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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외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91195752935
· 쪽수 : 319쪽
· 출판일 : 2016-04-20
책 소개
목차
서장: 꽃의 씨앗이 싹틀 때
제1장 꽃의 꿈
1 나무 정령의 소중한 사람
2 하염없이 자는 사람들
3 꽃지기
4 출구 없는 방
제2장 꽃 지킴이
1 주술과 별 해독
2 꽃의 덫
3 바르사와 꽃 지킴이의 사투
4 꽃의 아들
제3장 꽃으로 이르는 길
1 기록 담당 오토
2 챠그무와 탄다
3 밀회
4 챠그무의 책략
제4장 꽃의 밤
1 사냥꾼 진의 약속
2 산의 호수
3 달의 문
4 파멸의 바람과 노랫소리
5 깨어남
종장: 여름날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유그노가 몸에서 힘을 빼고 자연스러운 자세로 서더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소용돌이가 스르르 사라지듯이, 주위의 모든 소리가 점점 사그라들었다. 이윽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이 찾아왔다.
유그노의 입에서 가느다란 숨결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수풀 사이를 건너가는 바람과도 같이 조용한 울림이었다. 이내 부드러운 선율이 들려왔다. 순간 바르사는 살갗에, 배에, 나아가 몸 전체에 기묘한 진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유그노의 목소리는 바람보다도 가볍게, 잔물결보다도 섬세하게 대기를 흔들었다. 그리고 나무들 사이사이, 수풀 사이사이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가늘고 높은, 낮고 굵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선율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실을 짜듯 목소리와 목소리가 함께 울리고, 울림이 울림을 자아내고…. 바르사는 온몸이 파도에 흔들리며 전율하는 것 같은, 의식마저 전율하는 것 같아 견딜 수 없는 감각에 사로잡혔다. 몸과 마음을 이루는 모든 것이 하나하나 노랫소리에 공명하며 떨렸다. 샘솟는 기쁨이 소용돌이치며 하늘로 올라갔다.
“‘그 빛은… 아들의 혼인가요?’ 하고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다. 저건 혼의 빛이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처음 본 터라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처음이라는 말에 생각났는데, 그 꿈도 묘한 꿈이었지. 네 혼을 쫓아갈 수 있었으니까 그건 아마 나유그의 어디였을 텐데, 기묘한 방식으로 네 꿈과 저 세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더구나. 게다가 빠져나오기 힘든 세계였다. 마치 소용돌이 속 같았지. 자칫하면 나도 붙잡혔을지도 모른다. 그 분위기로 봐서 추측하건대, 마침 너를 돌려보낼 시기가 된 것 같아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지만….’”
토로가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하는 말이 당시의 나로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들의 혼이 어떻게 되는 건지 그게 마음에 걸렸지. 나는 여자를 붙잡고 흔들며, 아들의 혼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고, 어디로 보내버렸느냐고 소리쳤단다. 여자가 손을 들어 달래듯이 말하더구나.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단지 네가 가슴에 안고 있던 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을 뿐이다. 혼은 스스로 날아오른 것이다. 지금쯤은 어딘가 산 너머에 사는 여자의 뱃속에 들어가 있겠지.’
나는 내가 낳은 혼이 다른 여자의 아이가 된다는 말에 놀라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지! 내가 노발대발하자, 다시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말하더구나.
‘그렇게 화내지 마라. 네 혼도 네 어머니가 만든 것이 아니니까. 죽은 누군가의 혼이 저세상으로 가서 과거의 모든 것을 잊고, 네 어머니의 뱃속에 들었다가 태어난 거니까. 이 세상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네 혼의 아들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운명을 겪을 것 같구나.’”
‘황제 따위, 되고 싶지 않아.’
황제는 사람이 아니다. 황제가 되면 더 이상 아무도 챠그무를 사람으로는 대하지 않을 것이다. 친근하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는 관계는 두 번 다시 바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챠그무는 가슴 깊이 절망했다. 이제까지 절망을 가까스로 이겨내게 해준 것은 정령의 수호자 늉가로차가였을 때 본, 나유그의 맑고 고요하던 물속 풍경이었다.
그 풍경에서 무엇을 본 걸까?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낀 어떤 감정이 챠그무를 계속 지탱해준 것이다. 그런데 오늘밤은 그 감정도 챠그무의 마음을 꽉 틀어막는, 탈출구조차 보이지 않는 답답함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무겁게 가라앉은 챠그무의 마음에 문득 곡조가 하나 떠올랐다. 경쾌함에 애달픔이 깃든 아름다운 곡조. 얼마 전 제1황비를 위로하기 위해 열린 연회에서 들은 노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