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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95575923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15-11-25
책 소개
목차
단풍 지는 나무 ― 거울의 숲
봄을 머금은 나무 ― 방황하는 청춘
눈을 기다리는 나무 ― 인디언 서머
아픈 나무 ― 여름이 남긴 장미
성장하는 나무 ― 52세의 비밀기지
자유를 잃은 나무 ― 하늘 높이 나는 종달새
새로 시작하는 나무 ― 빛이 비치는 장소
역자 후기 절망에 빠진 친구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준 나무, 숲 그리고 우주
리뷰
책속에서
아야코가 설거지를 끝내자 호타카가 조용히 다가와 아야코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이게 뭐니?”
“주웠어요.”
호타카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왜 주웠어?”
“그게…….”
호타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예뻐서. 그냥 예뻐서. 엄마 드리고 싶었어요.”
아야코는 숲에서 만난 청년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호타카를 착한 아이라고 말해 준 그 숲지기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뭔가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사람을 사랑하는 일처럼 멋진 일이에요. 이 숲은 거울 같아요. 숲의 나무와 풀, 꽃과 새를, 구불구불 이어지는 오솔길을 사랑하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 또한 아름다운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믿어요. 호타카는 잎을 억지로 따려 하지 않고 저절로 떨어질 때를 기다려 주었어요. 그래서 착한 아이라고, 괜찮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던 거예요. 그래요. 호타카는 ‘때’를 알고 있었어요. 숲의 나뭇잎이 가장 아름답게 물드는 때를! 사람의 심장이 사랑으로 물드는 때를!”
― 「단풍 지는 나무 ― 거울의 숲」에서
커피 잔을 들고 도리이는 자리로 돌아왔다. 50세라는 인생의 분기점은 1년 전에 이미 지났다. 38세에 계장으로 승진한 이래 직위는 바뀌지 않았다. 판매촉진부 부장은 모 회사에서 온 도리이와 같은 나이의 여성이고, 촉진 2과 과장은 중간에 입사한 사람으로 도리이보다 여섯 살이나 아래다. 게다가 과장대리 자리에는 8년 후배가 앉아 있다.
마우스를 움직여 스크린 서버를 쫓아 버렸다. 받은 메일을 확인하자 세월이 지나 형태가 바뀐 사내알림이 희미한 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희망퇴직 신청서 마감일 연장에 대하여…….’
도리이는 쓴 액체를 위장에 떨어뜨리고 얼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를 가볍게 뻗는 척하면서 과장 자리 너머의 창문을 보았다.
10년 전쯤 시내 중심부의 JR(일본철도. 국유철도의 분할, 민영화로 생겨난 여객철도회사와 화물회사의 공통 약칭)역을 나와 도보로 7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는 25층 건물의 20층으로 지사가 이전했다. 임대료는 그리 비싸지 않은 모양이다. 건물 자체가 낡았다. 저렴해서 이전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적이 계속 떨어졌으니까.
단, 조망은 나쁘지 않다. 이전에 비해 고층건물이 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남쪽에서 남서쪽으로는 근교의 산까지 가리는 것 없이 한눈에 들어온다. 들판까지 이어지는 집들 가운데 아내와 아들과 사는 맨션, 그리고 도리이의 본가도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란 곳. 1월 중순인 지금 계절은 눈에 묻혀 색감이 단조롭다.
도리이는 그 거리에서 건물이 없는 한 구획을 본다. 손을 대지 않은 느낌의 나무가 늘어서 있다. 근처 중고교 부지보다 훨씬 넓은 숲으로, 어릴 적 도리이는 가끔 그곳에서 혼자 놀곤 했다.
컵을 코 아래에 갖다 댄다. 아무 향도 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 받은 것은 진짜보다도 좋은 향이 났다.
“그때가 좋았어.”
“계장님 뭐라고 하셨어요? 또 컴퓨터 문제예요?”
옆을 지나가던 젊은 직원이 말했다.
“혹시 모르시는 게 있어요?”
옛날을 회상하다 무의식적으로 혼잣말을 한 도리이는 “아무것도 아냐” 하고 웃는 얼굴을 지어 보이며 잔을 들지 않은 손을 내저었다.
“조작 방법을 모르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젊은 직원은 그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말을 걸 때면 늘 기가 죽는다. 그들이 도리이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것도 몰라?’
‘전에도 설명했는데.’
‘쓸모없는 52세.’
― 「성장하는 나무 ― 52세의 비밀기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