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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집
· ISBN : 9791195003204
· 쪽수 : 96쪽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박선주: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에 혼자 산책을 하다가 문득 발견한 것인데, 식물과 빗자루, 삽이 불빛 아래 함께 있는 모습이 너무나 조화롭게 느껴졌어요. 아마도 이 빗자루와 삽이 없었다면 셔터를 누르지 않았을 겁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 서로 공존해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제 가슴 속에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지요. 그 순간 셔터를 눌렀구요. 우리의 삶 주변의 하찮은 것들, 아무도 봐 주지 않는 버려진 것들에 자꾸 시선이 갑니다. 분명히 우리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 하찮은 것들에 마음이 끌립니다. 길에서 만나는 허름한 창고, 쓰레기통과 같은 소외된 것들, 필요해서 쓰이고 버려지는 것들이 어느 순간 묘하게 존재감을 갖고 다가옵니다. 그 사물들이 말을 걸어와요. ‘나 좀 바라봐 줘’ 그렇게 얼굴을 내밀죠.
사진을 찍고 나서 왜 이런 대상들이 눈에 잡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죠. 그래서 깨닫게 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어린 시절 제 주변에 있었던 것들이었어요. 생활이 어려웠던 그 시절 우리의 집 앞마당, 혹은 담벼락, 골목 어딘가에 늘려 있었던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거리를 걷다가 문득 이런 사물들을 보면 예전의 집과 골목들이 떠오릅니다.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면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것이죠.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과자를 한 입 깨무는 순간, 마르셀에게 어린 시절 살던 콩브레의 정경이 한 순간에 떠오르듯이.
김진영: 프루스트는 켈트족의 전설에 대해서 말하죠.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그 사람이 영원히 죽었다고 슬퍼 하지만, 그 죽은 자들은 영혼이 되어서 세상의 곳곳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해요. 그리고 그 영혼들은 우리를 부르고 우리에게 ‘나 좀 봐줘’라고 늘 말을 걸고 있지만, 우린 슬픔에 잠겨 있을 뿐이죠. 하지만 어느 순간 돌연한 기억으로 우리는 영혼들의 부름을 듣고 그들과 해후한다는 거죠. 그 기억의 계기가 프루스트에게는 감각이에요. 감각은 시간성을 지니지만 동시에 시간이 가도 남는 거라고 프루스트는 말해요. 차 한 잔을 마셨을 때, 이미 예전에 마셨던 그 차 맛은 사라져 버렸지만, 예전의 그 감각과 지금의 감각이 연결이 됩니다. 게다가 감각은 홀로 존재하지 않아요. 하나의 감각이 기억되면 그와 연결된 모든 감각들 - 청각, 미각, 촉각. 시각들 전체가 따라서 끌려 나오는 거죠. 그게 바로 무의지적 기억이 총체적 기억인 까닭이죠. 중요한 건 그 감각이 다름 아닌 사소한 것들로부터 촉발된다는 것이죠. 박 선생님의 추억 작용도 다르지 않을 테구요. 그런데 제게는 어쩐지 박 선생님의 사진들이 프루스트보다는 벤야민의 알레고리 개념에 더 가까운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네요.
- 김진영과 박선주의 대화, <사진과 기억사이> 중에서
사진작가는 전일한 의식에서 대상-세계를 응시하고 경계를 지우는 작업자이다. 분할된 조각들을 모아내 매끈하게 한 장의 이미지로 옮겨오는 자이다. 이제까지 불러졌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사물을 호출하여 다르게 말하는 사람일 것이다. 사물의 무상함을 알고 있기에 영원히 기억 될 흔적으로 기입하는 자, ‘마들렌’과 ‘산딸기 오믈랫’의 맛을 표현은 못하지만 기억해 낸 자이다. 그러니 사진작가의 자리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시 보이게 하는 영매의 자리 근처가 될 것이다.
- <2월의 노트>, 본문 최연하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