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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91194087892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5-07-31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일기들
에필로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갑자기 대선 캠프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에게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려고 했던 3개월이 대선 기간과 얼추 들어맞는다고 설명했다. 그게 이유의 다는 아니었는데. 단순히 몰두할 대상이 필요해서였을까? 아니면 H에 대한 복수심에서였을까?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고 H는 늘 한국 밖에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차별과 분노, 부조리에서 한발 떨어져 살기 때문에 우울증이 심해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글쎄, 나도 외국에서 살아 봤지만 내가 겪은 상황은 반대에 가까웠다. 사회의 맥락 속에서 아예 지워진 사람, 심지어 투쟁의 주체도 되기 힘든 사람. 소수자가 아닌 투명 인간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유쾌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저 지독하게 외로웠다. 어떤 상황에서 더 행복할 수 있는지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H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나는 여기서 싸우겠다고. 모두가 그럴 수는 없지만, 난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오는 길에 15분 버전으로 요약한 나의 실패한 연애담을 듣고 엄마는 역시 차갑게 말했다. “야, 오픈 릴레이션십이든 폴리아모리든 난 모르겠고, 남편이 바람피워도 울고불고하면서 계속 사는 내 친구들이랑 뭐가 다르냐?”
엄마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또 장황하게 설명했다. 생득적 가부장 권력이 작용하지 않는 퀴어 연애의 특성과 합의하에 다른 사람을 만나기로 하는 여러 관계에 대해. ‘키 파트너’라는 개념도 있어서, 각자 자유롭게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어떤 두 명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가 되기로 약속할 수도 있다고. 가만히 듣다가 엄마는 다시 말했다. “이거 그거네. 누구네 남편이 바람피우다가 걸려서 아내한테 변명을 하는데, 그 여자는 그냥 잠깐 만나는 것뿐이고 당신이랑은 같이 가정도 이루고 애도 키우고 제사도 지내잖냐고.” 아, 제사라는 말에 난 녹다운됐다. 레즈비언이고 어쩌고 연애는 연애다. 구질구질하기론 다 똑같다.
청년 정치란 뭘까? 위원장에게도 물어보았다. 청년위원회 활동에 만족하냐고. 난 솔직히 중앙당 선대위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청년위원회라고 해서 실망했다고. 학생 운동으로 사회 운동을 시작해 이제 서른이 되었으니 10년 동안 청년이었던 셈인데, 언제까지 나에게 나이 많은 사람들이 구워 놓은 케이크 위에 뿌리는 스프링클 같은 역할만 주어질까?
나이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파티나 축제를 여는 방식의 운동을 해 왔는데, 애초에 페미니즘 운동 그리고 파티나 축제를 여는 운동 방식은 곁다리 취급을 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