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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6798727
· 쪽수 : 272쪽
책 소개
목차
애비로드 7
공과 영의 생존법 43
드라이브, 드라이브 79
이건 아마도 113
넌 항상 바깥에 있고 147
당신을 위한 스물한번 179
딸과 여신과 아이돌의 역사 211
작품해설 244
작가후기 260
리뷰
책속에서
어린 나는 명절날 육전을 부치다 말고 엄마가 누구인가를 물었다. 동태전을 부치던 할머니는 못 들은 척했고 만두피를 밀던 할아버지는 아빠가 날 주웠다고 답했다. 배냇저고리에 든 쪽지엔 아빠가 아빠라고만 적혀 있었다고. 그러므로 엄마가 누군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곁에 누워서 전을 부치는 족족 주워먹던 아빠가,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 애한테 쓸데없는 거짓말을 한다면서 성질을 냈다. 왜 애를 헷갈리게 하느냐고.
“야야, 아부지가 진실을 알려주마.”
그는 기세등등하게, 의미심장하게 속삭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나는 그의 똥구멍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 하도 똥이 안 나와서 식은땀이 흐르고 입에서 헉,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힘을 주었는데, 하늘이 노래지고 딱 죽는구나 싶었는데, 이대로 질 수 없단 생각이 들어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고 했다. 학, 합, 하! 그 순간 풍덩 소리와 함께 변기 물에 떨어진 내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가 할아버지에게 화내는 것을 본 일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서, 어린 나는 그의 말이 사실이겠거니 했다. __「애비로드」 중에서
그는 단언컨대 개새끼였다.
짧은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고 간 날에, 나는 그의 정체를 깨달았다. 핥듯이 할금거리는 시선 탓에 허벅지가 간지러울 무렵, 그가 나를 창고로 불러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꺼내달라고 말했다. 나는 의자를 밟고 올라섰다. 그는 아래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 얼굴이 아니라, 정확히는 스커트 안을 보려고 했다.
“어머, 어머, 선생님.”
나는 비틀거리며 그의 어깨에 기대섰다. 얼굴이 시뻘게진 그가 껄껄 웃고.
이후 바깥양반이 점심상에 오른 풋고추를 보면서 야, 고추가 참 실하네, 말하며 은근히 웃으면 나는 어머, 정말 그러네요, 작은 고추는 매워서 싫은데, 답했고 그걸 맛있게 씹어먹었다. 그의 입에서 나긋나긋한 시폰 원피스가 야하다는 말이 나오면 일주일 내내 비슷한 소재의 옷만 골라입고 다녔다. 그는 나의 장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인사 중 한명이었고 개중 가장 다루기 쉬운 축에 속했다. 상대해주는 만큼 챙김 받는단 점에서조차 마나님보다 나았다. __「공과 영의 생존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