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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기타국가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91195008339
· 쪽수 : 528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리즈로즈라뇨?” 니콜이 침묵을 깨고 소리를 질렀다.
포숄 가 골목 끝에는 똑같은 현관이 달린 열다섯 채의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각 집에서 나는 소리가 거의 모두 옆집으로 새어나간다. 그날 아침 니콜이 지른 비명도 얇은 벽을 뚫고 온 동네로 퍼졌다.
“왜 리즈로즈라고 하는 거예요? 대체 누가요? 아기가 자기 이름이 리즈로즈라고 소방관한테 말했대요? 그 아이는 우리 에밀리란 말예요! 대체 누가 아니래요? 자기가 아닌지 어떻게 안대요? 이건 음모예요. 생존한 애가 우리 에밀리뿐이라서 훔쳐가는 거라고요!”
니콜이 오열하며 남편 품으로 쓰러졌다. 니콜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놀란 이웃들이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명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미처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뒤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고장 난 장난감이 딸각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마르크는 뒤로 돌아 무슨 일인지 살폈다. 놀랍게도 거대한 비바리움에서 나는 소리였다. 잠자리들이 물기 없는 비바리움 바닥에서 날개를 파닥거리며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얼른 비바리움으로 다가갔다. 제일 몸집이 큰 한 마리만 겨우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몸통이 빨간색인 이 잠자리는 자신을 구해줄 누군가가 왔다는 걸 직감한 듯 온 힘을 다해 날개를 파닥이며 유리 벽에 부딪혔다. 잠자리의 절망적인 몸짓에 마르크는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죽음 직전의 갇힌 잠자리라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는 당장 비바리움의 뚜껑을 열었다. 무거웠지만 다행히 잠겨있지 않아 힘들이지 않고 뚜껑을 들어 벽에 세웠다. 신선한 공기가 들어가자마자 붉은 잠자리는 날개를 퍼덕이며 비바리움 밖으로 나와 잠시 머뭇거리다가 금세 우아하고 힘찬 몸놀림으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한참 거실 안을 날다가 램프 갓에 앉았다.
어이없게도 마르크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잠자리를 구했다는 생각에 어린아이처럼 흥분이 몰려왔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릴리의 두 손이 허리로 향했다. 그림자가 춤추듯 흔들렸다. 옷이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미끄러졌다. 릴리가 허물을 벗고 있었다. 모래 위로 옷이 떨어졌다. 마르크는 검은 그림자를 응시했다. 그림자는 조금 전 릴리의 이미지와 완벽하게 똑같았다. 같은 크기, 같은 다리, 같은 허벅지. 두 번째 피부가 있든 없든 실루엣은 같았다.
릴리가 다시 배를 깔고 누웠다. 마르크는 마냥 기다렸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몇 분이 흘렀는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를 도와주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수평선에는 요트도 길 잃은 관광객도 보이지 않았다. 화를 내며 해변으로 내려오는 농장주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