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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철학 일반 > 교양 철학
· ISBN : 9791197171314
· 쪽수 : 560쪽
· 출판일 : 2020-10-05
책 소개
목차
머리말 4
1편 자연과 인간
Ⅰ. 인간만이 자연을 파괴한다 14
1. 관념론적 형이상학이 자연 파괴의 주범이다 17
1) 자연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는 이유 27
ⅰ. 의식이 생겨나기 전에는 외계를 이해하지 못했을까? 39
ⅱ. 관념론적 형이상학의 근본적인 왜곡 47
ⅲ. 옛 성현들의 주체론적 형이상학과 관념론적 형이상학의 차이점 53
ⅳ. 관념론자들의 근본적인 과오 63
ⅴ. 고전역학은 외계에 실재하는 물체의 움직임을 직접 관찰하고 분석한 것일까? 80
ⅵ. 외계(자연)는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일까? 94
ⅶ. 노자(老子)는 개념을 통해서는 자연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111
2) 인간의 본원적 직관능력[팔식(八識): 영혼]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117
3) 사물의 표상이 의식에 직접적으로 현상할 수 있을까? 132
4) 의식에서 선천적 종합판단이 가능할까? 142
5) 사물의 본질이 의식에 표상할 수 있을까? 153
6) 왕양명이 깨우쳐 주는 객관적 합리론의 폐해 161
ⅰ. 과학적 객관주의가 성립할 수 없는 이유 163
ⅱ. 의식의 관념적 사유가 모든 갈등과 분쟁 그리고 부조리의 근원이다 169
ⅲ. 탐욕과 욕망을 끊기 위해서는 감각적 지각과 의식을 끊어야 한다 174
2. 후설의 현상학은 의식에 대한 모든 오해와 왜곡의 결정판이다 184
1) 문자 언어에 대한 후설의 그릇된 이해 187
2) 사유는 의미 결정체인 언어를 통해 가능하다 191
3) 감각에 이미 개념적 의미가 드러나 나타난다 197
4) 개념이란 차별적 의미를 비교하여 규정한 언어적 의미규정이다 204
5) 수(數)와 관련된 오류와 왜곡 209
6) 판단중지와 형상적 환원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222
Ⅱ. 외계(자연)는 어떻게 눈앞에 펼쳐지는 것일까? 234
1. 꿈속의 나비가 실재하는 나비이다 235
2. 외계에 대한 바른 이해: 연장(延長)실체냐, 사유실체냐? 238
3. 본질적 언어에 근거하여 사물의 표상을 그려 낸다 252
4. 사유실체에 대한 뇌과학적 이해와 뇌과학 연구의 문제점 264
5. 본질이란? 272
6. 두 가지 언어작용으로 인해 전혀 다른 두 가지 외계가 펼쳐진다 285
1) 개념적 의미를 지닌 대상성(有表色)과 본질적 속성의 대상성(無表色) 286
2) 두 가지 외계(우주): 자연과 세계 290
3) 플라톤이 설명하는 두 가지 현상의 외계 296
Ⅲ. 옛 성현들이 깨우쳐 주는 인간의 두 가지 언어작용 306
1. 의식과 개념적 언어 308
1) 『중론(中論)』에서 깨우쳐 주는 의식의 네 가지 지향성 311
2) 노자(老子)와 플라톤도 개념이란 비실재적인 의미규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323
3) 범주(範疇)라는 용어에 있어서의 오류와 왜곡 331
ⅰ.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가르침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332
ⅱ. 아리스토텔레스는 외계의 물질적 사물 자체를 지각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341
ⅲ. 칸트는 범주를 의식의 사유기능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349
2. 직관적 언어작용과 본질적 언어 353
1) 신체와 영혼(본원적 직관능력)은 결코 분리할 수 없다 354
2) 기억과 상기 그리고 종합적 통일 361
3) 불교의 깨달음이란 직관적 언어능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369
4) 본질적 언어는 신경계를 작동시키는 자연 언어이다 373
5) 본질적 언어는 형용과 서술이 불가능하다 380
Ⅳ. 분리뇌 연구는 인간의 두 가지 언어능력을 과학적 실험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386
1. 분리뇌 연구의 철학사적 의의 386
2. 뇌량(corpus callosum)에 대한 이해 390
3.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자료: 의식의 작용특성이 밝혀지다 394
1) 의식은 문자 언어를 매개로 그 언어적 의미를 사유하는 언어적 사유작용이다 397
2) 의식[육식(六識)]이 외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감각적 지각[오식(五識)]을 선행적으로 동반해야 한다 402
4. 가자니가에 의해 실행된 세 가지 실험 408
1) 코흐스(Kohs) 블록 실험: 직관적 언어작용에 의해 선천적 종합판단이 가능하다 409
2) 손으로 지시하는 실험: 감각과 본원적 직관의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414
3) 질문에 답하는 실험: 의식은 반드시 감각적 지각을 선행적으로 동반해야 한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420
2편 자연과학에 있어서 철학적 문제점들
