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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5820818
· 쪽수 : 114쪽
· 출판일 : 2016-07-01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물이 허락한 사랑
제1화 나무도깨비를 사랑한 허깨비소녀
제2화 야성은 길들여지지 않아요
제3화 법열(法悅)의 오르가즘
제4화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
제5화 해와달을 움직이는 섹스
제6화 사랑을 인생으로 바꿔치기하라
제7화 기억들이야말로 최고의 사랑이예요
제8화 사랑 따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제9화 그들의 시간은 정말 짧았어요
제10화 제비는 왕자에게 입을 맞추었어요
제11화 텅 비었으나 꽉 찬 '사랑의 기억'
제12화 총각의 상여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제13화 기쁨으로만 가득찬 생애를 시작하는 건가요
저자소개
책속에서
저는 어떤 사내를 만났습니다. 그는 흔히 보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가 별볼일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만하면 꽤 근사한 사람이었죠. 흔히 보는 그렇고 그런, 이라고 말을 시작한 까닭은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보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가 내 가슴을 정면으로 관통하여 버리더니, 이어서 나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 쑤욱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헐, 그야말로 한방에 훅 가버린 나는 마치 온 몸이 감전되어 버린 사람처럼 이십사 시간 내내 전율에 휩싸이게 되었던 거예요. 갑자기 깨달았죠. 그가 내 안으로 거처를 옮긴 거구나. 이런 망할. 누가 누구 속으로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와 버리는 일이 다름 아닌 나에게 일어나다니. 이런 기막히고 어처구니 없고 환장할 일이 내게 벌어지다니.
비너스는 오로지 '집착' 하나로 아도니스를 붙잡아 놓으려고 했어요. 비너스는 도깨비처럼 날뛰는 아도니스를 사냥하려 했고, 그 방법은 집착 다른 말로 하면 소유였어요. 속된 말로 그를 '갖고' 싶었던 거죠. 통속의 극치를 달리는 사랑의 절정에 연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요. '너를 갖고 싶어' '저도요'. 사냥꾼은 암사슴과 이런 이야기를 머얼리서 주고 받아요. 널 갖고 싶어, 너의 아름다운 목덜미와 너의 멋진 다리와 너의 부드러운 속살을 말이야. 암사슴은 흘낏 뒤돌아보며 침묵으로 대답하죠. 하지만...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어차피 누군가의 손에 죽게 될 테니까요, 이왕이면 당신의 뜨거운 화살촉에 부서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자, 저를 따라오시든가요.
진지왕과 동침한 도화녀가 느꼈던 오르가즘은 어쩌면 법열의 감정은 아니었을 런지요. 다시는 오지 않은 진지왕을 향해 도화녀가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홀로 지상에 남겨진 도화녀를 향해 진지왕이 어떤 모습으로 현몽했는지도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모든 것을 알 것 같은 심정입니다. 띄엄띄엄 전해오는 이야기들을 한데 종합해보면, 에로스 속에 들어 있는 로고스가 문득 옷깃을 여미게 한단 말입니다. 인간은 쉽사리 옷섶을 풀어헤치는 별볼일 없는 존재들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아니 결단코 그것만은 아니어서 되짚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거룩한 마음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에 숙연해지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