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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6769482
· 쪽수 : 293쪽
· 출판일 : 2023-03-15
책 소개
목차
책을 만들며 5
글을 열며 8
1부 새로운 선생이 태어나는 시간
새로운 세상으로의 진입 19
내 남편을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년은 죽여버릴 거야! 28
건강한 빗자루는 꺾일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38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고기를 부른다 43
경계에 있는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49
오빠도 술이 웬수다 56
어두운 바다에 홀로 오징어 배를 띄워놓은 것 같던 그 시간은(1) 64
어두운 바다에 홀로 오징어 배를 띄워놓은 것 같던 그 시간은(2) 74
손이 졸라 고우시네요 90
마지막 종례의 전달 사항 99
담배가 준 상 112
2부 아이들을 내려두고, 다시
탈출, 그리고 125
학생부장을 하라고요? 134
아마도, 우리 사이는 비즈니스 140
된다고 말하게 146
그대 이름은 장미 155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162
흰자위가 슬픔을 불러오는 걸까 173
그저. 잘. ‘살아’ 있기를 186
뱃사공이 널 떠난 이유 203
3부 선생이라는 이름의 친구
세잎 클로버 행복이 세 장 217
안전 교육은 드웨인 존슨과 함께 222
4.12 급식대란 230
사랑한다고 말하면 빵 한 조각을 주지 238
B컬과 S컬의 각도 차이를 구하시오 250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260
당신에게 돋아 있는 가시는 273
마음 하나 젖지 않을 법한 우산 283
책 한 권을 마치며 291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러니까 여러분이 결혼했는데 그 남편에게 형이 있으면 뭐라고 한다고요?”
“아주버님이요.”
“좋습니다. 그럼 아주버님의 부인, 그러니까 여러분의 손윗 동서는 여러분의 남편을 뭐라고 부르게 될까요?”
“서방님!”
“맞아요!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에겐 도련님, 결혼했으면 서방님이라고 부르지요.”
제일 앞줄에 앉은 두 명 정돈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제일 뒤에 앉아 열심히 화장하던 한 아이가 마스카라와 손거울을 탁 소리가 나게 책상에 내려놓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남편을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년은 죽여버릴 거야!”
아아, 그러니까 얘야, 우리나라는 일부일처제 국가니까 그분은 네 남편을 자기 남편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옛날부터 정해진, 아니 미안하다. 어차피 못 알아듣겠지 싶어 적당한 말을 고르던 중 옆에 있던 그의 친구가 맞장구를 친다.
“그래! 같이 죽이자!” (‘내 남편을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년은 죽여버릴 거야’ 중에서)
“여ㅤㄱㅣㅆ습니다, 선생님.”
긴장됐다. 반장에게 건네받은 밀대 걸레 자루는 영화에서처럼 나무가 아니었다.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사되는 알루미늄 자루의 차가움이 손 안 가득 느껴졌다. 그래도 속이 비어 있으니 한방에 모가지를 잘 노려서 밟으면 한 방에 멋지게 부서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결단의 순간, 왼쪽 발에 힘을 단단히 주고 오른쪽 발 날로 더 정확할 수 없는 힘점을 노려 찼다.
하지만 자루는 깔끔하게 부러지는 대신 알파벳 L자에 가까운 형태로 힘없이 구부러지고 말았다. 갈등했다. 여기서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기어코 자루를 뽑아낼 것인가. 구부러졌지만 걸레를 밟고 양손으로 자루를 당기면 뽑힐 듯했다. 그러나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면서 자루를 당겼다. 서너 번 용을 써도 뽑히지 않았다. 이제는 이 밀대 걸레의 구조가 궁금해서 들어 올려 가까이서 보다가, 전날 교직원 회의의 환경부장 선생님의 그 말씀이 떠올라 힘없이 자루를 던져 버렸다.
“우리 아이들이 하도 밀대 걸레로 싸움을 하다 보니 많이 파손됩니다. 그래서 제가 일일이 자루랑 걸레를 나사로 고정해뒀어요. 하하하”
눈 감고 있으라고 했는데 실눈을 뜨고 그 모양을 보던 아이들은 웃음을 참느라 야단이었다. (‘건강한 빗자루는 꺾일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중에서)
장례식장에서 입관을 마치고 장지로 가는 길 중간에 학교가 있었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졸업을 못 하고 죽으면 한이 맺히니 매장이나 화장을 하기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한 번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 주는 게 지역의 풍습이라고 했다. 화창하게 맑은 날 오전, 관을 실은 운구 차량과 버스가 학교 운동장에 들어왔고 효석이의 동생이 형의 영정 사진을 들고 버스에서 내려 3층 교실로 올라왔다. 그해 효석이의 담임은 자동차과의 박 부장 선생님이셨지만, 1, 2학년 내리 담임을 맡았던 내게 마지막 인사말을 하라고 말씀하셨기에 이미 교실에서 효석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실 뒷문으로 효석이는 천천히 들어와 제 자리에 앉았다. 검은 옷을 입은 어른들이 최선을 다해 교복을 차려입은 아이들을 다독이는 가운데 나는 마지막 종례를 시작했다.
“그동안 고마웠다. 덕분에 행복했다. 마지막 종례의 전달사항. 천국에 가서도 행복할 것.”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머릿속에 그렸던 말들은 음성이 되어 밖으로 채 다 나오지 못하고 울음 속에 묻히고 말았다. 검은 옷과 교복들이 남긴 긴 울음이 꼬리를 끌고 교문 밖으로 사라진 뒤 나는 학교에서 5분만 걸으면 닿는 바다로 향했다. 백사장까지 나가면 불어오는 바람에 버티고 서있지 못하고 쓰러질 것만 같아서 바다에 수직으로 잇닿은 골목의 끝에 서 있는 전봇대에 기대섰다. 그리곤 아마 내가 세상에 처음 나왔던 날 이후로 가장 많은 울음을 쏟아냈을 것이다. (‘마지막 종례의 전달사항’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