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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경제경영 > 경제학/경제일반 > 경제사/경제전망 > 아시아 경제사/경제전망
· ISBN : 9791196211691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19-08-30
책 소개
목차
글 문을 열면서 004
PAPT 1
수출 보복 전야의 현장!
이메일 한 통에 화들짝 놀라다 013
수출 규제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_야후 댓글로 읽는 일본 동향
PAPT 2
일본의 치밀함과 잠재력!
‘20초’ 일찍 출발시켜 죽을죄를 졌습니다 031
5분 늦는 건 지각인가, 아닌가?_일본인의 시간 개념
이건 자동차인가, 앙증맞은 벤또(도시락)인가? 045
스폰지밥 자동차와 사랑에 빠진 까닭?_경차 + 사각 = 인기 차종
내가 그렇게 좁쌀만 하게 보여? 059
한 기업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다_무라타제작소 견학 일기
배불뚝이 곰 인형의 정체를 밝혀라 071
멍 때리는 곰 인형 하나에 열광하다_캐릭터 ‘구마몬’의 탄생 비화
모든 직장에 낮잠을 허(許)하라 087
간덩이가 부었나, 감히 회사에서 낮잠을? _카페인 넵(Caffeine Nap) , 어떤가요?
중화인민공화국’은 일본에서 탄생했다? 101
한자(漢字)는 이제 한자(韓字)다 _한자 교육과 인재 경쟁력
PAPT 3
새롭게 파헤치는 일본!
우리나라 화폐 초상에 일본인이 들어간 까닭? 119
미워만 해서 이긴다면, 영원히 미워할 테다_시부사와 에이이치 vs. 윤치호
‘80’과 ‘50’에 숨겨진 무서운 비밀 131
8050 문제라고?_중고령 히키코모리를 어쩌나
악기, 그 중에서도 피아노 교육의 중요성 145
도쿄대생은 왜 피아노를 잘 칠까?_도쿄대생이 지닌 비밀 하나
가장 악할 때 들어와 가장 선할 때 세상과 작별하다 159
오늘 그대가 가장 갖고 싶은 물건은?_사형제도로 보는 한국과 일본
만고의 진리, 혁신 없이는 생존도 없다 173
거악(巨惡)에게서 배우는 남다른 교훈_야쿠자란 무엇인가?
너는 나의 과거, 나는 너의 미래 187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로 엿보는 후반기 삶_센류(川柳)로 읽는 초고령 사회
대체 '스미마셍'이 어쨌다고? 197
메이와쿠와 가케루나!(폐 끼치지 마!) _일본인의 민폐 의식
글 문을 닫으면서 210
참고문헌 213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간 민간에서 회자되던 국교 단절 얘기가 마침내 ‘일한(日韓) 단교 완전 시뮬레이션’이란 제목으로 월간지『 문예춘추(文藝春秋)』 4월호에 등장했다. ‘단교’란 용어가 일본 지식층을 독자로 하는 출판물에 기사화된 건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일본 내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뜻이다. 지난 3월 말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기업인과 만난 자리에서 “경제는 정치와 다르게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헌데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을 보면, 경제와 정치는 자전거의 앞바퀴와 뒷바퀴였다. 완벽히 한 몸이란 사실이다. - Part 1 수출 보복 전야의 현장 !
야쿠자는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과 함께 지속적으로 행동반경을 넓혀왔다. 그러다 1990년대 초반 버블경제가 꺼지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이어 일본 정부의 폭력단대책법(暴力団対策法) 과 폭력단배제조례(暴力団排除条例) 등이 야쿠자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더해 근래 젊은 층의 개인주의 심화와 완전고용에 가까울 만큼 취업시장이 안정세를 되찾으면서 야쿠자는 더 이상 인기직업(?)이 아니다. 화려하고 뜨거웠던 한 시절이 저물고 매서운 바람을 동반한 차가운 겨울이 야쿠자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젠 스스로 생존을 저울질해야 할 처지다. 명심하라, 번영과 생존 방식은 늘 바뀐다. 변화 없이는 번영도 생존도 없다. 이게 비단 야쿠자에게 한정된 얘기는 아닐 듯하다. - Part 3 새롭게 파헤치는 일본!
올해는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무려 100년이 흐른 지금도 일본은 가해자고, 한국은 피해자라는 프레임에 여전히 갇혀 양국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는 현실엔 만감이 교차한다. 왜 그리 목소리를 높이는지, 어째서 그런 식으로 밖엔 할 수 없는지 이유조차 들어 볼 생각이 없다. 두 귀를 틀어막은 채 각자의 거울 앞에서 자기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도무지 접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보니 상호 간의 인식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 괴리를 상징적으로 표출하는 장면이 있다. 한쪽에선 국권 침탈의 원흉을 처단한 ‘의사(義士)’로 추앙을 받지만, 다른 한쪽에선 조국 근대화의 원훈(元勳)을 암살한 ‘테러리스트’로 지칭된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두 사람이 그렇다. 자국에선 영웅으로 존경받건만 상대국에선 단지 파렴치범이나 악인쯤으로 취급당한다. 이런 감각 차이를 양국이 서로 인정했으면 좋겠다. - 글 문을 닫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