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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6361525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21-04-05
책 소개
목차
1. 섬
2. 시그널
· 머리 · 기념일 · 풍선과 바늘
· 변화하는 행동 · 주변의 이야기
3. 지나온 시간
· 아현동 사남매 · 결혼과 아이들 · 유일한 취미
4. 불꽃
· 도화선 · 마음처럼
5. 아빠는 엄마를
· 서로 · 요리와 마음
6. 발송
· 부재중 · 안녕
7. 엄마 엄마
· 단 한 번도 · 같이
8. 선영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런 상황이 얼마나 반복되었을까. 엄마가 혼자 티브이를 보는 시간이 늘어났어. 자신에게 한마디라도 건네주길 바라는 듯 음량은 점점 커져갔지만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지. 같은 집에 살지만 방문을 사이에 두고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말 한 번 안 하는 날이 일주일에 반은 됐을 거야. 근데 처음엔 미안했던 마음이 무심해지기 시작하더라고. 그 후로 어쩌다 말을 건네면 아주 뾰족하게 돋아있는 말투가 신경질적으로 건너왔어. 할머니도 알다시피 엄마와 난 서로에게 좀 유별났잖아. 별일도 아닌데 감정이 점점 격앙돼서 미운 감정이 더해지고 급기야 서로에게 돌직구를 던지곤 했던 그런 거. 나도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는데 너무 화가 나는 거야. 사실 오늘도 서로에게 모진 소리를 했어. 할머니가 들어도 속이 상할 그런 말들을. -「섬」
첫째가 잘돼야 동생들이 잘된다는 신조에 따라 할머니는 매일 밤 동생들을 재우고 나면 작은 책상을 펴놓고 엄마를 앉혀 공부를 시키곤 했다. 졸음으로 내려앉은 눈꺼풀을 낮게 껌뻑이며 책상에 앉은 첫째는 한참 늦은 취침과 이른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동생들에게 항상 양보해야 했고 하고 싶은 것이 생겨도 그들을 먼저 챙겨야 했던 엄마는 자신을 챙기는 일보다 남을 돌보는 일에 더 익숙해졌다. 큰딸과 언니의 역할로 이십오 년을 살았을 무렵 엄마는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집에서의 자신의 위치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생겨났다. 일을 시작하며 조금은 홀가분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 즈음, 엄마는 결혼을 했다. -「아현동 사남매」
집으로 돌아와 주방에 수박을 내려두고 두 팔 벌려 엄마를 품에 안았다. 엄마도 처음, 우리도 처음 겪는 거니까 차근차근 같이 걸어가자고 얘기했다. 예전엔 낯간지럽다고 말끝을 흐렸던 ‘사랑해’라는 말도 또박또박 자주 얘기하기로 했다. 엄마가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면 나는 평소 하지 못했던 정말 중요한 이 말들을 자주 하자고 다짐했다. “아이구” 하시며 내 등을 토닥여주곤 하셨던 엄마의 몸이 쉽게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옛날보다 작아진 느낌이 들었다.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