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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91194442455
· 쪽수 : 180쪽
· 출판일 : 2025-09-04
책 소개
목차
1부 트래핑의 필요 / 2부 숲속의 빛 / 3부 이모와 보내는 계절 / 4부 돌과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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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아파트 공용 현관 앞에서 이모와 나는 잠시 멈춰야 했다.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통로에 페인트를 새로 칠해 놓는 바람에 출입할 수가 없었다. 짧고 가는 내 다리로도 오를 수 있는 계단 세 칸을, 이모는 오를 수 없었다. 내게 등을 돌리고 엄마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동안 이모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잠시 뒤 이모는 앞으로 두 시간 동안 내가 집에서 뭘 먹고 어디에 있으면 되는지, 엄마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만 원 한 장을 쥐여 줬다. 나는 이모가 왜 우리 집에 같이 갈 수 없었는지 생각했다. 엄마가 먹으라고 한 건 손도 대지 않고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크게 휘어진 이모의 척추가 자꾸 아른거렸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 길을 이모가 잘 갔을지, 애초에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지 곱씹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모의 뒷모습을 제대로 본 날이었다.
그때처럼 이모랑 다시 웃고 즐겁고,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익숙하고 한적한 무장애로(無障礙路)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이모가 땅의 기울기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곳. 이모와 내가 서로를 돌보지 않아도 되는 곳.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오래도록 조용했다. 불편하고 무거운 고요. 어쩐지 산도 우리와 함께 침묵하는 듯했다.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던 동물들도 눈에 띄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아 나무도 숲도 정물처럼 멈춰 있었다. 꾸덕한 질감으로 그려낸 유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 덥고 찐득한 걸음. 걸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