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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역사
· ISBN : 9791196509200
· 쪽수 : 452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_기억하는 것은 준비하는 일이다
1장. 19세기의 한반도
01 제국주의 시대의 개막
02 쇄국과 개화의 충돌
03 가난과 혼란의 도가니 조선
2장. 19세기 말의 미국과 개신교
01 19세기의 미국
02 19세기의 미국 개신교
03 미국 개신교의 선교 열기
3장. 한반도 선교의 내력
01 기독교의 전래
02 개신교 전래와 미국 선교사
4장. 선교사 후원자들
01 프레더릭 마퀸드(1799~1882)
02 다니엘 윌킨 맥윌리엄스(1837~1919)
03 존 토머스 언더우드(1857~1937)
04 존 프랭클린 가우처(1845~1922)
05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1838~1913)
06 히람 캠프(1811~1893)
5장. 초기 미국 선교사들
01 호레이스 뉴턴 알렌(1858~1932)
02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1859~1916)
03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1858~1902)
04 메리 플레처 스크랜턴(1832~1909)
05 윌리엄 벤턴 스크랜턴(1856~1922)
06 애니 엘러스 번커(1860~1938)
07 존 윌리엄 헤론(1856~1890)
08 호머 베자릴 헐버트(1863~1949)
09 릴리어스 스털링 호턴(1888~1949)
10 새뮤얼 오스틴 모펫(1864~1939)
11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
12 윌리엄 마르티네 베어드(1862~1931)
13 새뮤얼 포어맨 무어(1860~1906)
14 그레이엄 리(1861~1916)
15 윌리엄 리엔더 스왈른(1859~1954)
16 제임스 에드워드 애덤스(1867~1929)
17 조세핀 이튼 필 캠벨(1853~1920)
18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1880~1934)
19 휘트먼 틸로슨 리드(1883~1954), 클라렌스 프레더릭 리드(1849~1915)
20 셔우드 홀(1893~1991)
21 초기 순교자들
22 못다 한 이야기들
6장. 후기 미국 선교사들
01 아이작 포스터(1925~2010)
02 어니스트 와이스(1908~1984)
03 존 로손 시블리(1926~2012)
04 호레이스 호턴 언더우드(1890~1951)
05 로버트 윌러드 피어스(1914~1978)
06 에버렛 스완슨(1913~1965)
07 칼 웨슬리 주디(1918~2008)
08 케네스 엘머 보이어(1930~ )
7장. 유산과 교훈
01 영적인 선물
02 가난과 질곡으로부터 안식
03 자각하는 개인
04 신분제 계급의 해체
05 민족의식의 고양
06 건국의 초석과 정체성
07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 육성
08 미국과의 긴밀한 연결 고리
09 근대 시민 국가의 가치에 대한 이해와 확산
10 근대적 교육기관 설립과 인재 육성
11 서양 의료기관 설립과 인재 육성
12 소외된 자에 대한 박애 정신
13 문맹화의 탈피
14 공산화에 대한 방파제
15 선교 대국
맺음말_은혜의 강물이 흘렀다
색인
영어 요약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선교사들의 불결함에 대한 토로는 비단 관찰자로서의 기록이 아니다. 자신과 가족이 전염병의 재물이 되었다. 지금도 나이가 든 세대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서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 살 수 있었을까?’라는 문장이 이따금 스쳐갈 것이다. 우리는 민족이란 단어가 가진 마력에 사로잡혀 너나없이 그 시절을 미화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시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그런 시대는 아니었다. 가난, 부패, 불결, 전염병, 정치 혼란 등이 보통 사람들의 삶을 질곡 같은 세월로 만들었다. 깨어 있는 사람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미로 같은 세월의 연속에 크게 좌절하고 낙담했을 것이다. 선교사들이 내한하던 시절의 조선이란 나라는 천장은 비가 새고 담벼락은 장대비에 허물어져 내려 주저앉기 직전의 토담집 같은 신세였다.
에비슨은 “서울에는 시설을 제대로 갖춘 병원이 한 군데도 없고 간호사도 없이 의사 혼자 모든 것을 다 하고 있습니다”라고 한국 사정을 소개하면서, “만약 3~4명의 의사가 잘 설비된 하나의 병원에서 같이 진료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내친김에 에비슨은 5월 말 북장로회 총회에서 병원 설립 홍보를 했다. 강연을 경청했던 루이스 세브란스는 1만 달러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에비슨의 말에 루이스 세브란스는 “받는 당신보다 주는 나의 기쁨이 더 큽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기부 약속이 이뤄지자 선교본부가 1만 달러를 더 제공하겠다고 약속한다. 이렇게 2만 달러가 확보된다. 이 기금을 기초로 1904년 11월, 서울역 맞은편 지금의 연세빌딩 자리에 기증자의 이름을 딴 ‘세브란스병원’이 설립된다. 루이스 세브란스는 1만 달러 기부에 그치지 않고 곧 남대문 밖 복숭아골(현 세브란스빌딩 소재지 부근)의 대지 구입비로 5,000달러를 더 내놓는다.
선교본부의 승인이 떨어지자 애오개 시약소(1888년 12월), 남대문 시약소(1890), 동대문 시약소(1892) 등을 연다. 신촌과 마포가 갈리는 오른쪽에 우뚝 서 있는 아현감리교회는 애오개 시약소에서 출발한 교회다. 그래서 교회 창립 120주년을 기념해 지은 예배당은 ‘스크랜턴기념예배당’으로 명명되었다. 애오개는 작은 고개라는 뜻으로 죽은 아이를 내다 버리는 곳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전염병 환자를 격리 수용하는 ‘사활인서’가 있던 곳이다. 윌리엄 스크랜턴은 이곳에 애오개 시약소를 설치했다. 남대문에서 한국은행 방향으로 300m 가다 보면 상동교회가 있다. 이곳에도 상동 시약소를 세웠다. […] 스크랜턴은 시약소에 진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을 위해 전도 책자를 구비해놓았을 뿐 아니라 전도인까지 상주시켜서 복음을 전파하는 곳으로 활용한다. 결국 1893년 정동 시병원의 시설과 장비를 옮겨 1895년 상동에서 본격적인 진료에 들어간다. 부지 안에 한옥을 한 채 빌려서 예배실로 꾸미고 주일 집회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