Ⅰ. 강한 인공지능 연구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430
1. 컴퓨터 시각 연구에 있어서 문제점 434
2. 인공지능도 두 가지 언어를 입증하고 있다 442
Ⅱ.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철학적 차이점 449
1. 양자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450
2. ‘객관적 관찰’이란 직관과 개념적 사유를 구분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류이다 456
3. 양자의 본질은 오로지 직관을 통해서만 관찰할 수 있다 460
Ⅲ. 불확정성 원리는 개념의 비실재성을 입증하고 있다 466
Ⅳ. 『중론(中論)』에서도 ‘시간과 공간이 실재하지 않다’는 점을 논증하고 있다 478
Ⅴ. 공간과 시간에 대한 칸트의 오해와 왜곡 487
Ⅵ. 시계가 느려진다고 시간이 느려지나? 498
Ⅶ. 아인슈타인이 끝내 양자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 507
Ⅷ. 양자물리학자들의 깊은 철학적 통찰 518
Ⅸ. 옛 성현들의 가르침과 양자이론의 공통점 524
1. 오로지 빛을 통해서만 양자(외계)를 관찰할 수 있다 525
2. 외계(자연)와 양자의 존재 양상이 동일하다 530
3. 파동함수의 확률해석은 곧 직관을 통한 선천적 종합판단이다 533
Ⅹ. 음양오행설은 직관과 종합적 통일을 기초로 정립된 과학적 방법론이다 542
맺는말: 문명의 대전환은 철학이 바뀌어야만 가능하다 551
색인 556
저자소개
책속에서
옛 성현들은 외계(우주)란 인간 영혼에 의해 표상되어 현상한 것이라고 깨우쳐 주고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눈앞에 펼쳐진 외계란 곧 우리의 마음[팔식(八識): 영혼; 선천적인 본원적 직관능력]속에서 표상된(그려 낸) 사물의 표상이 드러나 나타난 것이라고 자세하게 논증하고 있다. 즉 인간 영혼이 우주의 유일한 주체적 존재자이며, 우주는 인간 영혼에 의해 현상함으로써 존재하는 현상적 존재자라고 간곡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화의 과정에서 객관과학의 학문적 성취에 현혹되어 서양의 관념론자들은 우주란 외계에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개념의 객관적 실재성을 입증하기 위해 인간의 선천적인 인지능력을 철저하게 왜곡하면서 의식만이 인간의 유일한 사유능력이며 절대이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_‘머리말’ 중에서
아인슈타인은 양자물리학에서 주장하는 직관적 이해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신이 달을 볼 때만 달이 있다고 믿느냐?”고 비아냥했다고 한다. 이 짧은 한마디에서 아인슈타인이 개념(개념적 언어)을 통해 사유하는 것과 자연현상으로서의 외계를 직관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읽어 낼 수 있다. 우리도 아인슈타인과 똑같이 관념적으로 사유되는 달과 실제로 직관되는 달을 엄밀하게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이 농담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것이다.
(중략)
의식을 통해 사유할 때의 ‘달’은 단지 개념적 언어일 뿐이지 결코 외계에 실재하는 달이 아니다. 외계에 ‘실재하는 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눈을 통해서 그 달의 본질적 표상을 직관할 때만 그 달(본질적 언어로서의 달)이 ‘나타나 존재’하는 것이다. 결단코 달은 본질적 표상이 직관될 때만 존재(실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순수이성비판』의 B판 서론에서 칸트는 ‘7+5=12’라는 수학 명제와 ‘직선은 두 점 사이의 가장 짧은 선이다’라는 기하학의 명제를 예로 들면서 의식에서 ‘직관을 통한 선천적 종합판단’이 가능하다는 점을 논증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명제들에 대해 의식을 통해 즉각적으로(감각적 지각을 거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다. 이 명제들은 모두 기호문자로 이루어졌으며, 우리는 의식을 통해 이 문장을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략)
그렇다고 이렇게 문자 언어로 표현된 명제를 의식이 즉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직관을 통한 선천적 종합판단’일까? 과연 문자 언어로 표현된 명제들을 읽고 그 문장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것과 외계에 실재하는 사물들의 본질적 존재의미를 직관적으로 아는 것이 동일한 사유작용일까?
(중략)
이 수학 명제를 읽을 때 결코 열두 개의 사물을 직관할 수 없다. 의식을 통해 그 수학 명제를 읽을 때는 오로지 우리의 눈은 그 ‘7+5=12’라는 문장(또는 수식)만을 지향한다. 결코 동시에 외계의 사물을 직관할 수 없다. 이 수식을 볼 때 우리의 눈은 이 수식만을 보고 있을 뿐이다. 이 명제를 읽는 순간에 의식은 결코 다른 것을 지향할 수 없다. 다른 것을 지향하여 보는 것은 이 명제를 읽는 의식이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의식이 생성되면서 다른 물체를 지향함으로써 가능하다.



















