기’란 내가 받은 것을 상대에게 되돌려준다는 측면에서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은 아닐까? 저자가 진보 정당의 대선 캠프에서 일하기로 결심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대선 후보 S다. 제19대 대선 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후보를 향해 S가 “동성애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반박해 준 덕이다. ‘1분 찬스’를 써 성소수자를 대변한 정치인 S에게 빚을 졌다고 느낀 저자는 자신이 진 ‘빚’을 갚기 위해 S를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일한다.
전 여자친구와 엄마에게도 마찬가지다. 전 여자친구와 결별하고 대선 캠프에서 일한 117일은 나를 사랑으로 돌봐 준 전 여자친구, 나를 대변해 주는 여성 정치인, 그리고 내게 언어와 문화 자본을 물려준 엄마까지…… 즉 나를 엄마처럼 키워 주는 동시에 내가 엄마처럼 의지할 수밖에 없던, 동시에 나를 끊임없이 실망시키는 이들에게 ‘빚’을 갚고 진정으로 독립하는 과정과 다름없다.
어떤 고통이든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로 희극화하며 스스로를 지켜 온 저자는 이 과정을 고난의 서사가 아닌 특유의 날카로운 유머로 풀어낸다. 아무리 슬프고 외롭고 화가 나도 ‘눈물은 오로지 한 방울씩만’ 흘릴 수 있기에 더욱 신랄하면서도 진실한 복수극이 된다.
“애초에 한 사람이 다른 이들을 대표할 수 있는가?”
페미니즘과 정치, 권력과 글쓰기에 관한 가장 사적인 탐구
“하지만 여기는 정당이니까, 내 관점과 의견을 넣어 쓴 글이 ‘대표자’의 이름으로 나가는 건 당연한 이치인가?”(95쪽) 선거 캠프에서 공보국장이자 대변인으로 일하며 저자는 자신이 쓴 글이 위원장 개인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데에 의문을 품는다. 활동가로 일하던 시절 자신이 쓴 글이 ‘우리’ 단체의 이름으로 발표된 것과 달리 ‘대표자’ 한 사람의 생각과 주장인 것마냥 언어가 사유화되는 데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의 경험과 편집자였던 엄마에 관한 유년기의 기억으로 뻗어 나간다. 분명 수개월간 책상 앞에 앉아 매일 글을 다듬고 노동했지만 책장에 가득하게 꽂힌 책에는 남성 작가의 이름만 남아 있던, “책장 어디에도 엄마의 이름은 없었”던(11쪽) 기억으로 말이다.
이처럼 『사랑 대신 투쟁 대신 복수 대신』은 개인적이고 내밀한 경험을 이야기함으로써 권력과 페미니즘, 기록와 계보에 관해 진보 정치와 사회 운동 안에서 마주한 ‘여성’ 인물들을 통해 새롭게 써 나간다. 여성은 배제되어 온 남성 중심의 ‘이름 남기기’ 문화, 사회 운동 안에서 페미니즘의 위치, 여성 운동의 계보를 잇고 기록한다는 의미, 대표자를 중심으로 조직화된 권력 구조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생생한 경험을 통해 질문한다.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사랑과 연대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책이다.
목차
프롤로그
일기들
에필로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갑자기 대선 캠프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에게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려고 했던 3개월이 대선 기간과 얼추 들어맞는다고 설명했다. 그게 이유의 다는 아니었는데. 단순히 몰두할 대상이 필요해서였을까? 아니면 H에 대한 복수심에서였을까?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고 H는 늘 한국 밖에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차별과 분노, 부조리에서 한발 떨어져 살기 때문에 우울증이 심해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글쎄, 나도 외국에서 살아 봤지만 내가 겪은 상황은 반대에 가까웠다. 사회의 맥락 속에서 아예 지워진 사람, 심지어 투쟁의 주체도 되기 힘든 사람. 소수자가 아닌 투명 인간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유쾌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저 지독하게 외로웠다. 어떤 상황에서 더 행복할 수 있는지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H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나는 여기서 싸우겠다고. 모두가 그럴 수는 없지만, 난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오는 길에 15분 버전으로 요약한 나의 실패한 연애담을 듣고 엄마는 역시 차갑게 말했다. “야, 오픈 릴레이션십이든 폴리아모리든 난 모르겠고, 남편이 바람피워도 울고불고하면서 계속 사는 내 친구들이랑 뭐가 다르냐?”
엄마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또 장황하게 설명했다. 생득적 가부장 권력이 작용하지 않는 퀴어 연애의 특성과 합의하에 다른 사람을 만나기로 하는 여러 관계에 대해. ‘키 파트너’라는 개념도 있어서, 각자 자유롭게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어떤 두 명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가 되기로 약속할 수도 있다고. 가만히 듣다가 엄마는 다시 말했다. “이거 그거네. 누구네 남편이 바람피우다가 걸려서 아내한테 변명을 하는데, 그 여자는 그냥 잠깐 만나는 것뿐이고 당신이랑은 같이 가정도 이루고 애도 키우고 제사도 지내잖냐고.” 아, 제사라는 말에 난 녹다운됐다. 레즈비언이고 어쩌고 연애는 연애다. 구질구질하기론 다 똑같다.
청년 정치란 뭘까? 위원장에게도 물어보았다. 청년위원회 활동에 만족하냐고. 난 솔직히 중앙당 선대위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청년위원회라고 해서 실망했다고. 학생 운동으로 사회 운동을 시작해 이제 서른이 되었으니 10년 동안 청년이었던 셈인데, 언제까지 나에게 나이 많은 사람들이 구워 놓은 케이크 위에 뿌리는 스프링클 같은 역할만 주어질까?
나이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파티나 축제를 여는 방식의 운동을 해 왔는데, 애초에 페미니즘 운동 그리고 파티나 축제를 여는 운동 방식은 곁다리 취급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